청산 유일 꽃집 ‘웃음꽃방’ 박영임씨,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도전!
갑자기 찾아든 우울한 날들에 대학에서 만난 ‘학문’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위로’였다
청산의 복지와 아이들을 위해 청산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

산 너머 해가 고개 떨군 늦은 저녁. 이내 청산에는 어두워진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웃음 한가득으로 반기는 박영임(57,청산면 백운리)씨를 ‘웃음꽃방’에서 만나봤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웃음꽃방은 청산 유일의 꽃집이다.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박영임씨는 청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 탓에 박영임씨는 청산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청산에서 웃음꽃방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2000년 12월 1일에 ‘청산꽃방’으로 문을 연 웃음꽃방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청산 마실방으로 그곳에 있다.

■ 청산에서의 행복한 삶과 불현듯 찾아든 위기 
박영임씨는 2012년부터 약 6년간 ‘웃음치료’, ‘기타수업’, ‘꽃교육’ 등으로 평생학습원, 노인장애인복지관, 보건소 등 청산을 넘어 옥천 곳곳에서 다양한 교육과 활동을 이어왔다. 그런 탓에 청산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수에 맞게 기타를 제공할 테니 아이들에게 기타 수업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래서 꽤나 오랫동안 청산의 청소년들에게 기타 강습에 나서기도 했다. “사실은 조금 망설여졌지만 내가 노래를 하고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고 한 명이라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족한 시간을 쪼개가며 연습에 매진했다고. 보람은 넘쳤다.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없던 힘도 솟아나는 듯했다. 이러한 소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평생학습원, 이원중학교, 옥천여중 등 노래와 수업을 해달라는 곳이 점점 늘었다. 꽃바구니와 함께 선물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배우게 된 기타가 이렇게나 많은 행복과 웃음을 주는 일이 될지는 몰랐다. 

박영임씨는 옥천 곳곳을 누비며 웃음을 전하고, 많은 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며 노래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졸업축하 꽃다발 만들기’, ‘꽃꽂이 수업’ 등 틈틈이 새로운 꽃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몸은 힘들어도 보람은 가득했다. 2015년 3월에는 KBS 인터뷰다큐 <사람이 좋다>에도 출연하며 청산에서의 삶은 언제나 행복을 거듭했다. 

그러나 늘 긍정적이고 웃음이 가득하던 박영임씨에게도 위기가 찾아들었다. 특히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편의 모습에 유난히 괴로웠다. 이런저런 좋지 않은 상황들과 함께 찾아온 우울함이 박영임씨를 엄습했다. 이내 한동안은 털썩 주저앉아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끊이지 않던 웃음도, 특유의 따듯함과 넘치던 자신감도 가장 밑바닥으로 꺼져가던 시기였다. 박영임씨는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던 날들이었다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약 2년간은 저에게 너무나 힘든 시기였어요. 무척이나 괴로웠던 시기라 한동안은 집에만 있었던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날 그 힘든 시기에서 벗어나게 됐죠.”

■ 대학을 다니기에는 조금은 늦은 시기…그러나 여전히 늦지 않은 시기 

2017년 2월. 충북도립대학교에 기타 강습에 나섰다. 그간의 힘든 시간들을 조금씩 걷어내고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시기였다. 강습을 마치고 도립대를 나서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학교 이름이 적혀있는 큰 대리석과 함께 주변에는 신입생 모집을 알리는 플래카드들도 곳곳에 걸려있었다. 박영임씨는 그제야 ‘생각해 보니 여기가 대학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화번호부를 적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느낀 것이… 나도 대학생을 한 번 해보고 싶다… 라고 갑작스레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교무과를 찾아갔어요.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고, 사회복지과가 눈에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하지만 이미 사회복지과에는 인원이 모두 충족이 된 상태였다. 10월에야 다시 수시접수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교문 밖으로 나서던 찰나, 갑자기 급박한 전화가 걸려들었다. “방금 자리가 하나 났는데 빨리 등록을 해야 할 것 같아요”라는 다급한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에 박영임씨는 고민할 틈도 없이 곧바로 등록했다. 뒷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슴이 떨릴 만큼 감회가 새로웠다.

‘웃음치료’, ‘기타 강습’, ‘꽃 교육’ 등 다양한 자격증을 땄고 그것들을 이용해 지역 곳곳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정작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원하던 배움은 ‘학문’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생겼다. 그리고 한참을 고심했다. 스스로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던 배움의 시기에, 박영임씨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로 했다. ‘여전히 늦지 않은 지금’. 새로운 ‘도전’인 ‘학문’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다녀보기로….

■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대학이라고 하면 시간이 좀 널널할줄 알고 가게도 같이 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웬일이야! 하루 종일 공부를 하더라고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꽃집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돼서 참 걱정이 많았죠.”

생각했던 대학생활에 반해 학문을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생학습원에서 오후 7시부터 밤 9시까지 진행되는 기타 강습에 시간이 빠듯했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민에 고민으로 며칠을 지새웠다. ‘그간 갈망해오던 학문을 선택하느냐’ ‘충분히 의미 있는 현재의 삶을 이어가느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박영임씨는 한 수업에서 몇날 며칠 스스로를 괴롭히던 고민을 끝내기로 했다.

어느 날 수업시간을 돌이켰다. 김현호 교수는 ‘人生(인생)’이라는 한자를 칠판에 적고 이내 ‘生(생)’에서 ‘一 (일)’자 하나를 지우며 ‘牛(소 우)’자를 만들며 학생들에게 물었다. “소의 다리가 몇 개입니까?” 당연히 네 개라는 학생들의 답변에 김현호 교수는 다시 칠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생은 네 발 달린 소가 외나무다리를 걸어가는 것처럼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박영임씨는 전율을 느꼈다. “대학은 이런 것을 배우는 구나! 나는 정말 공부를 해야겠구나”라고. 등록금으로 냈던 82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쉼 없이 20년을 열어오던 꽃방을 잠시 뒤로하고 박영임씨는 학업에 매진하기로 했다. 그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간 해오던 활동들을 멈출 수는 없었다. 평생학습원에서 기타 강습을 마치면 밤 9시. 집으로 돌아오면 밤 10시였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11시부터는 공부를 하기 시작해 적어도 새벽 3~4시까지는 공부를 했다. 그러나 힘든 줄도 몰랐다. 이러한 열정과 노력에 박영임씨는 첫 시험에서 34명의 학생 중 5등이라는 높은 성적을 받아냈다. 노력한 대가를 얻어낸 것이다. 박영임씨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A4용지에 한 문제를 7번을 쓰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시험을 보면 답이 생각나고 하나의 실마리가 풀리니 금세 답안지를 가득 메웠다. 두 번째 시험에서 또다시 5등을 하며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결국 박영임씨는 '차석'으로 졸업했다. 주변에서 이야기했다. “이모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요?”라고. 박영임씨는 "공부 못 했던 게 한이 돼서 열심히 한다고, 늦기 시작했는데 어영부영 다니려면 애초에 다니지를 말자"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대학에서 새롭게 배운 학문은 박영임씨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힘든 시기에 찾아든 ‘위로’였다.

주변의 도움으로 박영임씨는 영동 유원대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여전히 최선을 다했다. “이왕 공부를 시작한 거 계속했으면 해요”라는 사회복지학과 장우심 교수의 말에 박영임씨는 토요 수업반에 들어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5과목을 인강과 수업일수를 채우며 90여 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1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장을 받아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세상에 얼마나 힘든 사람들이 많으면 ‘사회복지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져 이런 공부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 자신도 이 공부를 통해 위로를 받았으니 나 역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그래도 나는 청산을 지키고 싶어요”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박영임씨에게 위기의 시기에 찾아온 위로였다. 공부를 하며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좁았던 시야를 넓게 텄다. 졸업장을 얻어내고도 여전히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회복지라는 학문을 접하다 보니 배울 점이 수두룩했다. 영생원에서 160시간의 실습을 통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고 주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위해 ‘심리상담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나리어린이집에서는 240시간의 실습을 통해 ‘보육교사2급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그 밖에도 ‘명상지도자격증’, ‘레크리에이션지도자격증’ 등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박영임씨는 여전히 배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영임씨는 작년 7월1일부터 '청산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체력적인 문제와 여러 업무로 인해 몇 년을 함께 해오던 ‘기타 강습’, ‘웃음치료’, ‘꽃 교육’은 여건상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꽃방 역시 주말 정도에만 문을 열거나 주문이 있을 때에만 운영하고 있다. 

박영임씨의 새로운 목표는 일평생 몸담아온 청산의 복지를 책임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아이들의 교육과 일자리 문제로 많은 이들이 청산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 박영임씨를 언제나 마음 아프게 했다. 이러한 와중에 새롭게 만들어진 청산지역아동센터는 ‘지역의 새로운 숨통’이었다. 청산의 수많은 가정들이 ‘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마음 편히 맡겨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아이들의 점심과 저녁 그리고 방학까지 책임져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이라는 '청산의 고민' 에 박영임씨 역시 함께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청산에 있는 아이들만큼은 꼭 내가 지켜주고 싶다”며 청산지역아동센터에 상주하는 사회복지사가 됐다. 

“내가 배워서 나만 배우는 게 아니라 남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의미가 컸어요. 열심히 배우고 느끼다 보니 벌이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청산에 활력을 넣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를 한 것 같아요”

■ 지금도 선택의 기로에서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박영임씨는 서랍을 열어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2004년부터 매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 5년간 옮겨 쓴 성경 필사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완성'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동안 옮겨 쓴 이 한 권의 성경을 시작으로 첫 자신감이 생겼고 처음으로 제가 끝을 본 완성품이에요. 그리고 이걸 쓰면서 느낀 건 무엇이든 시작하면 된다는 자신감이었어요. 늦은 시기에 도전한 대학에서의 경험도 막상 도전해보니 완성이 있더라고요”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새로운 도전을 나선 박영임씨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면 끝내 일어서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마음이 무거운 시기에 공부를 시작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위기를 극복한 발판이 됐다. 그렇기에 박영임씨는 지금도 위기의 순간과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박영임씨는 항상 이야기하고 싶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 위기의 순간 무엇이라도 좋으니 새로운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극복해보자고”

“한 발씩 앞으로 가봐요. 가다 보면 한 발이 두 발이 되고 세발이 될 거예요.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고 그걸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꺼예요.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겠죠”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설레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두렵다. ‘지금도 괜찮을까?’, ‘이 나이에도 괜찮을까?’, ‘도전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난 아무것도 없는데?’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많은 이들을 애태우며 두렵게 한다. 그런 그들에게 박영임씨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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