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수(안내면 도율리, 청소년 기자)

[러시아 여행기(5)]

16일 아침 6시가 알람이 울린다. 평소였으면 그러지 않을 건데, 전날의 여파 때문인지 10분만 더 누워있자는 생각으로 알람을 끄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6시 50분이 채 되지 않았다. 큰일 났다. 이르쿠츠크 역으로 가는 택시가 7:30에 오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짐도 하나도 챙겨놓지 않아서, 짐부터 챙겨야했고, 간단히 씻고, 5박6일을 함께한 우리 동행들과 인사도 해야 하는데 40분은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평소 약속시간 보다 10분 빨리 가는 습관과 출근시간인 점을 감안, 또 역 근처에서 아침 먹을 시간까지 포함해서 세워 놓은 시간계획이었다. 아침을 포기하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여서 '그냥 아침은 포기하지 뭐'하고 여유롭게 준비했다. 

갑자기 어제 택시를 예약해준 호스텔 직원 소냐가 택시가 도착했다고 서둘러 준비하라고 했다. 아 내가 한 가지, 택시 예약시간을 생각하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15분정도만 기달려 달라고 했다. 소중한 나의 인연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에 올랐다. 주변에 혼자 10박11일 동안 러시아를 여행한다고는 했지만, 여행 초반 5박6일은 동행들 덕에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진짜 혼자가 되었다.'라는 생각에 기분이 뭔가 묘했다. 역에 도착해 발권을 하고 드디어 설국열차 꼬리 칸에(많은 여행자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칸을 설국열차 꼬리칸이라고 부른다.) 올라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잡고 누웠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자리

열차를 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 하는게 '지루함'이다. 현지 유심을 산다고 해도 열차가 달리는 중 대부분은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마트폰은 큰 역에 정차할 때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난 3박 4일동안 가족들에게 생존신고정도의 간단한 연락만 하려고 했다. 내 다짐은 하룻밤도 못 갔다. 왓챠플레이를(월정액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어플) 통해 다운 받아온 영화들은 왓챠플레이가 해외지원을 안 해서 볼 수 없었다, 시간을 때울 방법은 책 두 권이었다. 한국인 하나 없어, 수다조차 떨지 못하는, 이 곳에서 책 두 권으로 3박 4일은 무리 같았다.

기차가 달리고 달려도 창밖은 비슷한 풍경이고, 수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풍경이 질릴 때쯤이면 책을 읽는다. 이마저도 마땅치 않으면 앞자리 러시안에게 말을 건다. 근데 서로 영어를 잘 못해서 이름 말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한국에서 가져온 육개장컵라면을 먹고, 잠에 든다. 이렇게 3박 4일을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첫날부터 이 무료함에 대해 지루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부터 가져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준 안시내작가의 '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를 읽고, 차를 마시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봤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한 대답은 '없다.'였다. '그럼 지금부터 무얼 해볼까?'   

우선 메모장을 켰다. 그리고 이 여행을 떠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안시내작가님에게 할 말을 쓰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러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인터넷이 터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까 써둔 말들을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보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 무료함이, 그 한적함이, 그 게으름이 너무도 좋다. 아이폰으로 e북을 보다 밤 늦게 잠들고, 정오가 넘어 일어나도 괜찮다. 외모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다들 머리를 안 감은지 며칠씩은 되었으니까. 이 곳에서는 학기 중의 또는 여러 현대인들의 삶처럼 바쁘게 쫓기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냥 시간을 보내면 된다.

열차가 역에 정차하자 모두 바람쐬러 나온 모
열차가 역에 정차하자 모두 바람쐬러 나온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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