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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는 고향에서
여름휴가는 고향에서
  • 옥천닷컴
  • 승인 2019.07.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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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제(옥천작가회의 회원,동이면 세산리)
조숙제씨
조숙제씨

지루한 장마도 머지않아 물러갈 것이다. 곧,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굴 것이다. 이 맛도 여름철 별미다. 뙤약볕을 머금고 무럭무럭 제 키를 살찌우는, 저 대지의 푸른 물결을 보라. 넘실거리는 저 파도가 머지않아 들녘을 풍요로운 물결로 채울 것이다. 싱싱한 작물들의 함성이 처처에서 들리지 않는가. 더위도 잊고서 들녘에서 구슬 같은 땀방울을 등지고, 한 생을 삽자루에 기댄 저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의 묵직한 삽질이 있기에 오늘의 건강한 우리가 있지 않겠는가.

무더운 여름이 우리를 부른다. 언제부턴가 여름휴가가 일상이 돼버렸다. 고된 삶의 현장을 떠나서 재충전이 그만큼 절실히 요구된다. 가족과 함께 휴식을 갖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휴가는 외국 여행도 좋다. 유명관광지의 명승 산천도 좋다. 그러나 나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고향에서 즐기는 것을 권하고 싶다. '향수'는 고향을 떠나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앓는 마음의 병이다. 만해 한용운 시인은 "男兒到處 是故鄕"(진짜 남자는 마음 붙여 사는 곳 모두가 고향이다)이라고 설파했지만,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으면 이 말로 위안 삼았겠는가.

고향은 나의 뿌리다. 뿌리는 삶의 바탕이요, 혈류다. 조상의 뼈가 묻히고 부모님이 오늘도 학수고대, 먼발치에서 기다리고 계신 곳이다. 문 열면 혹시나 손주들의 목소리가 들릴까? 자동차 소리에 내 새끼 발걸음인 줄 알고, 먼 하늘을 우러르는 곳이다. 부처님도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늘은 친족"이라고. 그곳이 마냥 그립지 아니한가. 고로 여름휴가는 고향에서 즐기자.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휴가는 잔치마당이다. 부모님 곁에서 형제가 함께 뜻을 모았는데, 이보다 더 무엇이 좋을쏜가. 담 너머로 오순도순 정담이 흘러넘치면, 묵은 '세월의 때'도 제풀에 스르르 녹는다. 가족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어려울수록 뭉치는 힘의 강도가 세진다. 묘한 이치다. 그곳에선 못 풀 문제가 없다. 이렇듯 고향은 만인의 '모공'이다. 찌들린 때를 정화하는 '순백의 곳간'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꽃이 절로 무르익는다. 먹을 것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먹기 위한 모임이 아니다. 음식은 거칠수록 좋고, 눈빛은 맑을수록 정감이 깊어간다. 저녁이 최적의 시간이다. 저녁이 없는 삶은 서글프다. 툇마루에 자리를 편다. 모깃불도 피워본다. 고무통에 지하수도 그득 담아 놓는다. 손주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보석 보다 빛난다. 마당엔 장작이 지펴지고 솥엔 옥수수와 감자가 솔솔 냄새를 풍긴다. 저녁놀도 긴장이 되나 얼굴이 붉다. 모두의 마음도 설렘으로 가득하다. 뒷산에선 뻐꾸기 울고  소쩍새 리듬에 먼 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형제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로 돌아간다. 술잔이 돈다. 빙빙 마음이 돌아 옛 시절을 회상한다. 술기운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먼 산을 멍하니 쳐다본다. 안으론 뜨거운 그 무엇이 넘실거린다. 한 잔을 넘기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 맛이 고향의 냄새다. 얼마나 그리워 단잠을 설쳤던가? 얼마나 와 보고 싶던 고향 땅이던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가족이던가. 달빛은 말없이 이야기만 듣는다.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와 가슴을 녹인다. 모기가 물어도 아프지 않다. 흙냄새 맡으며 먹는 옥수수와 감자 맛이 일품이다.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진다. 이 맛이 바로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던 맛이던가. 이 맛보기가 그리도 어려웠던가. 사무치던 그리움 스르르 달빛에 녹아든다.

산골다랭이 논밭도 둘러볼 일이다. 조상님 대대로 씨 뿌리고 보듬던 거친 황무지지만 만감이 스쳐 가는 곳이다.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이곳이 전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바라만 보아도 눈시울 붉어진다. 그런데 왠지 가슴이 뻥 뚫린다. 흙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거짓이 없다. 변함이 없고 우직해서 어머님의 품속 같다. 소처럼 한 생애를 묵묵히 삽자루에 의지해 평생을 맡긴 곳이다. 바닷가에서 헤엄치면서 뛰노는 것보다는 덜 흥미롭겠지만 오늘의 의미는 영원히 고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들과 고향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꿈을 심는 작업이다. 꿈은 작은 것이 좋다. 그렇게 작고 미미한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실패는 없다. 흙의 의미를 소중히 간직할 줄 알고, 뿌리의 귀중함을 마음에 새길 줄 아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나가 경거망동을 할 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절대로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다.
짧았지만 짧지 않은 여름 휴가일 것이다. 돌아가는 걸음걸음엔 추억만이 소복소복 쌓인다. 비록 모기에 물리고 신발이 흙에 묻고 옷에 땀이 젖었지만, 이보다 소중한 체험이 또 있겠는가. 아마도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은 걸, 조금씩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돌아가는 길엔 보따리가 많다. 부모님의 작지 않은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 보따리들. 옥수수와 감자는 못생겼어도 의미가 남다르다. 고추장과 간장은 맛보기 쉽지 않은 토종이요, 어머니의 눈물 바가지며 애간장 녹인 정수리다. 손주들은 아파트로 돌아가서 매일 밤 꿈을 꿀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꾸만 만져주시던 거친 손맛의 의미를.

우리는 모두가 분주한 일상을 산다. 그 의미는 잘 모른다. 정녕, 필요한 것은 까맣게 잊고서 산다. 그게 습관이 되었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이렇게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휴가는 의미가 깊다. 무엇이 이보다 값지겠는가? 여름휴가는 고향에서 즐기자. 고향은 언제나 당신을 향해 열려있다. 부모님의 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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