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직 (충북남부권역, 옥천공동체 생산자)

친환경육성법이 시행된 지도 20년이 넘어섰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쯤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한창 활기가 넘쳐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많은 계도와 교육을 통해 '친환경농업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은 어느 농부라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 농약과 비료를 적게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 무농약과 유기농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안타까울 수 있지만 말이다. 2014년 8월 친환경농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뉴스파노라마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유기농업의 어두운 부분을 공개한 것처럼 비쳤는데 그 이면에는 많은 문제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로 국가 인증 체계의 허점과 친환경농업육성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는데, 많은 시청자들 중에 친환경농산물을 접하는 소비자들은 혼돈과 불신을 토로했고, 일반 관행농업인들 역시 친환경농업인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그 프로를 방영한 방송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다고 본다.(정치적? 시청률?)

친환경농업육성법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국가 인증체계는 친환경농업 실천농가에게 혹독한 채찍이 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보조금이라고 하는 달콤한 유혹의 당근이 되기도 한다. 물론 법규를 잘 지키는 농가에게는 당근이 지속적으로 지급되지만, 비의도적인 농약의 오염일 지라도 법규상 그 농도에 따라 차별적인 제재가 가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비의도적인 농약의 오염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루어져 있었다. 현재 유기농업의 1세대 농가가 유기농업을 실천해 올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다양한 병해충과 제초제가 그 독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사용되어 왔고, 잔류에 대한 문제의식도 낮아 효과가 인정되면 그 사용량과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것이 DDT였다.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벼룩과 이뿐만 아니라 농업 해충에게도 탁월한 살충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그 사용량이 많았던 농약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당시 독성학을 가르치셨던 선생님께서 강의 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개발 초기에 탁월한 살충효과로 인해 농약 개발자인 스위스의 폴 멀러는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이런 대단한 이력을 갖고 있는 DDT는 너무나도 안정된 물질(안정된 물질일수록 자연 상태에서 분해가 어려워 내성을 유발할 수 있다)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기나 기타 해충에서 내성이 나타났고, 생물적 농축으로 인해 미국의 흰머리 독수리가 멸종위기까지 갔었다고 말씀하셨다. DDT는 반감기가 길어 잔류가 오래간다. 6.25를 겪은 세대와 그 즘 태어난 세대의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아직도 DDT가 검출될 만큼 잔류가 길고, 또한 동물실험에서도 5ppm 정도만으로도 간세포 괴저나 조직의 분해를 유발하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독성이 강하고, 잔류가 긴 합성농약의 개발은 초기에 생태 독성을 간과한 채 사용되어 왔으며, 오히려 유해 동물을 죽이는 용도로도 사용되어 오다가 사망사고나 인체 독성에 문제가 부각되면서 사용을 중지하기에 이르렀다. 2,4-D와 같은 제초제도 국내에서 과수용으로 사용되었었다. 바로 월남전에서 미군이 베트콩을 잡을 목적으로 숲에 비행기로 살포했었는데, 미군은 그 유해성을 알고 있어서 제초제가 살포될 때에는 미군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한국군들은 옷을 벗은 채 시원하게 제초제를 온몸으로 받았다고 한다. 내가 속한 작목반 어르신도 그 당시 고엽제 피해로 고생하고 계시는 산 증인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인체에 유해하거나 발암물질로 규정된 농약에 대해서는 판매를 금하기에 이르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그즈음부터 사용상의 제한이나 사용을 금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80년대 이전에 사용했던 농약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서부터가 의구심을 자아낸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농약과 비료의 사용량이 급증했던 이 시기에 우리나라 농토의 상당수가 잔류가 길고, 독성이 높은 농약들이 사용되었다. 물론 독성이 강하다고 잔류가 길지는 않지만, 잔류가 길고 독성이 강한 농약들이 상당수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1997년 친환경육성법이 제정될 당시 이미 국내 토양은 오염되어 있었다. 근래에 와서는 상표명 지오릭스(엔도설판)의 경우 고독성 농약으로서 2004년부터 식용작물에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재배 토양에서 검출이 자주 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친환경농업을 육성한다는 명분 하에 단기간에 저농약에서 유기농에 이르는 인증을 내주었던 것이 국가 인증의 첫 번째 오류였다고 본다. 그 후로 인증농가 토양에서 지오릭스를 비롯한 다수의 (지금은 있는지 조차 모르는) 농약성분이 검출되면 그 모든 책임을 농가에게 전가하고, 심지어 동일 인증 번호를 사용하는 전혀 다른 필지까지도 출하정지 또는 인증취소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명기간은 단지 일주일이 주어진다. 농약 잔류 분석을 의뢰하면 분석기관에 따라서 3일~ 7일이 소요된다. 그 일주일 내에 해당 농가는 토양 잔류 허용치를 초과했을 경우에는 외부 유통도 어려운 상황이 된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국가 인증의 첫 번째 오류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토양 잔류농약의 스크리닝(전 토양의 잔류농약을 분석)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모니터링을 통해 잔류가 지속적으로 감소된다면 비록 토양이 오염되었더라도 유기농업을 통해 토양이 복원되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유기농업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본다. 잔류농약이 없는 토양이 과연 전 국토의 몇 퍼센트나 될까가 의문스럽다. 따라서 진정한 육성법을 시행하려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과정에 대한 심사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동일 인증 번호를 사용하는 다른 필지의 농작물에 대해서 농약 잔류가 없을 경우 제외시키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단체 인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본다. 단체로 묶인 농가들 중 몇몇이 비의도적이든, 고의로든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을 경우 단체로 인증을 취소하는 행위 또한 불합리한 처분으로 본다. 이는 북한의 5호 감시체제와 유사한 것으로 어떻게 국가에서 이러한 행위를 법적으로 처리하는지 참 어이가 없다. 불가항력적이거나 비의도적인 것이 드러난다면 해당 필지에 대한 행정 처분을 시행하고, 오염이 없는 필지는 살려 두는 것이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길이라고 본다. 일전에 OO품질관리원에 찾아가 항의한 적이 있었다. 

왜 다른 필지에 대한 분석 없이 일괄 행정처분을 하냐고 묻자, 담당자는 참 간단한 답변을 해주었다. 번호가 동일해서 함께 행정 처분을 받는 것이라고. 단체인증도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농가들은 잔류농약 검출에 있어 소명할 만한 시간적 여유나 지식적 한계가 있다. 진정한 육성법이라면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서 문제가 발생한 농가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있다면 업무 편람이나 규정집만 보고 행정 처분을 할 것이 아니라 친환경농업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갖춘 인력을 배치해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인식을 친환경농업 실천농가와 공유하면서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업을 바로 세우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환 보직도 정도 껏 해야지 생 초짜가 책상에 앉아 규정만 보고 행정처분을 내린다면 발전은 고사하고, 법명부터 친환경억제법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농가들이 관심이 많은 친환경 자재의 경우에도 전문지식을 갖추거나 양성된 인력을 배치해서 농가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때 비로소 행정과 법이 바로 서고, 친환경 농업, 유기농업이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소식지
'한살림농부이야기'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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