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piung8@hanmail.net,옥천읍 가화리)

영화제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닙니다. 7-8년 전 전주영화제와 부천 영화제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전주에서는 딱 한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부천영화제에선 3편 정도 봤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크게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이제는 아시아권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부산영화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예매도 어려운 데다 먼거리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대도시 중심으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비해 무주 산골영화제는 유일하게 작은 군단위에서 열리는 소박한 영화제입니다. 동네 주민들이 마실 나오듯 편안하게 찾는 곳입니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시작하자마자 끝났습니다. 

마음의 시간은 총알택시였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오순도순 모여 돗자리를 피고 먼저 본 영화들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무게감 있는 영화들은 소화불량처럼 쌓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영화제보다 많은 감독과 배우와 대화하는 시간.

평론가들이 진행하는 영화 토크가 관객들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낮에는 영화 감독이 던지고 가는 미로같은 영화 텍스트의 입구를 찾느라 머리가 조금 무거웠다면, 저녁의 등나무 운동장은 무거운 머리를 쉬도록 음악과 춤을 제공합니다.

툐요일 저녁 무성영화 ‘개같은 삶’을 상영하는 등나무 운동장은 삼삼오오 찾아 온 돗자리 관객들의 잔치였습니다.

멀티플렉스의 횡포에 눈칫밥 먹던 예술영화와 관객들이 1년에 한번 설움을 세탁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함께 이야기 나누며 생각을 확장해야 영화의 프레임 바깥까지 더 풍성해진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하는 무주 산골영화제였습니다.

이번 영화제 기간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5.18을 다룬 다큐 ‘김군’이었습니다.

지만원의 무책임하게 제기한 북한군 광수부대로 지목된 김군을 추적하는 다큐입니다. 영화의 미덕은 5.18 경험이 없는 제작자들이라서 역사에 함몰 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는 객관적인 시선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영화 상영 후 가진 감독과의 대화도 이들 제작진의 열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입소문이 많이 났는지 지난 해에 비해 관객들이 많아 조금 늦게 줄을 서면 원하지 않는 영화들을 보게 되는 불상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함께 갔던 동료들이 선착순에 밀리는 바람에  다른 영화관을 들어갔다가 만난 예술영화에 고문을 받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작은 읍내에 2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영화제입니다.

그래서 입소문을 그만내야하나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곳에 글을 올리는 건 좋은 영화제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근질거리는 거 같습니다.

2020년 무주 산골영화제에 함께 소풍 가요.

덧붙임
매년 6월 초에 5박 6일동안 열립니다. (단 지자체 선거가 겹치는 해에는 6월 말)
이번엔 가족 관객들을 겨냥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볼 있는 키즈존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플리마켓도 많이 풍성해졌습니다.

낮에는 다섯군데 실내 상영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최근에 상영되었던 엄선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저녁에는 무주 등나무 야외 상영관 그리고 향로봉 휴양림과 무주덕유대 야영장에서 야외 상영을 진행합니다. 저녁에는 도합 8개의 상영관이 돌아가는 셈입니다.

무주 등나무 운동장은 운동장 관중석을 등나무 그늘이 둘러치고 있는 독특한 운동장입니다. 주말 저녁 상영에는 무성영화를 배경으로 멋진 연주팀들이 배경음악을 연주합니다. 관객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맥주를 걸치거나 흥이 나면 잠시 일어나서 연주 음악에 맞춰 어깨를 움직이면 됩니다, 

옥천에서도 무주처럼 영화제를 기획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이미 산골 컨셉은 무주가 선점하는 바람에 지용제와 언론문화제에 어울리는 영화제를 디자인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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