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담사 꿈 꾸는 옥천취업센터 청년 인턴 이중희씨
취업 고비때마다 자상하게 상담해준 취업센터 고마워
옥천 사는 것, 정서적으로 편안, 공기도 맑아 행복해

 [고사미]경쾌하다. 약간 신바람 나는 ‘장조' 음계가 쫙 펼쳐지는 것 같았다. 쑥스러움을 머금고 뒤돌아섰으나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들은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재미졌다. 

 이중희(32, 옥천읍 서대리)씨는 고향 옥천이 참 좋다. 답답해서, 일자리가 없어서, 익명성이 없어서, 놀 곳이 마땅찮아서, 여러가지 이유를 달고 탈출하는 옥천이 그는 정말 좋다고 말했다. 

 정서적인 편안함, 맑은 공기는 여러가지 수많은 그 이유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도 조곤조곤 말했다. 다시 ‘백수’가 되고, 또 장기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한 ‘인턴’이 됐지만, 그가 그래도 옥천에 남아있는 이유이다. 

 삼양초, 옥천여중, 옥천고를 나와 경북에 있는 한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도무지 피아노로 밥벌어먹고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에 취업했다. 웬걸. 그 어린이집이 얼마가지 않아 폐업했다. 3년 만에 실직자가 된 중희씨는 몸도 안 좋아져 집에 쉬면서 요양을 했다. 그리고 다시 일반회사 자재팀에 취업해 5년 간 근속했다. 

 이렇게 성격이 전혀 다른 일자리로 이직을 단행하게 된 것은 충북새일본부 옥천취업센터의 도움이 컸다. 어린이집 교사를 그만두고 찾은 옥천취업센터에서는 정말 동네 언니들처럼 ‘자상하고 친절하게’ 직업상담을 해주었다. 아무때나 들려서 이야기해도 이물없이 편안하게 대해준 옥천취업센터를 동네 마실가듯 갔다. 옥천취업센터 선임 박혜영씨는 중희씨의 다른 정체성을 찾아주고 새로운 능력을 발견해 일자리를 제안했다. 그래서 보육교사에서 일반회사 자재팀 사무직원으로 과감히 전직을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는 박혜영 선임이 참 고맙다. 나이 터울은 9살 정도 큰 언니 뻘인 박혜영씨가 편안하게 상담해준 말들이 귀에 쏙쏙 박혔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부터 옥천취업센터 박혜영 샘, 김지은 샘, 이중희씨

 일반회사 자재팀에서 5년 근속을 하고 몸이 좋지 않아 다시 그만 둔 그는 또 다시 취업센터를 찾아갔다. 거기서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충북새일본부 청년 인턴 제안을 받게 되었고 거기서 아예 근무를 하게 됐다. 11월까지만 근무인 한시적인 일자리지만, 그는 그 전에 일자리를 구하기 보다 끝까지 남아있고 싶다. 아예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서 취업센터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보육교사, 사무직 말고도 잠깐 쉴 때 벌곡휴게소에서 옷 가게도 1년 정도 했어요. 저도 짧은 시간 다양한 직업경험을 한 셈이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취업센터 박혜영 선생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육아휴직 후 복직한 김지은 선생님도 여러 조언을 많이 해줬구요. 저도 다양한 일을 해봤고 직업 상담을 심도있게 받아본 만큼 직업상담사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도 있죠”

 그는 서대리 솔고개에서 옥천취업센터까지 가깝지 않은 길을 늘 걸어서 출퇴근한다. 걸어오는 길, 퇴근하는 길이 즐겁다. 번잡하지 않고 늘 익숙한 그 길, 늘 알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준다. 

 “도시에 가서도 살아봤죠. 그런데 제가 호흡기도 안 좋아서 도시는 공기가 탁해 대번 건강 적신호가 켜지고, 사람들이 바쁘게 살다보니까 친해지기도 어려워 도시 생활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쭉 옥천에 살고 싶답니다.” 옥천을 떠나고 싶은 청소년, 청년만 보다가, 옥천을 사랑하는 청년을 보니 새록새록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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