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수(청소년 기자)
러시아 여행기(3) 후지르마을2

아침 8시 알람이 날 깨운다. 씻고 나가보니 어제와는 다른 추위다. 8:58분 해가 뜨는 시각, 지은이 누나랑 호보이 곶으로 향한다. 아직 30분여가 남았지만, 이미 밝다. 그 매서운 바람을 맞서며, 승헌이형과 일출을 기다린다. 너무 추운 탓인지 내 아이폰은 꺼져버렸다. 

북부투어를 위한 채비를 마치고, 다이닝룸으로 모여든다. 전날 했던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치킨 수프를 마신다. 리셉션에서 내일 이르쿠츠크 시내로 나갈 버스를 예약하고, 투어 밴에 올랐다. 귀와 코, 볼이 떨어져 나갈듯한 바람을 뚫고, 인스타에서만 보던 그 곳에 내려 사진찍기 바쁘다. 같이 투어를 하게 된 벨기안 두명은 러시아를 배우려 교환학생으로 와있단다. 우리에게 기사님의 설명을 영어로 재번역 해준다. 자기도 잘 모르지만, 아마 여기가 3형제 바위같다며 말이다.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를 달리고, 여러 포인트에서 풍경을 감상한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누가 지은 별명인지 정말 잘 지었다. 면적이 31.492km²인 만큼 한나절 동안 돌아다녀도 다 돌아보지 못 할 정도로 크다.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가기에는 알혼섬이 너무나도 이쁘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은 내 예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냥 가겠는가. 남부투어도 하고 싶은데, 어찌 할까 고민 중 아버지와 통화 후 결정을 내렸다. 두 달 전 예매한 블라디보스톡 행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취소해야겠다고 말이다. 리셉션에서 제일 싼 방에서 하루 더 묵겠다고 말했다. 예정에 없던 일인지라 싫은 티를 팍팍 낸다. 나는 말했다. Im sorry but I should to do that. here is so beautiful. So I decided it. And We have two more work.(죄송해요. 하지만 여기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더 있어요.) 자기도 이해한단다. 여기에 살지만 이 곳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우리 동행들과의 남부투어를 예약하고 버스표를 취소해줬다. 

동행들에게 알리고, 2등석 자리를 포기하고, 3등석으로 하루 늦춰 다시 예매했다. 오히려 잘됐다. 3등석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다이닝룸에 모여 대화를 시작했다. 지은이 누나가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19살이 일정을 10분 만에 바꾸고 실행에 옮기냐.' 라고 말했다. '후회하기 싫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승헌이 형이 투어 내내 말했던 아랑이 누나와 그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일정을 잘 못 계획해 잠만 자고 나가는 교대 형님들도 있다. 이 세상 텐션이 아닌 그들과 나눈 이야기와 함께 시간, 음식 모두 없어져 버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특히 아랑이 누나는 '너를 더 빨리 만났어야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은 사람이다. 잊지 못 할 또 하나의 밤이다. 

체감 영하 35도. 맨발의 슬리퍼, 반바지의 내 발은 얼어간다. 예림이 누나와 함께 아랑이 누나와 그 친구를 배웅해주고 들어왔다. 장난으로 했던 '지금 망치로 내 발을 치면 부러 질꺼 같다. '는 말이 진짜가 된 거 같았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열차 밖에 팔을 내놓았다가 망치로 치니 팔이 부러지는 그 장면. 찬물, 미지근한 물, 따듯한 물 순으로 발 마사지를 한다. 민호형이 알려준 꿀 팁이다. 내가 한 짓은 미친 짓이었다. 

후회하지 않으려 2등석에서 설국열차 꼬리칸으로, 제일 비싼 lakeview에서 이코노미로 옮기면서 '후회하기 싫다. '던 내가 이번 여행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내 다리가 언제 저 바람을 만나겠는가. 아랑이 누나와 짧은 만남은 그저 아쉽기만 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내가 밉다.(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나같은 경우는 드물다.) 그들과 함께라면 행복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또 다른 추억을 위한, 내일을 위한, 잊지 못 할 그 날을 위한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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