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추억과 희망이여
                                                김준태 '국밥과 희망' 부분 

범죄소년/2012
범죄소년/2012

<범죄 소년>의 지구는 병든 할아버지 정도는 감당할 만했다.

그러나 불쑥 찾아 온 젊은 엄마는 힘들었다.

집도 절도 없는 엄마가 지구를 감당한다고 어딘가로 데려가는데 미용실 원장의 문간방이다. 영화 <거인>의 영재는 부모가 있지만 그룹홈에서 산다. 지구가 소년원과 치료감호소를 들락날락거린다면 영재는 그룹홈에서 눈칫밥으로 버틴다.

나는 어린 시절 눈치가 빨랐다.

눈치가 너무 빠른 게 탈이었다.

시골 장이 서는 날이면 가난한 어머니는 국밥집에서 품을 팔았다. 그때마다 어린 동생과 나는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국밥집 한구석에서 국밥을 먹어야 했다.

등뒤가 따끔거려 뒤를 돌아보면 주인 아주머니가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국밥집을 하는 외가댁도 편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밥은 시장에 가면 찾는 단골 메뉴다.

나에 비하면 영재는 한 수 위다.

그룹홈을 지원하는 물주가 성공회라서 그의 희망도 성공회 신부다. 영재에겐 따로 사는 엄마와 아빠가 그들의 부모라기보다는 당장 자신에게 주거 공간을 마련해주는 성공회 신부와 그룹홈이 그들의 부모다. 자립할 수 없는 유아기 혹은 청소년에게 생존의 조건을 마련해주는 따뜻한 집이 그들의 부모다. 애착의 대상은 권력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눈치를 보면서 자랄 수 밖에 없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치졸한 협박은 생존의 조건을 미끼로 걸 때다. 

설상가상 영재 혼자서 생존하기 어려운 조건에 아버지는 동생 ‘민재’까지 그룹홈에 떠맡기고 가려한다.

지구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실에 밀려 간다면 영재는 상황을 돌파하려는 친구다. 영재처럼, 지구의 젊은 엄마도 미용실 원장의 문칸방에 머물려고 안간힘을 쓴다.

영화 <거인>의 영재가 할 수 있는 생존전략은 ‘착한 아이’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룹홈의 기부 받은 물품을 몰래 팔고 다니는 ‘사기’치는 영재도 또 다른 자아다. 이중이든 다중 인격이든 인격의 각도를 바꾸는 작용기제는 생존전략이다. 한가지 인격으로 버티기엔 현실은 녹록치 않다. 대중을 즐겁게 하는 개그맨들이 가정에서 근엄한 얼굴을 하고 가부장의 권위를 부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한 인격과 존재를 위한 인격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삶은 파국에 가까워진다. 한때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다중 인격으로 살아왔던 시대를 살았고 신자유주의의 끝물을 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영재와 지구를 보면서 너무 빨리 생존을 위한 인격을 배우는 거 같아 아프다.  

지구를 찾아 온 엄마는 뾰족한 수가 없는 형편을 견디기 힘들어 다시 나간다. 지구는 주유소 알바를 하면서 여자친구와 모텔에서 지낸다. 어느 날 지구를 괴롭히는 선배를 폭행하는 바람에 지구는 다시 소년원으로 들어가고 임신을 한 지구의 여자친구는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는 지구 엄마를 찾아간다. 마지막은 지구 엄마가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가서 흥정하는 장면이다. 출소를 한 지구와 임신을 한 지구의 여자 친구와 함께 살 수 있는 거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집을 구할만한 돈이 없다. 지구 엄마의 누추한 형편을 눈치 챈 중개사는 말을 끊고 사무실로 들어가고 지구 엄마는 살짝 웃는다.

그럴 게다.

아직까지도 시장에 가서 존재를 서럽게 했던 국밥 한 그릇을 찾는 이유는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 내 존재의 이유를 증명 받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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