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힘/유성희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요?”

“어디요? 어디?”

“저기... 안 보이세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흥분되어 한마디씩 거들었다. 

“저 숲 속에 꼬리 좀 봐.”

“저기 저거는 뒷다리... 흐흐.”

“저 쪽에 머리... 백호잖아.”

내 눈에는 높은 산에 절벽만 보였다. 이상한 건 호랑이가 도망가지도 않나 보다. 모든 사람이 같은 곳을 가리키며 찾았다고 하니 말이다. 맞은편 높은 산엔 아직 단풍이 깊게 물들지 않았다. 푸른 나무들이 우거졌다. 푸른 숲 속에 하얀 절벽이 위엄이 있어 보였다. 타고 있던 케이블카 안에 안내방송이 나왔다. 친절한 아나운서는 착한 사람 눈에만 호랑이가 보인다며 예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거짓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착한 사람이라... 그럼 그렇지 그러니 내 눈에 보이겠어?’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떳떳이 얘기할 수 없음은 분명히 안다. 그러니 일찍이 호랑이 보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어릴 때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마음에 덕지덕지 때가 끼니 눈도 흐려지고 뵈는 것도 없어져 갔다. ‘그래서 안 보이는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속마음과 달리 얼굴엔 착한 미소를 어느때든지 지을 수 있어졌다. 아주 즐겁지 않아도 크게 손뼉 치고 웃어 줄 수도 있다.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괜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심지어 기분이 나빠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안 그런 척하고 있을 수 도 있다. 점점 더 내 속 마음은 깊게 숨게 되고 얼굴에 쓴 가면은 두꺼워져 갔다. 아무도 그런 나를 눈치 채지 못하는 거 같았다. 그러나 가끔 그 가면을 벗을 때가 있다. 그러면 신선한 바람이 얼굴을 감싸고 마음 깊이까지 들어와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그러면 아이처럼 웃고 떠들었다.

함께 동행 하는 막내아들과 남편을 흘깃 쳐다봤다. 케이블카 유리창을 통해 뚫어져라 내다보던 막내아들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호랑이를 찾았나 보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내 눈길도 따라가 보았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 봐도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 옆에 있던 남편도 그제야 찾았다는 듯 웃는다. 착한 사람 대열에 끼어 기분이 좋은가 보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때 일이다. 1학기 초라 추운데 바짓가랑이를 적셔 왔다. 이유인즉, 담임 선생님이 자진해서 화장실 청소를 할 사람을 찾았는데 얼른 손을 들어 청소를 하고 왔다고 했다. 다른 아이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면 칭찬을 폭풍처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뱉은 말 “착한 아이 신드롬이야... 지 아빠 닮아서....”라며 옷이 젖어 뻘개진 다리를 보며 궁시렁대었다. 그런데 남편은 “잘했어... 착하네...”하며 젖은 바지를 갈아입혔다. 부자는 무엇이 좋은지 킬킬댔다. 나는 그 속에 끼지 못했다. 그들은 조금 손해 보는듯해야 편한 사람들이다.

결국 나만 호랑이를 찾지 못한 채 케이블카를 내렸다. 높은 산꼭대기 찬 바람이 불거라고 생각해 잔뜩 끼어 입고 왔다. 목도리까지 칭칭 감았다. 나의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옷깃을 여몄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까지 했으니 완전무장을 한 것이다. 아마 친구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바람 한점 없이 따스한 햇볕이 우릴 맞았다. 하늘은 두팔을 벌리고 새파란 가슴을 내밀며 환영했다. 칭칭 감은 목도리를 풀었다. 따뜻한 햇볕은 겉옷 하나를 더 벗겼다. 모자도 벗었다. 마스크도 벗었다. 울긋불긋 익어가는 가을은 살며시 얼굴에 가린 가면도 벗겨 주었다. 시원했다. 숨을 들이마시니 파아란 하늘이 가슴 깊이 따라 들어왔다. 마음속 깊이 끼인 때가 날숨과 함께 뛰쳐나왔다. 눈도 맑아진 것 같다. 무엇이든 다 보일 것 같다. 

어디 다시 한 번 호랑이를 찾아볼까?

맞은편 산이 잘 보이는 곳에 섰다. 아까 본 그대로 푸른 숲에 절벽이 보였다. 그런데 그 절벽에 호랑이 다리가 보였다. 꼬리도 보이고, 머리까지 ... 백호가 보였다.

가을 하늘이 가슴에 들어와 청소해준 덕택에 착한 아이로 돌아갔나 보다.

가슴이 뻥 뚫렸다.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고 호랑이를 보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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