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환 (옥천신문 전 기자)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서,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는 결국 판타지다. 제주도에서 모두가 효리처럼 살 수 없듯, 농촌에 산다고 누구나 혜원(김태리)이 될 수 없다. 시골은 마냥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 농촌의 하루는 일로 시작해 일로 끝난다. 그 또한 여느 곳과 다르지 않은 삶의 현장이라는 말이다. 삶터에 영화같은 낭만이 비집어올 틈은 그리 넓지 않다. 대상화든 우상화든, 한 장소를 단일한 이미지로 재단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영화의 배경 미성리는 철저히 만들어진 공간이다. 수년간 방치에도 잔금 하나 없는 주택, 시대를 앞서간 북유럽풍 인테리어, 경험을 무기삼지 않는 친절한 이웃까지.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고 툴툴대며 고모표 밥상을 쓱싹 비우는 혜원이 어찌나 복에 겨워 보이던지. 혜원에게 고향은 오롯이 힐링을 위한 장소다. 삶에 지친 관객을 위로하고 싶다는 임순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꾸며진 곳이다.

화룡점정은 혜원의 요리. 그녀는 엄마(문소리)의 레시피에 자기 개성을 더해 사계절 다른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 때깔도 참 곱다. 꽃잎을 튀겨먹는 장면에서는 숨이 멎는 듯했다. 꽃잎 색깔이며, 베어 물 때의 소리며, 그저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할 밖에. 그리고 그 과도한 이미지는 시골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 역설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미성리는 환상이구나, 시간과 의지가 있다고 누구나 이리 살 수는 없겠구나’.

비로소 이미지 바깥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혜원의 엄마, 미성리를 벗어나기 위해 일하는 은숙(진기주),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던 과거의 혜원과 재하(류준열)가 생각났다. 그들에게 미성리가 늘 새롭고 아름답기만 한 마을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 이들은 미성리가 너무나 익숙해서 지루했을 것이고, 때로는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생의 한 순간 이곳으로 되돌아왔고, 되돌아 올 것이다. 지루함을 견디다 지치면 또 다시 떠나갈 것이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다해도 고향의 기억은 일상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핵심은 시골이 얼마나 아름답느냐가 아니다. 자기만의 작은 숲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일 테다. 그 숲은 농촌일 수도, 도시일 수도 있다. 숲을 규정하는 것은 멋진 풍광이 아니다. 일상과 기억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이다. 혜원은 홀로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지 않았다. 그녀가 웃을 때는 항상 가족이, 친구가 곁에 있었다. 도시에서는 어땠을까. 불행하기만 했을까. 그건 너무 섣부른 단정인 것 같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 속 글귀다. 우리는 모두 나무다. 혼자서는 숲을 이룰 수 없다. 나의 작은 숲에는 타인이라는 나무가 산다. 그로 인해 나는 숲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혜원의 작은 숲은 결코 미성리가 아니라, 엄마와 고모, 은숙과 재하다. 물론 그들의 숲에도 혜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숲에 서로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훌륭한 위로가 된다. 게다가 그것이 아주심기상태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의 숲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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