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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순도높은 우리밀 동네빵집, 옥천에 곧 생깁니다’
'100% 순도높은 우리밀 동네빵집, 옥천에 곧 생깁니다’
  • 황민호 기자
  • 승인 2019.07.31 0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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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경력 20년, CJ뚜레주르 해외영업부 부장 출신 조광현씨 
옥천읍 신기리 어머니 집 정착, 8월6일 가화길 18에서 개봉박두 

 6월29일(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옥천 로컬푸드 장터가 열리던 날. 하늘도 어둡고 비가 내려 잔뜩 습한 분위기에서 그는 두딸과 함께 밝은 빛을 반짝반짝 내고 있었다. 직접 만든 복분자 우리밀빵을 가지고 나와 시식행사를 가졌다. 첫 일성부터 100% 우리밀로 빵을 만들겠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나름의 숨겨진 내공이 단단히 뿌리 박혀 있었던 게다. 개인제과점 경험과 대기업인 CJ뚜레주르 해외영업부(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부장까지 승진하며 제과제빵점을 가르치고 빵집을 열어주던 경력까지 합하면 빵 만든 경력이 도합 20년이다. 호기롭게 취미로 시작하며 ‘우리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업계에서 닳고 닳은 경력으로 ‘우리밀’의 장단점을 다 파악한 연후에 새롭게 신기원을 열겠다고 우리밀 빵집을 여는 것이다. 이름도 농가빵케이알이다. 수입산에 빼앗긴 우리밀을, 이미 농가에서 멀어진 빵을, 다시 되찾아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이름에서 묻어난다. 

 8월6일 옥천읍 가화길 18번지에서 ‘농가빵케이알’을 개업하려고 준비중인 조광현(42,옥천읍 신기리)씨를 만나봤다. 

 “우리밀은 글루텐 함량이 적어 사실 빵 만들기 적합한 원료는 아니에요. 면을 뽑기는 괜찮은데 빵 만드는 데는 수입산에 비해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로컬푸드의 중요성과 건강성을 알기 떄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밀을 고집하는 거죠. 보통 밀은 제분하여 한달 이상 실온에 놓으면 상합니다. 그런데 수입산 밀이 지속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밀이 상하지 않도록 뭔가의 화학첨가물을 넣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바로 제분하고 냉장보관하여 빵을 만들 수 있는 우리밀은 신선하고 건강하다 할 수 있죠.”

 그는 ‘우리밀’에 꽂혔다. 100% 우리밀로 만들겠다고 하는 다짐이 허언이 아니다. 마침 옥천읍 신기리 돼지국밥집 2층에 사는 어머니가 동이면 평산리에서 닭도 170여 마리 자연방사로 키우고 있었고 우리밀도 재배하고 있었다.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고 하니 어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밀을 제분해서 크게 한 포대를 가져다 주셨다. 빵 만드는데 많이 쓰는 계란도 어머니가 키운 닭의 유정란을 쓴다. 그 일은 고스란히 아들의 일이 되었다. 그래서 조광현씨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빵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짓고 여러가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농가빵케이알 홈페이지(www.농가빵.kr)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 농가를 돕고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고자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소비자에게 믿음주고 농가에 보다 공정한 유통 카테고리를 만들어갑시다’ 

이원면이 고향, 옥천읍 신기리에 2월 귀농  

 이원면이 고향이다. 어렸을 떄 옥천에 나와 기억이 없지만, 삼양초, 옥천중, 옥천고를 졸업하고 우송대 디자인학과를 나왔다. 우연히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전공과도 무관한 제빵사가 되었다. 제과제빵사 자격증은 진즉부터 땄고 개인제과점에서 10년 정도 일하다가 조금 더 큰 데서 빵을 배우고 싶어 CJ뚜레주르에 들어갔다. 그는 국내에서 근무하다가 해외영업부에 자원하여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코이카와 협업하여 현지인들에게 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매장을 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렇게 해외에 8년 동안 있었다. 중국어와 베트남어는 현지에 살아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할 정도다.

 보람도, 명예도, 돈도 어느 정도 벌었지만, 고향과 멀어지면서, 가족과 떨어지면서 그리움과 외로움이 언제부터인가 깊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참 커가는 두 딸이 눈에 밟혔고 아내도 어머니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히 승승장구하며 승진한 부장 자리를 내치고 그는 기꺼이 고향에 귀농한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지난 2월에 고향 옥천에 내려왔다. 잘 만드는 빵을 우리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의미는 좋지만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들 우려를 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밀어부쳤다. 우리밀을 연구했다. 수차례 빵을 만들면서 우리밀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욕심 안 내고 식빵과 카스테라 단품으로만 승부를 일단 볼 작정이다. 또한 매장에 오래 붙어있지 않고 하루하루 만든 빵을 다 팔면 문을 닫을 생각이다. 365일 24시간 매장에 잡혀 일을 하는 것은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운영하고 싶어요. 가화리에 매장과 내년에는 신기리에 제과제빵 우리밀 빵만들기 체험 교육장을 내고 싶어요. 또 동이면 평산리 농장에서 우리밀과 자연 방사 닭 체험까지 본격적으로 6차산업의 전과정을 보여주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밀빵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농장부터 식탁까지 어떤 과정으로 오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밀 빵을 만드는 것을 대중화하고 싶은 것도 하나의 꿈입니다.”

 “옥천로컬푸드 직매장에도 빵을 넣고 학교 급식으로도 넣어보고 싶어요. 정말 믿고 먹을 수 있는 순도 높은 우리밀 빵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귀국하고서 두 딸의 체육대회 행사에 참여했는데 눈물이 났다고 했다. 다시 찾은 고향에서 평온함을 느낀다고 했다. 해외를 누비었던 대기업 빵 전문가가 동네 빵집을 열었다. 그것도 ‘우리밀’을 화두로 빵집을 만든다고 한다.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부디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새로운 옥천식의 빵문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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