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림 신채원 대표 인터뷰
‘사람이 하늘이다’ 동학 정신에 감명받아...동학 정신 잇는 인물 인터뷰 연재
우리고장서 활동중인 김성장 시인·고갑준 아자학교 대표, 동학으로 이어진 인연

미디어세림 신채원 대표<br>
미디어세림 신채원 대표

미디어세림 신채원 대표(39)가 옥천을 다시 찾았다. 2018년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읍 금구리)에서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1923)을 기록한 오충공(67) 감독의 다큐멘터리 순회상영회를 연 지 3년만이다. 보은취회* 기념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한국전래놀이협회 아자학교 고갑준 대표를 만나러 잠시 들렀다고. 신채원 대표는 순회상영회로 옥천을 방문하기 전부터 ‘문학’과 ‘동학’으로 옥천과 인연을 맺었다.

“문학도였을 열아홉, 스무살 당시 해마다 지용제에 참여하기 위해 옥천으로 왔어요. 민예총 충북지회에서 문화활동가로 일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정천영 선생님, 김성장 선생님을 비롯해 옥천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도 알고 지냈죠. 당시에는 옥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땐 젊은 사람이 일할 만한 기반이 없어서 정착할 수는 없었죠”

소원했던 옥천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준 것이 ‘동학’이었다. 동학에 관심이 있으니 자연스레 옥천과 인연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지역 청산면 일대는 보은에 이어 동학의 주요 거점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동학 지도부는 지금의 청성면 거포리에서 보은취회를 결정했다. 보은취회 이후 보은대도소*가 관군들에 의해 발각되자 최시형 선생은 임시대도소와 거처를 청산 한곡리로 옮겼다. 보은취회 다음해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장군을 필두로 한 고부민란이 시작되자 최시형 선생은 한곡리에서 모든 교도들을 동원해 고부민란을 지원하는 기포령을 내렸다. 당시 민란에 참여하기로 한 7명의 동학군 이름을 새긴 ‘문바위’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신채원 대표는 2013년 보은취회 120주년 행사를 보며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구호에 감명받아 동학 정신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동학정신 계승활동에 힘써온 문화 운동가이자 민예총 옥천지회 지부장을 역임한 김성장 시인(옥천작가회 회원)도 이 중 한 명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불과 열아홉, 스무살에 민예총 충북지회에서 문화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선배들은 대학도 가고 평범한 직업을 가져서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만두고 나와서 서울로 올라가 잡지사, 신문사에서 계속 글 쓰는 일을 했죠. 도종환 선생님 시에 나오는 ‘창자 속 같은 길’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며 남들처럼 똑같이 지내다 보은취회 120돌 때 신세계를 접한 거예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거룩할 수가 있어? 사람이 하늘이래. 그래 동학이다!’며 동학에 꽂힌 거죠”

*보은취회: 1893년 3월11일 2만 명에 이르는 동학 교도들이 충청북도 보은에서 ‘척왜양창의(일본과 서양 세력을 배척하고 의를 일으킴)’와 ‘보국안민(국가를 도와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명분으로 모인 집회다. 기존 집회들은 처형당한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죄를 풀어달라는 교조신원운동 위주의 종교적 성격의 집회였다. 보은취회는 여기서 나아가 민중들의 보편적인 요구까지 포용한 현실적·정치적 성격의 집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도소: 동학의 교세 확장을 위해 설치된 교단의 중앙 사무 조직

■동학, 삶의 이정표가 되다

신채원 대표는 보은취회 120돌 기념 행사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정신을 기리고 현대사회에서도 그 정신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을 주목했다. 사회 불평등과 모순에 맞서 인권 신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시작은 동학을 소설로 풀어낸 <동트는 산맥>과 <흰 옷 이야기>로 알려진 채길순 교수 인터뷰였다.

“보은집회를 해산시키려 파견된 어윤중의 기록에 따르면 집회에 온 사람들은 ‘재능이 있으나 뜻을 펼치지 못한 자’,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한 자’에요. 현대의 노동자, 농민,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사회 곳곳에서 모순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시대의 어른들을 만나 인터뷰하기로 했죠. 지금은 폐간한 월간 개벽신문(대표 박길수)에서 먼저 제안을 해 채길순 교수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기고하기도 했어요. 이를 계기로 2015년부터 월간 개벽신문에 인터뷰물을 연재하기도 했죠”

동학은 언론활동 뿐만 아니라 신채원 대표의 삶의 이정표가 됐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자신 또한 동학 정신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면 단지 인터뷰이의 삶을 응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사회 운동에 뛰어들곤 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동학에 관한 역사적 진술 규명에 힘써온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 명예교수는 올해 90세이고요,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기도 했죠. 이분들이 ‘나는 이런 꿈을 꿨어. 나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갖고 있고’라며 방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이걸 들은 저는 좀 다르게 살아야 하잖아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최초로 영화화한 재일교포 오충공 감독을 만나다

2016년부터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1923)을 기록한 오충공 감독의 다큐멘터리 순회상영운동을 시작한 계기도 이 때문이었다. 오충공 감독과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문제를 알게된 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학술적 기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채원 대표는 성공회대 대학원에 입학해 연구 활동에 돌입했다. 동시에 청주, 부산, 제주도, 서울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오충공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학살 피해자 유족을 찾아 나섰다. 이 과정을 기록한 오충공 감독의 새로운 작품 제작을 지원하는 작업까지 병행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문제를 다룰 학술적 기반이 없더라고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과 더불어 학술적인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성공회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연구를 시작했죠. 영화상영운동을 함께 진행했고요. 오충공 감독의 작품은 1983년 작품인데 제 나이하고 같은 영화를 5년 동안 들고 다니며 배급사를 찾았어요. 하지만 배급사를 찾기 어려워 직접 배급사를 설립하고 전국으로 상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학살 피해자들은 과연 누구인지, 그들의 고향과 이름, 가족을 찾으려고 유족을 찾아나섰어요. 유족들은 자신들이 유족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었죠”

2018년 우리지역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상영된 오충공 감독의 작품 <감춰진 손톱자국>(1983)과 또 다른 작품 <불하된 조선인>(1986)은 청주를 시작으로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성황리에 상영을 마쳤다. 제주도에서는 한 대형영화관에서 상영할 기회를 얻었다. 신채원 대표가 그토록 바라던 1924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주기 추도회가 열린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도 상영에 성공했다. 

“제주도에서 영화 상영 중에 감독님이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더라고요. 30여년 전에 만들어진 자기 영화가 팝콘을 먹을 수 있는 영화관에서 상영이 될 줄은 몰랐다면서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진행한 상영회와 추모문화제는 공간의 역사적 의미가 커요. 당시 종교시설에서만 집회가 가능했거든요. 청년들이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모여 1주기 추도식을 가졌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큰데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아 아쉬웠죠. 저는 이곳에서 상영하는 게 간절한 소원이었어요”

■앞으로의 과제, 오충공 감독의 새작품과 월간 신채원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채원 대표는 오충공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 완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충공 감독은 영화순회운동과 유족찾기 전 과정을 담은 새로운 다큐멘터리 작품을 제작 중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시민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범죄가 아닌 군과 경찰이 개입한 범죄예요. 그럼에도 우리 정부에서는 임시정부 때를 제외하고 100년이 다 되도록 공식적으로 항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충공 감독이 세 번째 작품을 완성해가고 있으세요. 작품이 잘 완성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게 제 당장의 목표입니다”

동학 정신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신채원 대표는 그러한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월간 신채원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월간 신채원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해 온 이러한 일들을 기록하는 거죠. 저는 글을 통해 생명의 가치,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겁니다. 구독자보다는 함께 걸어갈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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