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얘기엔 엔딩따윈 없어/이재경

2019년 8월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면 집집이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아니 검은 연기였던가. 짙어진 하늘 덕에 무슨 색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연기가 하늘을 향해 헤엄할 때 마을에 진동하는 쓰레기 태우는 냄새 우리 동네의 냄새.

옥천 읍내에 살던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군서로 이사 왔다. 짧다면 짧은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웃이 마냥 부담스럽다고 느꼈던 난 이웃의 정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문 앞에 놓여 있는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모를 옥수수가 재미있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몇 개월 전 우리 아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에 찾아와 본인이 더 울며 안타까움을 표하던 주민들이 있었다. 우리 아빠의 죽음을 알게 되신 뒷집 할머니께서 담장 너머 엄마를 바라보며 젊은 나이에 가서 안 됐다, 사람이 정말 참했다는 등의 말을 끝내고 던지신 “나도 이제 몇 년 뒤면 없을 텐데”, “아이고, 나도 이제 가야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각난다. 나름의 위로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 겨울, 전기장판을 사용하지 않는 우리 가족은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은 늙어빠진 보일러가 드디어 고장 난 덕에 꼼짝없이 추운 밤을 지낼 신세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 같은 동네에 사는 교회 아는 분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온풍기를 빌려주셔서 가족이 다 같이 한 곳에 누워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그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나름 좋은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과 집 옆쪽에 있는 텃밭에 풀이 걷잡을 수 없이 무성해졌을 때 쯤의 일이다. 엄마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선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일을 나가려 집을 나섰을 때 동네 아저씨를 마주쳤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마침 잘 만났네! 풀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약 좀 쳐놨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자던 새벽 일찍 아무도 모르게 약을 쳐놓고 조용히 갈 길 가신 아저씨가 웃기기도 했고, 시골 생활이 처음인 나에겐 네 집 내 집 개념이 없는 것 같은 동네가 황당하기도 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시골에 내려와서 사는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도시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 친한 이웃을 만들면 내가 혼자 죽어있어도 금방 찾아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사라도 가면 시골냄새와 따뜻한 정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