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옥(시인, 옥천군문화관광해설사)

! 곱다. 고와, 참 곱다!”

꽃만 보면 환한 얼굴로 하시던 감탄사.

오월 하늘 달빛 같은 어머니의 말씀이 오월 햇살로 퍼져온다.

얘야! 울타리에 올해도 인동초 꽃 넝쿨이 실하고 이쁘더라.”

전화 말미에도 언제나 계절의 꽃들을 덧붙인다.

사월이면 뒤꼍에 복사꽃이 만발을 한다. 휘어진 가지마다 두근두근 맺힌 꽃망울들이 일제히 눈을 뜬다.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 날에는 우리를 나무 밑에 세워두고 가지를 툭 치기도 했다. 꽃잎들이 후드득머리 위로 눈꽃처럼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환호를 하며 눈꽃을 잡으려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활짝 웃고 있던 어머니 입술도 복사꽃잎처럼 예뻤다.

봄날이면 어머니는 텃밭에 상추, 쑥갓 등 각종 씨앗을 뿌렸다. 어린 우리를 돌보듯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 와보니 상추가 깨끗이 씻겨 소쿠리에 가득히 담겨있었다. 어머니는 늘 오 남매를 둥근 밥상 앞에 둘러 앉혀 놓곤 하셨다. 아직은 작은 상추 잎을 여러 개씩 포개서 밥을 넣고 된장에 박았던, 무장아찌를 조금씩 넣어 상추쌈을 싸서 오 남매 입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넣어 주었다. 그러면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꿀벌소리 마 양 윙윙 거린다.

자 보렴. 엄마가 너희들에게 무엇이든 똑같이 나누어주지?”

하시며 덧붙이던 말.

왜 콩이 두 조각인지 아니? 우리나라 속담에는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의미로 둘로 나누어져 있단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가족끼리 도우며 살아야 한다.”

밥상머리 교훈을 몸소 실천했던 어머니였다. 그리곤 다 빈 밥그릇에 묻은 몇 알 남은 밥알을 긁어 뜬 빈 수저를 상추 한 움큼에 싸서 한 입에 넣고 우물우물 달게 먹었다.

요즘은 먹을 것이 지천으로 남아 버리기 일쑤이지만, 그 시절은 먹을 것이 없었다. 상추가 커서 대가 생기면 그 대를 잘라 껍질을 벗기고 하얀 물이 흐르는 속대를 약이라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상추가 천연 수면제이고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을 커서야 이제 알았다. 쑥갓도 가지를 잘라먹으면 그 가지가 퍼져 탐스러운 노오란 꽃이 수북이 자랐다. 그러면 그 꽃을 한 움큼 따서 병에 꽂아 오빠의 책상에 놓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기억. 그 줄거리를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콩쥐 팥쥐’, ‘어느 가난한 소금장수 이야기,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정서를 가질 수 있던 것은 어머니의 덕분이 아닐지. 지금도 상추만 보면 그때 그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꽃처럼 화사했던 젊었던 당신의 계절에 나빠진 건강을 어쩌지 못하고 짙은 그림자로 누었다. 석삼년 동안에도 하늘은 몇 번이나 피었다 진다. 또 한 계절마다 꽃은 피었다 진다. 그러는 사이에 음푹음푹 도랑이 패이고 그 곁으로 계절의 꽃들은 수북이 피었다 진다.

오 남매의 자식들을 오매불망 꽃으로 키우신 어머니. 깊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당신에 말씀의 씨앗을 내 텃밭에 뿌리고 가꾸며, 나 어머니 되어 그 자리에 그렇게 그 꽃을 보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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