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옥천 귀농살이 7년차 김병섭 대표
희로애락으로 백하수오와 함께한 지난 4년
“귀농인 대상 시설하우스 종합 지원 더해져야”

반짝 뜨고 지는 스타 같은 농작물이 있다. 한때 국내에서 인삼보다 단가가 높았다는 ‘백하수오’도 그 중 하나다. 백하수오는 2010년대 초반,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홈쇼핑 방송만 틀면 나오던 시기를 지나 2015년 일명 ‘이엽우피소 사건’으로 백하수오 농가는 큰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그런 백하수오의 상승과 하락을 함께한 장령산 백하수오농원 김병섭(58, 군서면 은행리) 대표가 있다. 고향인 옥천으로 돌아와 백하수오로 귀농을 시작했으니 그에게는 백하수오의 의미가 남다르다. ‘남들이 하는 건 안 한다’는 그의 말대로 다소 생소한 작물인 백하수오를 시작으로 이제는 체리로 재기를 꿈꾼다는 김 대표를 지난달 12일 만나봤다.

■ 고향으로 돌아와 군서면 귀농회 회장까지

“이거다!” 지인을 통해 백하수오를 접한 그는 백하수오에 거는 기대가 컸다. 백하수오는 한반도 자생 식물인 은조롱의 뿌리로, 자양강장 성분이 있다고 알려진 덩굴식물이다. 적하수오라고도 불리는 하수오를 백하수오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효능이나 기원이 다른 별개의 작물이다. 사상의학 창시자 이제마는 백하수오를 인삼에 견주며 처방했다고 전해진다. 백하수오 수요가 생기기 시작할 즈음인 2012년, 당시 대전에 살았던 그는 산에서 채취한 야생 씨앗으로 20개의 백하수오를 심기 시작했다. 대전과 옥천을 오가며 작은 백하수오 밭을 관리했다. 수확까지는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2~3년 후에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밭의 규모를 키우던 그는 2015년, 대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아내와 고향인 옥천에서 귀농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군서면 사정리에서 자란 그는 학창시절을 모두 옥천에서 보냈다. “대전에서 건설업에 종사했었어요. 사고로 병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고향이 그리웠죠. 건강이나 노후를 생각해 귀농을 결심한 거예요.”

귀농 후 그는 다른 귀농인들과 함께 군서면의 귀농인협의회를 만들었다. “귀농과 귀촌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군에서는 귀농인과 귀촌인을 묶어서 똑같이 지원해요.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군서면의 귀농회를 만들어보자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올 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는 그는 농기계 다루는 데 서툰 이웃을 돕고,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귀농인 선후배들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했다.

■ 김 대표 발목 잡은 이엽우피소

20개의 씨앗은 곧 5천평의 거대한 밭이 됐다. 2~3년 전 봄에 심은 씨앗을 11월 가을에 수확할 때는 최대 여섯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야 일이 겨우 굴러갔다. “옥천에서 대규모로 백하수오 농원을 운영하는 건 내가 처음일 거예요.” 수확한 백하수오는 건조근, 분말, 액기스, 담금주로 판매했다. 하루에 많게는 4~50개의 택배를 전국 각지로 보냈다. 그는 꿈을 더 크게 가졌다. 밭 규모를 키우고, 6차 산업(농촌융복합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엽우피소 사건’의 여파 탓이었다. 이엽우피소 사건은 2015년, 백하수오 공급업체 내츄럴엔도텍의 제품에서 이엽우피소 성분이 나왔다는 발표에서 촉발됐다. 백하수오의 뿌리와 비슷하게 생긴 이엽우피소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재배나 유통이 금지된 중국 약재이다. 백하수오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자 이엽우피소를 혼입한 것이다. 이어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판매되는 백하수오 90%가 가짜’라는 발표를 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이 여파로 백하수오 재배 농가들이 이엽우피소 혼입 검사를 받아야 했다. 김 대표도 충청북도농업기술원에서 인증을 받았다.

이엽우피소 사건이 김 대표에게 곧장 직격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판매 수익에 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파문이 잠잠해지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고객들의 택배 요청은 하루에 10개에서 5개, 1개로 줄어들었다. ‘한물갔다’는 게 세간의 시선이었다. “수확하지 않은 백하수오 밭도 그대로 있어요. 인건비가 더 드니까 사실상 방치 중이에요.” 그의 집 근처에 있는 냉장창고에도 백하수오 제품이 한가득 있었다. 건조 기계도 가동이 멈춘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요즘도 간간이 담금주 요청이 오긴 해요. 그 외에는 옥천로컬푸드직매장과 하나로마트에 건조근만 납품 중이에요. 그런데 뭐 한 달에 한 두 개 정도 판매되는 수준이죠.” 결국 그는 2019년, 4년 만에 백하수오 사업을 접는다. 우리고장 백하수오 농가 중 가장 마지막까지 버텼다고 그는 말한다.

백하수오 담금주
백하수오 담금주

■ 일장춘몽 같던 4년, 그래도 다시 꿈을 꾼다

7년차 귀농인으로서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외려 군에 대한 할 말이 더욱 많아 보였다. 귀농인에 대한 지원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려면 관수, 전기 등 하우스 유지에 필요한 각종 부가시설이 함께 지원돼야 해요.” 현재 군에서 시행하는 귀농귀촌 정착 지원 사업은 시설하우스와 중형관정 설치비용을 포함하고 있다. 중형관정 설치비용은 건당 660만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실질적으로 1년에 7~8개 농가만 지원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작년에도 군에서 겨울에는 로컬푸드직매장에 야채가 없다며 시설하우스를 지원해줬지만 비닐 한 겹짜리였어요. 한 겹이면 겨울에는 작물이 얼어 죽어요. 3중은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 그의 백하수오 밭은 체리 밭이 될 예정이다. “남들이 안 하는 걸 시도하고 싶어요. 체리는 전망이 좋을 거라고 봐요. 지금도 옥천에서 체리는 없어서 못 팔아요.” 체리 농부로 유명한 유튜버의 강의도 듣고 견학도 했다. 체리작목반 회원 약 30명과 정보도 공유한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냉해 피해다. “이제 비닐하우스 없으면 체리 관리하기 힘들어요. 냉해 피해 때문에. 체리는 복숭아나 포도에 비해 농가가 소수다 보니 관련 지원도 부족하고요.”

하지만 체리가 그의 전부는 아니다. 이미 체리 외에도 마늘, 양파, 더덕, 백도라지를 키우고 있다. “옥천푸드거점가공센터를 통해 더덕장아찌와 도라지장아찌를 만들어 팔 생각이에요.” 현재 오전에는 대전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아내가 장아찌 가공을 담당할 예정이다.

지난 4년이 김 대표에게는 일장춘몽 같다. 또 다른 꿈을 꾸기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체리에게서 희망이 보여요.” 그의 희망은 내년 봄이면 결실을 맺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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