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대 청소미화원 인터뷰
김순임·김홍건·배민자·홍영미·나선희씨

초등학교 1학년,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부모님은 맞벌이셨고 두 살 터울 언니는 수업을 6교시까지 해서 빨라도 오후 3시서야 집에 왔다. 집에 혼자 있기 무섭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 1층부터 19층까지 아파트를 활보하는 청소 아주머니 뒤를 따라다녔다. 아주머니도 뒤에서 조잘대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뒀다.

어느날은 건빵을 받았다. 7층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아직 안 갔죠? 별 건 아닌데, 아휴, 날도 더운데 너무 고생하시네.' 청소 아주머니가 떠날까봐 위생봉투에 와르르 건빵을 담아 얼른 뛰어나온 손길. 묵묵히 슥슥 대걸레질하던 청소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같이 나눠먹자며 내 손에도 건빵을 쥐어줬다. 목이 좀 메이지만 달짝지근하니 출출하던 배를 가만 잠재워주던 맛.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지만 건빵은 지금도 잘 먹는다. 건빵 한조각이 내겐 윤리책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세상을 건빵으로 배웠다. 이야기가 길었다. 오늘은 충북도립대 건물 청소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 다섯 분의 이야기를 담는다. '도립대 사람들'을 찾아 도립대를 활보하다 익숙하고 반가운 뒷모습을 발견했다. 여기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직감했다. 

CPU센터를 청소하고 있는 도립대 청소노동자 모습

[도립대 사람들] 기숙사를 제외하고 대학 본관, CPU센터, 정보관, 공학관, 미래관 등 다섯 개 관 청소를 맡은 청소 아주머니는 모두 다섯 명이다. 이름은 김순임, 김홍건, 배민자, 홍영미, 나선희씨. 각자 한 개 관을 맡고 있지만 일이란 게 원래 같이 하는 게 재미나고 같이 했을 때 덜 힘든 법이라 꼭 둘 셋 넷씩 움직인다. 그래서 14일 CPU센터에서 김홍건씨를 붙잡았을 때, 다른쪽에서 김순임씨가 고개를 들었고 또 배민자씨가, 홍영미씨가, 위층에서는 나선희씨가 내려왔다. 한사람이 쭈뼛쭈뼛해도 다른 사람이 호탕하게 웃으니 인터뷰가 금방 시작됐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담는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까지 먼지를 모두 쓸어낸다

홍영미(56,옥천읍 장야리)씨: 일한 지 만 4년 됐네요. 먼저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었어요. 여자들을 먼저 감축 시켰는데, 일을 어쩌나, 돈은 벌어야 하고, 초조해하던 차에 김홍건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요. 같이 청소 일을 하면 어떻겠냐구. 일하면서 좋은 거요? 가장 좋은 건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거죠.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30분이면 퇴근해요. 끝나고 나서 집안일이나 다른 볼일을 보는 데 지장이 거의 없어요. 일하면서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랑 평소 오다니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지내고 싶다는 거? 아무래도 정말 아들·딸뻘이다보니, 학생들이 정말 예쁘구 그래요.  

CPU센터 1층 식당을 청소하고 있는 홍영미씨. 카메라 소리에 웃음이 나온다. "오늘 갑자기 이 무슨 일이람..."

나선희(53,옥천읍 문정리)씨: 비슷하게 일했어요. 영미 언니보다 제가 6개월 먼저 들어왔으니까. 일하면서 즐거운 건 언니들이랑 손발이 정말 잘 맞는다는 거요. (구체적으로 손발이 어떻게 맞는다는 말씀이세요?) 평소에 서로 잘 배려한다는 말이죠. 뭐든 할 때, 제가 나이도 경력도 막둥이거든요. 전 못해도 괜찮아요. 언니들 하는 거 그대로 쫓아가면 돼요. 워낙 솔선수범하는 언니들이라서. 그래도 아직 힘든 건 있어요. 걸레질 하는 거. 손목이랑 팔꿈치가 시큰거려요. 대걸레든 손걸레든 손으로 꽉 짜줘야 하는데, 하루에 백 번도 넘게 걸레를 짤 거예요,  터널증후군이라고 하죠. 예전에 기계도 한 번 써봤지만 손으로 하는 것만 못 해요. 물기가 남아서 그 걸레로 창문을 닦으면 얼룩이 남아. 안 닦느니만 못하죠. 사람 손 만한 게 없어. 

식당에 앉아 인터뷰에 응해주는 모습. 왼쪽부터 김홍건, 김순임씨.

배민자(56,옥천읍 성암리)씨: 올해로 10년 일했어요. (김순임씨 끼어들며: 미자는 정말 대단해요. 여기가 첫직장이거든. 다른 데서 사회생활 한 번 해보고 와도 청소 일은 한 달을 버티기가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미자는 처음 하는 바깥 일인데도 묵묵히 하더라고요.) 여기서 일해서 좋은 거요? 글쎄요... (홍영미씨 끼어들며: 글쎄라니, 우리가 여기서 만난 게 좋은 거지. 스쳐지나가는 것도 인연이라는데 여기서 만나서 이렇게 언니 동생하고 살고 있는데 그게 안 좋아?) 맞아요(웃음). 일 끝나고 우리 다같이 밥 먹구 술 한 잔도 하고 하는 게 낙이에요. (그런데 4시30분에 일 끝나는데, 그때 술을 드시는 거예요?) 맞아, 그때는 안 열어요. 문 열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생각해보니 일이 빨리 끝나서 안 좋은 것도 있네. (웃음) 

김홍건씨. 학교 밖 정자도 걸레로 닦는다. "여기 정자를 학생들이랑 주민들이 참 많이 이용해요."

김홍건(59,옥천읍 가화리)씨: 경력이... 올해로 14년이네요. 오래 일했다구 여기서는 반장으로 불려요. 이쯤 일하니 고마운 일도 많이 생각 나네요. 학생들이 우리를 참 많이 챙겨줬어요. 특히 학생회장단이요. 연말 되면 우리 필요한 물건들을 꼭 물어보더라구요. 휴게실에 전자레인지도 놔주고, (김순임씨 끼어들며: 장갑, 모직 장갑도 있어.) 맞다, 장갑. 일할 때 쓰는 그런 거 말구 겨울에 신을 모직 장갑이요. 어찌나 잘 챙겨주는지. 내 자식인가 싶어요. 그래서 청소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우리집 청소하는 것처럼. 애들이 생활하는 공간인데 깨끗해야죠. 그래서 보람도 커요. 어려운 거? 예전에는 담배 많이 피워서 화장실이나 복도에 꽁초가 많았는데 이제 흡연구역이 있잖아요. 이제 정말 많이 깨끗해졌어. 일이 많이 덜 힘들어졌어요. 

모두 함께 모여 사진 한 장 찍어주시라 부탁했다.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나선희, 배민자, 홍영미, 김순임, 김홍건씨.

김순임(61,옥천읍 장야리)씨: (선생님 앞에서 말해주신 것만 해도 분량이 나올 거 같은데요(웃음), 선생님은 경력이 얼마나 되셨나요.) 전 7년쯤요(웃음). 처음에는 많이 고달팠던 거 같은데 도립대는 계속 리모델링을 해서 청소할 맛이 나요. 청소를 하면 깨끗해지는 게 딱 보이거든요. 학교가 더러우면 아무리 청소를 해도 청소한 거 같지 않은데. 사람들도 참 잘 해줘요. 교수님들요, 복도에서 어찌나 반갑게 인사하는지. 교수가 원래 한 곳에 정년을 모두 다 채우는 일이다보니까, 계속 마주쳐서 그럴까? 정도 들고요. 아참. 사무국 사람들을 빼먹을 뻔했네. 청소용품 고장난 거 있으면 바로바로 처리해줘서 고마워요. 아 또, 저번에는 정말 눈물 왈칵 날 뻔한 일이 있었는데. 대청소를 할 때 저희가 본관 앞 중앙 계단도 전부 닦거든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닦고 있는데 사무국 담당 주사님이 냉수 다섯컵을 들고 나온 거예요. 정말 눈물 날 뻔 했어요. 왜 그런 게 있잖아요. 자판기 음료수보다 냉수가 더 좋다는 게 아니라... 왜, 이 사람이 우리 보구 뭐라도 주고 싶어서, 컵에 한잔 한잔 냉수를 직접 떠와줬구나. 그게 참 눈물이 나더라고요. 고마워요 정말. 

한 말씀씩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둘 셋씩 청소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구석구석을 극세사 걸레로, 기름 걸레로, 또 마른 걸레로 닦는다. 퐁퐁과 락스를 섞어 수세미로 변기와 세면대를 말끔하게 닦는다. 인사하고 돌아서려고 하니 뒤에서 김홍건씨가 '아이구, 음료수라도 하나 줄 걸, 이렇게 그냥 보내서 어떡해' 이야기했다. 미소가 자글자글 빛나는 목소리, 언젠가 오래전에 한 번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다.

 

도립대의 지난 가을과 겨울 

김홍건씨와 홍영미씨가 직접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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