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한나 (옥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해주셨던 선생님을 점심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났다. 부모님과 함께 한 자리가 아니라면,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도 못 드릴 뻔 했다. 마을 할머니회 회장이신 엄마 말씀을 들으니 선생님을 최근에 노인회장 활동에서 보셨다고 한다. 내 기억에 선생님은 학교에서 한 번도 아이들에게 소리지르지 않은, 좋은 분이셨다. 교사로서 그랬듯이 마을에서도 친절하고 웃음많은 노인회장일 것이다. 동네 아이들 머리도 남들보다 한 번은 더 쓰다듬어 주실 것이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사시는 마을에 마을교육공동체가 생긴다면 도와달라고 말씀드려보아야겠다. 

퇴직하신 학교 행정실장님이 마을교육활동가 역량강화 연수를 이수하셨다. 이번에 학부모회장, 학교운영위원장을 필두로 교직원까지 백여명이 옥천에서 참가하는 대한민국 교육자치 컨퍼런스에도 참가신청서를 내셨다. 젊은 엄마들이 만든 마을교육공동체 <이음>에도 회원이시다. 무엇을 하시려는지 여쭤보면 아직 계획은 없으시단다. 그러나 교육기부를 하고 싶다, 젊은 엄마들을 돕고 싶다는 의지는 분명하시다. 아직 남자들 발언권이 센 농촌사회에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한 엄마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실 것이다. 

인근 아파트 자치회 동 대표님이 매일같이 행복교육지구 사무실에 오신다. 덩치가 큰 남자분이다. 아이도 없으시다는데 아동 돌봄공간을 계속 말씀하신다. 조심스럽게 나이를 여쭤보니 퉁명스럽게 오십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아파트 화장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와이파이를 연결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스러워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신다. 부녀회 총무님과 번갈아 사무실에 오시는데, 마을교육공동체 운영이 쉽지 않다고 매일같이 푸념이다. 어디서도 속시원한 답을 듣지 못해서 그런지 오시자마자 사무실 냉장고부터 열고 찬물을 들이킨다. 이 대표님은 아파트 주민들과 815 광복절에는 교육지원청 지원으로 군북면 체험휴양마을 행복돌봄 탐방을 갈 계획이다. 이 한걸음이 마을 돌봄공간으로 가는 첫 발걸음이 되길 바래 본다. 

장령산 자연휴양림 앞에 사시는 군서초 학부모회장님은 올해 34주 동안 주말돌봄을 운영한다. 아이들은 자연휴양림의 품안에 있는 아름다운 놀이터에서 뛰어 논다. 학교가 석면공사를 해서 아이들이 방학중 학교를 이용하기 어려워도 장령산이 있어 걱정이 없다. 좀 위험한 장난을 쳐도, 옆에서 주의를 주는 엄마 선생님들이 봐 주고 있다는 걸 알기에 아이들 얼굴은 밝다. 평소에 서로 섞이기 어려운, 다문화엄마들이 하는 학부모 동아리와 함께 주말돌봄 가족들은 부산까지 기차여행도 다녀왔다. 넓은 군서면 안에서 띄엄띄엄 흩어져 사는 주민들이지만,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고자 하는 열의는 누구보다도 놀랍다. 

구읍복지회관에서는 2학기에 새롭게 하반기 실개천 마을학교가 운영된다. 계획서를 쓰신 엄마는 예전에 군민행복일자리로 행복교육지구 사무실에서 일년간 일했던 분이다. 실개천 마을학교는 일주일 중 하루는 마을 할머니들과 공예 프로그램을 같이 한다. 마을 이장님이 할머니들에게 참여를 추천해서 나오셨다고 한다. 장난꾸러기 열 살 전후 남자아이들이 기운차게 떠드는 소리에도 어르신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꼼꼼히 강사 선생님이 나누어주신 폼 블록을 채우고 조립한다. 말썽쟁이들이 손자같아 같이 하는 게 좋으시단다. 저녁 간식으로 나오는 김밥 한 줄 한 줄 아이들과 함께 갈라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 강사로 나오는 엄마 선생님은 어르신 아이 모두 높은 출석률을 기록하는 출석부를 자랑스레 보여주신다. 

옥천에 살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만났지만 은퇴한 세대, 지금 아이들을 키우느라 눈물콧물 빼며 힘들어하는 학부모, 아이들을 저리 가라 시끄럽다 비난하지 않고 함께 같이 시간을 보내고자 마음먹은 어르신 모두가 우리 옥천의 마을교육활동가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은 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도 아이들은 학교밖에서 함께 놀아주고 돌보아줄 마을 어른들의 손길이 너무나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텔레비전보다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에게는 더 능력자다. 마을에서 함께 할 때 배울 수 있는, 배워야만 하는 진짜 사회적 지식을 우리 함께 가르치자. 서로 도와가며 힘들지만 즐겁고 보람된 그 길을 우리 옥천의 아이들과 같이 걸어가자. 지금 마음이 끌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바로 마을교육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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