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여행사진작가 / 안남초 31회 졸업)

꽃송이의 가운데 보라색 꽃이 진짜 꽃이고, 가장자리의 흰색 꽃이 가짜 꽃인 헛꽃이다. 오른쪽 꽃송이는 수분이 끝나니 헛꽃이 뒤집혀 있다.<br>
꽃송이의 가운데 보라색 꽃이 진짜 꽃이고, 가장자리의 흰색 꽃이 가짜 꽃인 헛꽃이다. 오른쪽 꽃송이는 수분이 끝나니 헛꽃이 뒤집혀 있다.

산수국은 산골짜기나 그늘진 계곡에 넓게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며, 바위틈이나 습한 계곡에서도 잘 자라는 여름 꽃이다. 6월 숲길에 핀 산수국은 그 청초한 모습과 헛꽃인 꽃잎부터 초여름과 잘 어울려, 여름 내내 두고 보아도 싫지 않은 꽃이다. 
산속 깊은 곳에는 8월 중순까지 산수국이 핀다. 특히 사려니숲길에는 여름이 시작되면 산수국 천국으로 변한다. 몇 번을 보아도 청초하고 예쁜 산수국이 길가에 곱게 핀다. 한라산 둘레길인 돌오름길, 동백길 계곡의 물가에도 산수국이 예쁘게 핀다. 제주도에서는 여름밤에 도깨비불처럼 보인다고 하여 ‘도체비고장’이라고 한다.
아래 산수국 사진의 가운데에 작은 보라꽃이 진짜 수국이고, 가장자리에 있는 크고 하얀 꽃은 가짜 꽃인 헛꽃이다. 가운데에 있는 진짜 꽃은 암/수술이 같이 있는 유성화(양성화)이고, 가장자리 가짜 꽃은 암/수술이 퇴화한 중성화(무성화) 꽃이다.

헛꽃은 벌과 나비를 유혹해 가운데에 있는 유성화의 수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더 화려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수분(受粉)이 끝나면 하늘로 향해 있던 꽃잎이 뒤집힌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헛꽃은 열매가 맺힌 후에도 그대로 매달려 있고, 가을이 되면 보랏빛으로 단풍이 들기도 하며, 겨울에도 마른 꽃잎으로 견디는, 꽃이 피는 이듬해까지 열매 옆에 있어 주는 꽃이다.
제주도 산길에는 어디나 산수국이 피어 있다. 계곡이나 골짜기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다. 사려니숲길, 영주산, 렛츠런팜 순으로 소개한다.

사려니숲길 산수국
사려니숲길 산수국
사려니숲길 산수국

■ 사려니숲길

더 이상 설명하면 잔소리가 될 듯.
접근성이 좋아 언제나 찾아도 좋은, 그래서 누구나 자주 찾게 되는 사려니숲길은 어머니 품과 같이 늘 따뜻하고 푸근한 마음의 안식처다. 보석 같은 아름다운 길이다.
나로서는 가족이나 친지, 동료들이 내 곁을 찾아 올 때면, 언제나 행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핸들을 돌려 가는 곳이 사려니숲길이다. 그저 편안하게, 발길 닿는 대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붉은오름 입구에서 중간 물찻오름까지 가는 5㎞에는 6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핀 산수국이 길 양 옆으로 가득하다. 5월말 ‘사려니숲길 에코힐링체험’행사가 끝나면서 잠잠해진 사려니숲길에는 이제, 제 세상을 만난 듯 산수국이 가득하다. 가녀린 그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계곡마다, 숲길마다 들리는 듯 하다.

영주산 산수국
영주산 천국계단 산수국

■ 영주산

영주산(瀛洲山)은 ‘영모루’라고도 하며, 신선이 살던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름 봉우리에 안개가 끼면 비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천국 계단’을 걸어올라 정상에 서서 서쪽을 내려다보면 가마솥 모양의 ‘가메소’라고 하는 연못이 보인다. 제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몇 안 되는 연못이다.
지난해 초겨울 영주산 계단을 오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길 양 옆에 나지막하게 서있는, 아직도 푸름을 잃지 않은 산수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겨울 추위임에도 불구하고 바싹 마른 헛꽃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산수국을 보면서, 그 질긴 생명력에도 감탄을 했지만, 그에 앞서 영주산에 산수국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성산포 쪽으로 이사해, 보다 접근이 쉬워진 영주산을 봄부터 두어 차례 오르면서 계단 옆에 자라고 있는 산수국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떤 꽃이 어떻게 필지도 궁금해서였다. 얼른 산수국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6월 중순에 보고 싶었던 산수국을 실컷 보았다. 오르는 계단엔 헝클어진 채 산수국이 넓게 무리지어 피어 있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보이는, 다소 거칠게 자라고 있는 산수국이다.
6월의 뜨거워진 태양은 천국으로 오르는 영주산 산수국 계단을 서둘러 오르게 한다. 산등성에 부는 바람은 멀리 성읍에서 올려다주는 시원한 바람이다. 성주산에 부는 바람만큼 저수지의 물도 많아지리라.
시내버스는 성산을 오가는 721-3번을 타고 ‘영주산’ 정류장에서 내린다. 찾아가는 주소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 18-1이다.

레츠런팜 산수국

■ 렛츠런팜

교래사거리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 양쪽, 65만평에 펼쳐진 렛츠런팜은 경주마를 길러내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국영기업이다.
봄부터 유채꽃, 양귀비, 해바라기, 코스모스를 심어 제주도 여행객의 눈을 호강시켜주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업이다. 같은 소유의 렛츠런파크에서 행해지는 경마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을 만회해보려는 노력이 눈에 보인다.
렛츠런팜 정문을 지나 사려니숲길로 가는 길가엔 흐드러지게 핀 산수국을 볼 수 있다. 해마다 6월이면 볼 수 있는 길 옆 산수국은 자주 오가는 자동차의 공해와 소음에 못 견뎌한다.
그냥 지나가지 말고 잠시 쉬어가며 눈길 한번 주자. 머지않아 수국천국으로 만들지 모르지 않는가? 우리의 천국이 여기에도 있을지, 누가 아나? 모르는 일이다.

 

돌오름길 산수국

■ 돌오름길

돌오름은 조용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오솔길이다. 어쩌다 여행객이라도 만나면 반갑기만 해 인사가 절로 나온다. 그런 아늑하고 한가한 돌오름길에 피어있는 산수국이 정말 예쁘다. 시원한 녹음을 뚫고 걷는 한라산 둘레길 돌오름길 색달천에는 연보라 산수국이 청초하게 피어있어 참 예쁘다. 무리를 짓지 못하고 군데군데 어쩌다 서 있지만, 외롭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늦게 피기 시작하여 늦게까지 보여주니 다행이다. 오래오래 두고 보고 싶다.
돌오름에 접근하는 방법은 뒤이어 나오는 ‘한라산 둘레길’ 돌오름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제주시나 서귀포시에서 영실입구까지 240번 버스를 타고 가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된다.
초여름 돌오름과 산수국과 함께하는 제주도는 또 하나의 행복이다. 마음 편히 쉬고 올 수 있는 진짜 힐링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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