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래 (금산 간디학교 교사)

몸과 인문학 / 고미숙 저 / 북드라망(2013)

새로 이사한 지인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 그는 내게 책을 두 권 집어 주었다.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고미숙 씨 책을 읽어볼 기회라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었다. 참 쉽게 읽힌다. 평소 내 생각이 복잡하게 헝클어져 있었다면, 이 책은 그걸 다리미로 밀듯 시원하게 정리해 준다. "맞아, 내가 이래서 이게 맘에 안 들었다고!" 뭔가 탐탁지 않았던 것들을 신박하게 정리해 준다. 

“성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이다. 타인과의 교감이 아니라 인정욕망이다. 전자는 충만감을 생산하지만, 후자는 결핍을 생산한다.” (20쪽)

성형의 긍정적인 면으로 자신감 상승을 내세울 때가 많다. 저자는 그것이 자기기만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는 삶이다. 내가 아이돌 문화를 싫어하는 맥락과도 통한다. 그들은 남의 시선과 반응에 의존한다. 내부의 시선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에 의존한다. 성형을 통해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을 얻으려는 것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나는 아이돌, 특히 여자 아이돌들의 얼굴에서 개성을 찾는 게 힘들다. 기가 막히게 구분하는 게 신기하다. 이제 그들이 똑같이 예쁘다고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모두 마네킹 같다. 마네킹은 예쁘게 장식한 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구걸한다. 저자는 '밥을 비는 것보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라고 말한다.

“흔히 사랑을 통해 삶이 구원되었다고들 말한다.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가족과 사랑뿐이라고. 정말 그런가?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랑이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체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78쪽)

얼마 전에 배우 지진희가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배우 생활을 하기에 자녀들에게 미안한 게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 나로 인해 태어났는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신선했다. 대개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미성년(2019)>이라는 영화에서도 부부는 고등학생 딸에게 아빠의 불륜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미 따로 살면서 자신들의 이혼을 고등학생 아이에게 알리지 않는 부모들도 꽤 있다. 어떻게든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기보다 자신이 아이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 자기기만이나 면피에 가깝지 않을까? 심리학이 유년기의 무의식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어떤 종류의 상처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자녀와의 솔직하고 원활한 소통이나 성장의 기회를 주지 않고 온실에서 자라게 하는 게 아닐까? 

“나무의 목표는 열매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삶 또한 그렇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 (131쪽) 

어린 시절 나에게 꿈을 묻는 어른은 별로 없었다. 당시 꿈은 약간 사치스러운 개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빠처럼 월급쟁이가 되는 게 청소년기의 막연한 꿈이었다. 누군가 진심으로 물었다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꿈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 다들 꿈을 찾고 있고 그게 없으면 초조하고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뭔가를 잘 설계하고 그것에 맞춰 착착 진행되는 것을 진로라고 생각하고 꿈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학교도 부모나 학생들의 욕구를 맞춰줘야 하다 보니 진로 상품을 내세워야 한다. 그런 게 내심 불편했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된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해보면 안다. 인성이 좋은 친구는 어떻게든 같이 하고 싶다. 인성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든 멀리하고 싶다. 그게 전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학교에서 뭘 가르치는 게 좋겠는가?  

인류의 역사는 앎과 지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디지털 혁명을 통해서 드디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철학과 사유를 하며 주체적 인간이 되기보다는 정규직과 돈이라는 노예의 삶으로 퇴행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선조 때 허준이 쓴 동의보감도 널리 실용적 의학을 알리고자 했고 세종도 한글을 창제하면서 글이라는 엄청난 사유의 도구를 일반 대중과 나누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 모든 게 주어지니 등잔 밑이 어둡다. 다들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방대해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는 건 아닐까?

책이 두껍지도 않고 얘기가 어렵지도 않다. 삽화도 예쁘고, 특히 저자 고미숙의 말투가 시원시원하다. 사이다 말투를 좋아한다면 이 책이다. 저자가 있는 <남산강학원>이라는 인문학 공동체에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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