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식이 된 자가 어찌 효도를 하지 않으리오.그 은덕을 갚고자 할진댄 하늘처럼 다함이 없도다※ 일반 활자체와 서체는 조금 다를수 있습니다.
은 옥천 세밀화 연구회의 줄임말로 옥천에서 세밀화를 연구하고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019년 박신영 선생님께 수채 세밀화를 처음 배웠고 2020년 세밀화 동아리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둠벙에서 모임을 합니다. 그림그리기를 즐기시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벌겋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머금었을까? 아니면 지는 해의 주홍빛 노을을 머금었을까?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주홍빛이 발을 멈추게 한다. 뿜어내는 환한 빛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본다.언제부터인지 단지 내 화단에 피어난 선명하게 빛을
옥천9경 마스터하기 부소담악, 장령산휴양림, 용암사, 피실 옥천팜랜드6월13일일요일 쉬는 날인데 염조진(64, 안남면 종미리) 후배가 연락이 왔다. 부소담악(군북면 환산로 518)을 가자고 한다. 우리 시골살이팀 3명은 9시반에 종미리버스정류장에서 염가이드(염조진 애칭)를 만나서 우리차로 4명이 출발했다.10시 조금 넘어서 부소담악 근처 카페에 차를 잠시 세우고 부소담악을 내려다보았다. 대청댐이 준공되어 이 일대가 수몰되면서 추소리의 부소무니 마을 주변 산이 물에 잠겨서 생긴 물 위에 떠있는 산이다. 길게 뻗은 암봉들이 호수 위에
비 오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을까 말까. 충동적으로 사버린 닭가슴살을 해치울까 하는데 친구 연락을 받았다. 저녁을 먹잔다. 가게를 보아하니 술집이다. 아, 술은 못 참지. 조금 있다 자리를 박차고 나서려는데 창밖으로 후드득 소리가 들렸다. 비가 왔다. 하필 그 시점에 우산으로 막을 수 없어 보이는 비가 내렸다. 누군가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 그러더니만 5분 전에 손가락을 놀려 ‘ㄱ’을 전송한 게 문득 떠올랐다. 반쯤 포기한 채 빗물에 두 다리를 헌납할 요량으로 거리에 나섰다. 적당히 불쾌한,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집으로 돌아오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셨도다.은혜는 높기가 하늘과 같으시고 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으시니.
링링인지 랑랑인지 이름도 요란스런 가을태풍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올 모양이다. 사람도 날릴 수 있는 괴력의 바람,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방송에서 연일 떠들어대니 슬슬 불안하다. ‘태풍 영향권에 드는 날이 다행히 주말이니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 있으면 괜찮을 테지. 붉은 벽돌 튼튼한 우리집 지붕이야 날라 가겠어?’ 불안한 마음을 집안으로 밀어 넣으며 서둘러 퇴근을 한다. 밤새 소문이 무색하게 몇차례 산발적인 비가 흩뿌리더니 한낮 오후께나 지나서 동네 골목어귀 키 큰 나무들 허리를 과하게 꺽으며 태풍이 흔적을 보인다. 생각보다 바람이
이동림 (1948년생~) 복지관이 전보다 활기를 띄고 있었다. 아마도 백신의 힘이 아닐까.입구에서 손 터치로 체온을 재고 080-202-7054로 전화를 걸어서 출입 체크를 끝냈다. 로비에는 많은 어르신이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시간을 기다리시면서도, 모두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고 계셨다. 복지관은 생기 가득한 어르신들의 놀이터로서 나눔과 배움의 열정이 뜨거워서 코로나도 멀리 도망갈 것 같았다. 정수기 앞 원형 탁자에 몇 분이 담소를 나누시는데 유난히 순하고 맑은 눈빛의 어르신이 나를 멈춰 세웠다.■ 여보, 당신은 내 인생의 귀인이
사자소학은 우리 조상들이 어린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펴낸 기초한문 교과서이므로 사람의 윤리도덕에 입각하여 주자의 소학과 경전중에 어린이가 알기쉬운 내용들을 가려 사자일주로 엮었기 때문에 사자소학이라 명명했다.연재하기에 앞서 편차를 두어 오륜의 차례를 따라서 부자 군신 부부 부자 형제 사생 장유 붕우간의 도리를 순서로 정하고 연재를 시작하려 함이다.그동안 서구문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전통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비도덕적인 문화가 날로범람하는 가운데 어린이의 정서함양과 우리의 전통문화의 뿌리를 이해시키는데 다소 보탬이 되길 바라는
오십 후반의 나이, 남편의 아이들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비우지 않아도 된다. 하루가 여유로운 나를 보고 아는 사람들은 늦복이 터졌다고 한다.딸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아들 또한 결혼해서 안정된 살림살이로 참깨를 볶는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남편도 세월의 칼날에 성격이 다듬어져 입안의 혀처럼 자연스럽게 가정을 아낀다. 시집 오기 전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살았다.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이웃사촌이 아닌 내 팔자를 남들이 부러워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지나온 날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난다. 욕심이 욕심인 줄도 몰랐던 시절,
귀농귀촌종합센터와 옥천군이 함께 주관하는 ‘옥천에서 살아보기’ 참여자인 이화영씨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현재 옥천에서 살아보기는 4명의 참여자가 시골살이 권역(대표 박효서)에서 지내며 다양한 농촌살이를 3개월 동안 경험하는 프로그램입니다.6월10일은 김낙종씨 포도농장(동이면 적하리)옆에 있는 밭에서 마늘 캐기를 체험했다.지난주에는 계속 포도 순치기를 했었다. 포도순치기는 높은곳에 있는 순을 따줘야 하는데 키작은 나로서는 고개를 들고 하려니 힘들었다. 고개가 아파서 가끔 머리를 숙이면서 쉬었다 하곤 했다. 마늘 캐는 것은 고개를 들지
저는 신문 읽기를 좋아합니다. 사람 많은 서울 지하철에서도 옆자리 눈치 봐가며 읽었죠. 한국일보 , 동아일보 등 좋은 기사를 읽을 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고, 의미 있는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삶과 동떨어진 뉴스를 많이 생산할 때 그랬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에는 검찰 이슈가 많이 보도됐는데, 필요 이상으로 기사화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검찰 조사를 받을 일이 거의 없는데, 많은 의제를 검찰 뉴스가 빨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은 옥천 세밀화 연구회의 줄임말로 옥천에서 세밀화를 연구하고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019년 박신영 선생님께 수채 세밀화를 처음 배웠고 2020년 세밀화 동아리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둠벙에서 모임을 합니다. 그림그리기를 즐기시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루드베키아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꽃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여러 종이 관상용으로 재배되거나 귀화하여 화단이나 길가에서 자생합니다.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꽃이 피기 시작하여 9월까지 꽃을 볼 수 있으며
가족을 잃은 유기동물이 발견돼 지역 동물보호소에서 보호 중이다. 공고기간은 발견일로부터 10일 동안이다. 해당 동물의 주인이거나 새로운 가족을 원하는 주민은 옥천군 친환경농축산과(730-3684)나 옥천동물병원(732-8844)으로 연락하면 된다.
귀농귀촌은 장애물 경기인가?귀농귀촌체험 한 달째다. 나는 체험 보름만에 귀농을 결정했다. 과수농업기술을 개인적으로 전수해 주고 안정된 판매처도 마련해 준다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조건의 장기간 농지임대와 신품종 묘목 구매의 우선권까지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일주일 만에 제안이 없던 일로 되었기 때문이다.지금 귀농은 전쟁처럼 보인다. 나 같은 도시인에게 귀농귀촌은 새로운 삶의 도전인데 곳곳이 지뢰밭이다. 정부에서 여러가지를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다. 달콤하
나는 경남 출신으로 지역에서 나고 자라 지역 대학에서 공부했다. 언론인의 꿈을 키우며 성장한 것도 지역 언론과 접점을 이루면서다. 돌연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옥천으로 발길을 옮겼을 때 주변 지인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경남 사람들에게 옥천 지역 자체가 생소하니 그도 그럴만 했다. 하지만 본인은 옥천 생활에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신문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옥천생활이지만 그 가치를 발견하고 옥천을 떠난다.지역 언론을 목표로 하며 꾸준히 고민한 점은 지역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습관처럼 시선이 향한 벽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늦게까지 자보려고 해도 꼭 이 시간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벌써 퇴직을 한 지 6개월이나 지났지만 내 몸은 회사생활에 완전히 맞추어진 것인지 하루도 늦는 법이 없었다.나는 지난 38년간 한 대기업에 근무했다. 이제 임원으로 갈 생각만 하고 있던 찰나 어이없게도 회사로부터 퇴직 권고를 받았다. 그렇게 은퇴 후 6개월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내밀지 못했다. 평소 인생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순간에는 항상 내리막길을 생
그간 묵혀두었던 일기를 옥천에서 꺼내들었다. 2020년 5월 7일자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맞다. 국민, 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청년 등 내가 주로 쓰는 용어들은 대개 군집명사였다. 유무형의 권력 집단을 비판하는 데 있어 이런 군집명사만큼 사용하기 편한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썼다. 어쨌거나 국민은 국민이고, 노동자는 노동자니까.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유의 형태로 의미가 전달될 것이라는 데에 의심할 여지는 추호도 없었다.’그리고 일기 끝머리는 이렇게 맺는다. ‘군집명사. 그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과 그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