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업인 박명희씨 인터뷰
수해·인력난에 매출 절반됐지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공급한다는 자부심 지킬 것”

귀농 8년차 박명희씨가 포도가지를 손보고 있다.

귀농 8년차 박명희(59, 동이면 세산리)씨에게 옥천은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그가 직접 심은 형형색색의 야생화 길을 따라 들어간 2천700평 포도 하우스에는 친환경 농법으로 길러진 포도나무 1천350주가 늘어서 있었다. 하우스 바닥에는 초생농법을 위한 풀이 자라고 있고 한편에는 10여 종은 족히 넘는 야생화들이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박명희씨는 귀농하기 전부터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조합원으로서 친환경 농법과 건강한 먹거리 공급에 관심이 많았다. 도시에서는 한살림 소비자로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귀농 후 직접 기른 친환경 농산물을 식탁에 올리고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생산자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농사를 짓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고된 일이었지만 친환경 농사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8년간의 귀농생활을 이어왔다.

지난 여름 긴 장마와 코로나19로 심화된 인력난은 8년차 친환경 농사꾼의 신념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수해로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모든 농민들이 수해를 입었지만 특히 친환경 농가는 약품을 이용해 손을 쓸 수가 없어 피해가 더 심각했다. 코로나19로 친구처럼 지내던 동년배 이주노동자는 모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인력난이 심해 점점 농사를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박명희씨는 ‘그래도 친환경 농법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씨 있는 샤인머스켓’ 본 적 있어요?

귀농을 하고 싶던 차에 사촌언니로부터 옥천에 포도밭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사일이 쉽지 않다며 귀농을 만류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경상북도 구미에서 옥천으로 귀농했다. 의류 매장 사업을 하던 박명희씨에게 실전 농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박명희씨는 농업기술센터 포도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남편은 귀농귀촌인 교육을 통해 선도 농가의 지도를 받고 기술을 익혔다. 현재는 2천700평 포도하우스를 운영하는 8년차 농민으로 성장했다. 

“도시에서만 살다보니 항상 시골 가서 살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신랑이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혼자 가겠다, 주말 부부를 하자라고까지 말했죠. 마침 포도 농사를 짓고 싶었는데 사촌 언니가 사는 옥천에 포도밭이 났다고 해서 농사일은 책임지고 내가 하겠다며 신랑을 설득했죠”

박명희씨가 하고 싶어 한 일은 단순한 포도 농사가 아니었다. 귀농하기 전부터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조합원으로서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귀농을 하면 직접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식탁에 올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박명희씨는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신했다. 지금은 한살림 충북남부권역 생산자협회 여성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자분 씨 있는 샤인머스켓 봤어요? 샤인머스켓은 보통 씨가 없고 알이 크죠. 저희는 샤인머스켓을 지벨린 처리를 하지 않아 씨가 있어요. 도시에서 살면서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한살림 농산물을 소비해 왔어요. 귀농을 하면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쓴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농산물도 곧 제가 먹는 농산물처럼 여기고 재배하고 있죠. 귀농 후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자로 활동하며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명희씨는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 친환경 농법을 고수했다. 새벽에도 나와 직접 해충을 잡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임에도 8년 간 친환경 농법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친환경 농법에 대한 신념 강해서 오히려 일이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다만 일이 쉽지는 않아요. 최고로 어려운 게 깍지벌레예요. 농약을 쓰지 않으니까 새벽 1시, 2시에 나가 벌레를 잡아요. 깍지벌레가 낮에는 잘 안 보이는데 밤이 되면 희미하게 야광 빛을 띄거든요. 이쑤시개로도 잡고 면봉으로도 닦고 씌워놓은 봉지 안에 있는 것도 잡고...”

■ 기후변화·인력난 속 친환경 농법 고수하기 힘들어

지난해는 친환경 농법에 대한 8년간의 열정을 시험하는 듯 고난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로 함께 생활하며 일을 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모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박명희씨는 태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와 영상통화를 하며 ‘코로나19가 끝나 서로가 다시 같이 일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인데 동년배에요. 여기서 같이 먹고 자고 하다보니 친구가 됐죠. 코로나19 발생 전에 남편하고 태국에 가서 같이 패키지 여행을 할 정도로 친했어요. 믿고 농사일을 같이할 수 있었죠. 친환경 과수 농업은 수작업이 많은데 지금은 인력난 때문에 농사를 조금씩 줄여야하지 않겠나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엎친 데 덮친 격 긴 장마로 생산량이 줄고 매출도 반토막이 났다. 주변에서는 왜 굳이 친환경 농법을 고수해야 하냐며 의문을 표했다. 

“비가 오면 하우스 외부와의 온도차 때문에 하우스를 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안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기는 거예요. 친환경 농가는 농약으로 곰팡이를 해결할 수 없잖아요”

■ 포기할 수 없는 ‘친환경’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인력난 속에서도 친환경 농법을 포기할 생각은 못해봤다는 박명희씨. 

“내가 먹을 농산물이라는 생각으로 농사를 짓잖아요.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농사를 시작했고 처음 그 마음을 계속 갖고 있는거죠. 인력이 부족하면 밤을 새서라도 해내야죠. 저는 그래도 항상 즐겁게 일해요. 아침에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면서 “얘들아 사랑해”라고 외치면서 들어가요. 그리고 하우스 내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둬요”

박명희씨는 바쁜 와중에 틈틈이 여유를 가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취미 생활로 키운 야생화들 사이에서 남편과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즐긴다고. 코로나19가 해소되면 기존에 해 오던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팜파티를 열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구미에 있을 때부터 야생화 전시회에 참여할 정도로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집으로 오는 길가에 핀 야생화들도 제가 다 심은 거예요.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체험 프로그램을 못 열었던 게 아쉬워요. 도시 사람들이 농촌 체험을 하며 건강한 먹거리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거든요. 코로나19가 얼른 해소되어서 체험 프로그램, 팜파티도 다시 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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