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서대리 서당골 출신 출향인
대전 중구 지하상가, ‘문 닫고’ 영업하는 독특한 가게
소극적 기계치, 유튜버 ‘폰아저씨’ 되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출향인을 만났다.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생애와 이야기가 있는 법이지만 이 사람, 조금 유별나다. 얘기를 듣다 보면 왠지 점점 빠져든다. 군대에 갔다가 장교가 되고, 회사에 갔다가 상인이 되고, 잡화상에서 휴대폰 판매점으로, 또 그곳에서 유튜버로 살아가는 이야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도 전한다.

 

홍텔레콤 가게 내부. 기사 스크랩이 가득 붙어 있다.
홍텔레콤 가게 내부. 기사 스크랩이 가득 붙어 있다.
홍텔레콤 가게 내부. 기사 스크랩이 가득 붙어 있다.
홍텔레콤 가게 내부. 기사 스크랩이 가득 붙어 있다.

 대전 중구의 지하상가. 중구청 쪽 입구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으능정이보다는 조금 한산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이 빵집, 저 잡화점, 그 분식집, 여러 타로집 등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손님맞이와 장사에 바쁘다. 그런데, 지하상가 초입부터 문이 닫혀있는 가게가 하나 있다. ‘휴대폰 살 땐 홍텔레콤’이라는 현수막, 그리고 입간판 몇 개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군가 지나다가 호기심에 다가서면 닫힌 문 안쪽으로 두런두런 말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천오백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폰아저씨’의 주인공, 김홍택씨다.

 

출향인 김홍택씨.
출향인 김홍택씨.

옥천, 김홍택

 김홍택씨는 옥천읍 서대리 서당골 출신이다. 군남초, 옥천중, 옥천고를 졸업한 옥천사람. 심지어는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대덕구 송촌동에서 서대리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는 주사랑교회의 독실한 신자다. 소극적인 성격으로 상주에서 전학을 와 적응하기 힘들던 그 시절, 초등학교 5학년에 고모 손을 붙잡고 간 주일학교가 옥천을 고향으로 여기고 마음 붙이는 데에 큰 힘이 됐다고. 부모님도 구리에 가시고, 이제 옥천에 남은 연고는 사촌형 김원택씨와 교회 뿐. 그쯤 되면 교회를 옮길 법도 한데, 그래도 매주 매주 옥천에 온다. “우리 목사님이 워낙에 훌륭한 분이셔서, 제가 탈선을 못 해요.”

 

김홍택씨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상병에서 장교로, 회사원에서 상인으로

 대학을 1년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상병까지는 어찌어찌 지냈는데, 맞선임이 괴롭혀도 여간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즈음, 사병들에게 장교시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다행히 그게 1회라 경쟁이 그렇게 세지가 않았어요. 그래 해보자, 했는데 그게 딱 돼서 소위 임관을 한 거예요. 결국 군생활을 4년 6개월 하고 전역했죠.” 그렇게 전역을 한 게 99년도였다. “아, 이거 꼭 써주세요. 99년도 그랜드슬램!” 김홍택씨는 그 해에 전역, 졸업, 취업, 결혼을 다 했다. “웬만한 굵직한 것들은 다 한 거잖아요. 그렇죠?”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다니던 회사를 나온 건 2004년이었다.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보증금 없음, 월세 15만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혹했다고. “그때만 해도 지하상가가 많이 비어있었거든요. 근데 내가 관리비를 생각을 못 했던 거지. 관리비가 25만원이었거든요.” 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한 칸의 잡화점이었다. 점점 커지더니 여섯 칸까지 늘어났다. 그런데도 이 일이 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 장사가 조금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일을 찾아볼 때였다.

 

왼쪽이 출향인 김홍택씨, 오른쪽은 옥천신문 이은경 광고국장. 기념사진 촬영 중이다.
왼쪽이 출향인 김홍택씨, 오른쪽은 옥천신문 이은경 광고국장. 기념사진 촬영 중이다.

인생의 전환점, 스마트폰

 그즈음 페이스북을 하고 있었다. 문과, 기계치, 컴맹, 가입하는 방법도 몰라 조카의 도움을 받았다. 가입하고 나니 별 것은 없었다. 내 이야기를 쓰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소통하는 것. SNS를 향한 첫발이었다. “원체 활발한 성격이 아니라, 얼굴 보고 만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하지만 재미 붙여서 자꾸만 하다 보니 친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 중 가장 친했던 누님, 고민을 얘기했더니 ‘휴대폰 가게를 하라’는 솔루션을 내려줬다고. 그렇게 6년 전 열게 된 가게가 바로 지금의 홍텔레콤이다. “‘나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 했더니, ‘장사는 다 똑같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동업을 했죠. 그런데 이 누님이 나를 아주 강하게 키우는 거야. 모르는 걸 전화로 물어보는데 짜증을 내요.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알아서 하래. 손님이 오는 게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만든 SNS모임, ‘스무고개’. ‘스’마트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고’객님의 가려운 곳 ‘개’운하게 긁어드립니다. “제가 휴대폰을 잘 몰랐잖아요.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 손님들이랑 같이 배워보면 좋겠다, 해서.”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처음엔 서너 명이 모였다. 그나마도 근처 가게의 사장님들이었다. 매주 모임을 진행했다. 사람이 조금씩, 점점, 불어났다. 회원 서로서로가 친하고 정서적 지지를 해주면서 가족같이 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장기기증운동본부, 영농조합법인, 다문화대안학교 등 여러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많은 활동을 했다고. “저는 소극적인 사람이라 누가 오면 다독이긴 해도 섭외는 안 하는데, 활발한 분들이 들어와서 모임을 키웠어요. 굉장히 영향력 있는 모임이 된 거죠. 서울엔 독서모임 같은 게 많다고 하던데, 대전에는 스무고개가 있다! 저희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되게 내세울 만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매주, 매일, 꾸준히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접하다 보니 조금씩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계치에 컴맹이던 자신이 한번 겪어본 일에는 금방 대처할 수 있게, 웬만한 손님들보다는 더 잘 알게, 점점 변해갔다. 그런 식으로 경험과 함께 재미가 붙었다. ‘뭐든 꾸준히 해야 한다’고 김홍택씨는 말했다. 스마트폰이건, 유튜브건.

 

폰아저씨 영상 캡쳐. 인터뷰 당일에 촬영한 영상이다. 왼쪽부터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과 이은경 광고국장, 출향인 김홍택씨.
폰아저씨 영상 캡쳐. 인터뷰 당일에 촬영한 영상이다. 왼쪽부터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과 이은경 광고국장, 출향인 김홍택씨.
폰아저씨 영상 캡쳐. 인터뷰 당일에 촬영한 영상이다. 왼쪽부터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과 이은경 광고국장, 출향인 김홍택씨.
폰아저씨 영상 캡쳐. 인터뷰 당일에 촬영한 영상이다. 왼쪽부터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과 이은경 광고국장, 출향인 김홍택씨.

유튜버 ‘폰아저씨’

 스스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홍택씨는 인터뷰 내내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다. 말도 청산유수로 줄줄 잘만 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김홍택씨 왈, “그게 다 유튜브 덕분”이라고. 스무고개 활동을 하며 ‘말을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한 김홍택씨는 그 수단으로 유튜브를 선택했다.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팬이 생기더라고. 안 생기면 만나는 사람마다 어거지로라도 구독을 시켰다. 그러다 보면 한두 명씩, 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러던 것이 구독자 천오백 명의 지금에까지 온 것이다. “편집 같은 건 제가 즐겁게 할 수가 없으니까, 편집도 안 하고 생짜로 올려요. 그게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유튜브의 원래 취지에 제가 꼭 맞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잖아요. 그렇죠?”

 인터뷰 내내, 그리고 매일 두어 번씩 김홍택씨가 유튜브 영상을 찍는 동안, 점포의 문은 꼭꼭 닫혀 있다. 지하상가에서 문을 닫아놓는다니, 사실상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의 가게는 잘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터뷰 도중, 그의 전화기에 ‘카톡’ 알림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유튜브 보고 문의 드립니다.’ 지하상가로 향하는 문을 닫은 대신, 세상을 향한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이런 가게가 없어요. 문을 닫고도 장사가 되는 가게가. 독특하죠.”

폰아저씨 영상 목록.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영상을 업로드한다고 한다.
폰아저씨 영상 목록.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영상을 업로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홍텔레콤만의 장점은 무엇일까? 김홍택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저죠. 저.” 결국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서 폰을 사는 것이라고. “저는 솔직합니다. 가격을 후려치거나 그러진 않아요. 누구를 뒤통수치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그게 제 최고의 장점이죠. SNS 하려면 사람이 좀 무던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날 어떻게 안 좋게 하고 그래도 제가 복수를 하고 그러진 않아요. 엄청 싫어하는 사람도 페이스북 차단 같은 건 안 해. 단, 저는 와이프만 차단했어요. 가족끼린 하는 거 아니라고. 하하.”

 

김홍택씨가 손님을 받고 있다. 문을 닫고 인터뷰 중이었음에도 손님이 익숙하다는 듯 들어왔다.
김홍택씨가 손님을 받고 있다. 문을 닫고 인터뷰 중이었는데, 손님은 익숙하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과거의 그를 직접 만나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김홍택씨에게서 그가 말하는 과거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활달하고, 유머 있고, 적극적이다. 닫혀있던 꽃봉오리, 조금은 침체되어 있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만나며 완전히 개화한 모양이다. 어쩌면 스마트폰은 진작에 만났어야 할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의 ‘원석’이라고나 할까. 김홍택씨는 꾸준함으로 그의 원석을 가공해냈다. 그가 좋아하는 그의 이름 ‘홍’자처럼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그것이 김홍택씨가 타고 태어난 그의 형태인가 보다.

 

폰아저씨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6whUImI-uyzy8Qz6-Nwxxg

대전 중구 중앙로 145 / 010-2591-1479

왼쪽부터 출향인 김홍택씨와 옥천신문 이은경 광고국장. 가게 앞에서 기념촬영 중이다.
왼쪽부터 출향인 김홍택씨와 옥천신문 이은경 광고국장. 가게 앞에서 기념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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