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시간의 그늘 시집 이후 5년 만에 수필집 내
문화관광해설사 일 하면서 틈틈히 써 낸 속깊은 이야기들

 시는 은유의 산물이라서 자신의 이야기를 감출 수 있고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마법’을 부리지만, 수필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 수필을 쓰는 것을 자신의 양파껍질을 계속 벗겨내며 있는 속살을 다 보여주는 거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저했고 망설였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인생살이가 이미 알려진 것도 알려지지 않은 것도 드러나는 대로 행여 문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런 마음이 들었다. 단어와 문장을 속에서 끄집어낼 수록 속이야기가 한움큼 묻어나왔다. 감추려해도 그 냄새, 흔적 등이 베어나왔다. 그래도 고해성사하듯이 써냈다. 배정옥(63, 옥천읍 양수리)씨는 2011년 월간문학저널 신인문학상을 타며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꽃이 피었던 만큼 뿌리내렸던 설움도 가지를 어렵게 뻗었던 삶의 골도 깊었다. 

 2002년 한남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하면서 글의 물꼬가 터졌고 2008년 암에 걸린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아픔과 슬픔의 감정을 글로 풀어내며 스스로를 치유했다. 2014년 '시간의 그늘'이란 시집을 낸 이후 그는 2019년 최근 ‘바람은 왜 한쪽으로만 부는가’란 첫 수필집을 펴냈다. 꼭 5년 만이다. 그가 말했던 대로 꼭지마다 그의 삶이 오롯하게 묻어났다. 

 '요즘같은 물질만능 시대에 돈만 있으면 예쁘고 좋은 것들로 넘쳐난다. 그렇지만 추억의 냄새가 없다. 필요에 따라 다르지만, 오래된 것에는 느긋하게 발효된 세월의 흔적과 추억이 담겨있다.’<그 것>

 ‘나의 친구는 올갱이의 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수돗가 시멘트 바닥에 흰 목장갑을 끼고 빨래 비비듯 박박 문질렀다. 벙어리처럼 꽉 다문 올갱이의 저린 몸뚱이에서 파란 윤기가 뽀드득 뽀드득 빠져나왔다. 골골이 패인 온몸이 드러났다. 우리의 삶의 흔적도 지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친구의 눈가에 진 주름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중년의 초딩들> 삼양초 27회 동창 모임에서

 각별한 삼양초 27회 친구들의 살가운 이야기들이 그대로 수필에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봄에 새 풀이 나고 한 꼴 내기만 한 암송아지 한마리 메면 그해 겨울에는 어미소로 자란다. 새끼 한배 빼서 봄까지 끼워 팔면 자식들 학비를 충당했던 그 시절,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사람의 부족한 노동력을 몇갑절 대신해주고 죽어서는 우리의 가장 귀한 먹거리였던 소. 농가에서 소는 꼭 식구같았다. 사랑채 부엌만큼 큰 무쇠가마솥에 쌀겨, 콩깍지 썬 짚을 넣고 푹푹 삶아서 소에게 먹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풀라치면 구수하고 풋풋한 풀냄새가 났던 기억이 아스라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소중한 재산>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돌아보며 소중한 재산이었던 소에 대한 이야기며, 먼저 저식들을 남겨두고 저세상으로 간 친구 이야기까지 수필을 정독하면 그의 삶에 성큼 다가갈 수 있다. 

 ‘그의 생애에 앞자락에 박힌 금단추같은 저 아들과 바라보기에는 아까운 보석알처럼 고운 두 딸을 두고 어떻게 길을 떠났을까. 같이 따라나선 찬바람마저도 오열을 토해내고 질긴 울음 끝에 막 떨어진 낙엽들이 바닥만 긁고 있는 늦가을’<11월의 친구>

 어찌보면 속깊은 내밀한 이야기들이 덤덤하게 드러난다. 읽으면서 젖어든다. 그는 옥천을 떠난 적이 별로 없다. 지금도 정지용문학관에서 문화해설사 일을 하고 있다. 지역에 살면서 그는 옥천에 사는 사람들의 결과 숨을 찾아내 글로 종종 쓴다. 세월의 더께가 쌓일수록 글이 농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옥천읍 가풍리에 사는 이명식 시인(아동문학가)이 해설서를 썼는데 배정옥 수필가에 대해 평한 글이 인상적이다. ‘배정옥 수필가는 사물이나 현실을 보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사물을 자세히 살펴 그 속성을 들여다 보고, 맛깔스런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인생2막을 꿈꾸며, 아버지의 수건, 단청같은 말씀, 핏줄, 청풍정 등을 거듭 읽어보니 에둘러 눈시울이 붉었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선선한 그의 수필집을 가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든북 출판,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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