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래 (금산 간디학교 교사)

경찰관속으로
원도 / 이후진프레스(2021)

예전에는 책을 고르는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약속장소를 서점으로 하고 일찍 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책을 고르고, 내가 늦어도 상대가 책 보고 있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책을 집어 들곤 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책은 그 만남을 기념하는 증표 같은 것이 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타로점처럼 책도 곧 그날의 마음 지도와 같았다. 우리는 곧잘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책 구매가 기계적인 절차가 된 느낌이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산다. '미리보기' 기능이 있지만, 전체 책을 떠들어 볼 수는 없다. 책의 질감과 무게를 느껴볼 수도 없다. 책은 그저 상품이 되었다. 감성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홈쇼핑 상품처럼 팔린다. 광고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게 책은 다소 목적이 모호하고 감성적인 것이었다. 내가 가진 책은 나라는 그림을 담은 액자 같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엔 책을 권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는 별로 없다. 마을 축제에 갔는데 금산 읍내의 독립서점 <두루미책방>이 좌판을 깔았다. 몇 권 들춰보고 있으니 담요를 두르고 앉은 주인장이 말을 건넨다. 

"그 책 아주 좋아요."

"아, 그래요?"

나는 그 책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고 있었다. 좌판에 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으면서 물었다. "어떤데요?"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음... 찌푸려져요. 감정에 휩쓸리는 느낌이에요."

멋진 추천이었다. 바로 샀다. 그녀의 말처럼 눈살이 찌푸려진다.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 제복 뒤에 감춰진 사람이 보인다. 학교에 있다 보면 '교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직장인으로 치면 그저 업무 외에 '온갖 잡다한 잡무'의 느낌이랄까? 경험해 봐야 아는 게 있는 법이다. 이 책을 보면 '경찰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학생들도 안 좋은 행동을 하곤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그래도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관대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성장하는 중이고 바뀔 테니까, 지금은 과정일 뿐이니까. 농담으로 이런 말도 한다. "좀 더 버텨서 졸업만 시킵시다." 그러다가도 걱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졸업하고도 더 심해지면 어쩌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도 입힐 것이고 사는 게 고달플 텐데?'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안타깝게도 사회의 진상들은 경찰이 받아내고 있다. 강해 보이는 제복에 가려진 연약한 인간을 발견하면 야수처럼 피를 빨아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들은 약점이 많다. 일단 한 발 쑥 들이밀면 그들의 파리한 민낯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교육하는 이유는 그런 야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나는 중앙경찰학교 때 딱 한 번 테이저건을 실습해본 이후로 여태껏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왜냐고? 테이저건 카트리지, 쉽게 말해서 총알이 비싸다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못 쓰게 하는 걸. 경찰관들은 권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거라고 말해. 괜히 쐈다가 범인이 다치면 모든 민사적/형사적 책임을 그 경찰관 혼자서 해결해야 하니까.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외부적 비난 한 번 받는 게 낫다고들 하지. 현장은 아주 긴박해. 순간의 판단으로만 이뤄지는 현장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 세월에 총을 사용할 수 있을까? 결국 못한다는 이야기야.” (82~83쪽)

절절하다. 저자처럼 섬세한 사람이 경찰을 하면 참 힘들겠다 싶다. 표현도 좋다. 경찰 초기엔 다들 이 사람과 비슷할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상처를 덜 받을까, 각자 진화하면서 적응할 것이다. 이 사람은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은 실적과 스펙과 빽을 바탕으로 승진하거나 전출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대민업무가 없는 부서를 꿈꾸겠지. 또 뭐가 있을까? 이도 저도 힘든 사람은 상처를 받고 비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렵게 된 공무원이니 그만두지도 못하고 괴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 같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무원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오도 가도 못하는.

경찰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보인다. 어느 부분은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미국 경찰의 공권력 남용(총기 사용 및 과잉 진압)과 한국에서 일어나는 경찰 관련 사건은 정말 수준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 경찰은 육체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정신노동자 같다. 이들은 태권도를 단련하기보다는 심리상담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거리의 심리상담사에 가깝다. 

주변에 경찰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었고, 경찰을 하고 싶다던 동료 교사도 있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정의감이 강하고 신체 능력이 우수했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 경찰은 우수한 신체만큼이나 마음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경찰이 하기 싫어질 것 같다. 공무원이라는 장점이 커서 경찰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거품을 빼는 용도로는 참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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