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가치 인정한 직불금·농민수당에 농민 ‘자존감’ 높아지죠
농업 가치 인정한 직불금·농민수당에 농민 ‘자존감’ 높아지죠
  • 허원혜 기자
  • 승인 2021.04.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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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업인 이재숙씨 인터뷰
직불금 개편에도 농업 전념 여건 여전히 미비...“젊은인구 유입돼야 농촌살아”
한여농 이재숙 전 회장이 포도가지를 손보고 있다.
한여농 이재숙 전 회장이 포도가지를 손보고 있다.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농민들의 자존감과도 연결된 문제다. 옥천읍 삼청리에서 과수농사를 짓는 이재숙(59)씨는 유년시절을 다 보낸 과천을 떠나 23살 젊은 나이에 옥천으로 시집을 왔다. 옥천에 온 지 1년 만에 남편과 농사일을 시작했다. 사무직이던 이재숙씨는 농사일이 생소했다. 남편이 농사일로 한 소리 할 때면 답답함과 서러움을 참지 못해 12번도 더 울었다.

젊다는 이유도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할 수 없었고 그저 헤쳐 나가야 하는 줄만 알았다. 초보 농사꾼이 어느덧 30년차 농업인이 됐다. 그새 세상도 바뀌었다. 정부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다며 직불제를, 충북도에서는 농민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농촌의 가치를 체험하러 온다. 농사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자존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중요한 일을 잘해내는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

하지만, 농촌 여건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은 여전히 미비하다. 돌봄 인프라가 부족하고 젊은 인구가 유입되지 않으니 기계화가 어려운 과수농가는 인력난에 시달린다. 이재숙씨는 지난 4년간 (사)한국여성농업인 옥천군연합회(이하 한여농) 회장을 역임했고, 이번 해부터 한여농 충북도연합회 정책부회장직을 맡았다. 농사일이 유일한 관심사인 이재숙씨의 또 다른 관심사는 이런 농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 하루에 12번도 더 울던 초보 농사꾼

이재숙씨는 옥천읍 삼청리에서 포도·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은 합쳐서 7천 평 밭을 일구고 있지만 처음부터 농사를 크게 짓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작은 평의 논을 지금의 과수농장으로 키우기까지는 많은 고난이 있었다. 농사일도 서툴렀지만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 마을에서 제일 젊은 농사꾼이라 부녀회장 같은 직책도 맡아야 했다.

“모내기 할 때면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잖아요. 근데 애들 유치원도 보내야 하고, 아버님도 모시고. 마을에서 제가 제일 젊었어요. 나는 부녀회장 시키고 남편은 이장을 시키더라고요(웃음). 남편은 12년 넘게 저는 20년 가까이 마을에 봉사했죠. 농사일을 못할 정도로 바빴지만 마을 어른들이 하라고 하시니까.”

육아는 친정어머니 그리고 마을 어른들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4남매를 맡길 곳은 언제든 있었지만 부모의 손길이 제일 필요한 때 제 손으로 키우지 못한 게 마지못해 아쉽다는 이재숙씨. “내 손이 많이 가야 할 때, 특히 유치원 입학하기 전에 외할머니 손에 자랐죠. 그게 아쉬웠죠.”

■ 농업인으로서 인정받을 때 자존감 높아져

이재숙씨는 이제 하루에 12번도 더 울던 초보 농사꾼이 아닌 30년 넘는 경력의 농업인으로 우뚝 섰다. 요즘은 농업직불금이나 농민수당처럼 농업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라 자존감이 더 선다고.

“예전에는 도시에서 실패하거나 할 게 없어서 농사짓는다던데 이제 다 옛말이죠. 이제 농업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정부에서 이런 저런 지원을 해주잖아요.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돈을 내고 농촌을 체험하고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여성 농업인들은 남성 농업인들에게 가려 독립적인 농업인이 아닌 아내라는 이름의 보조인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재숙씨와 남편 곽동덕씨는 서로를 어엿한 농업경영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남편이랑 저랑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또 한 번 저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죠.”

■ 돌봄 인프라·농업인 관절병 관리 등, 농업 가치 독려하는 여건 마련 절실

30년 넘는 농사 경력을 가진 이재숙씨도 요즘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력난이다. 육아며 농사일이며 상부상조하던 마을 공동체는 고령화돼 약화되고 있다. 젊은 인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 더 절실히 느낀다. 

“논농사는 기계화가 상당 부분 됐지만 과수는 아직 손으로 하는 작업이 많아요. 아직까진 일손이 있지만 어르신들 연세가 점점 들고 있어서... 마을에서 서로 알고, 농사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랑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곧 인력난이 심해질 것 같네요”

농업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이재숙씨도 농촌에 젊은 인구가 유입되기 어려운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농촌에서 젊은 부부가 농사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여건이기 때문이다. 

이재숙씨는 “환경은 좋지만 여건은 좋지 않죠. 저도 큰 애 어릴 때 논에 데리고 다니며 키웠어요. 잠시 한 눈 팔고 있으면 큰 애가 파릇파릇한 벼를 다 뽑아버리기도 했죠.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지자체에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서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지 시골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겠죠. 그냥 허허벌판에 가서 농사지으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한편 점점 나이를 먹는 농민들이 농업에 전념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건강 때문이다. 많은 농민들이 쭈그리고 앉은 채 반복적인 동작을 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숙씨는 농업은 공익적인 산업이지만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정작 ‘뼈를 갈아먹고 산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과수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서서 일하니까 괜찮지만, 밭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는 관절 수술 안 받은 사람이 없어요. 예전에 동네 어르신이 ‘농사는 뼈 갈아먹고 사는 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섬뜩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농민들이 편하게 농사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죠.”

■ 농사에 전념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다

자식들도 독립할 나이가 되어 농사일을 뒷전하고 여가를 즐길 법도 하지만 이재숙씨의 우선순위에는 지금도 농사뿐이다. 포도 농가 중에서는 선진 농가로 알려져 있지만 기술은 매번 새로워질 수밖에 없기에 계속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나간다고.

농사밖에 모르는 이재숙씨가 관심을 갖고 있는 또 한 가지 분야는 바로 농업과 농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재숙씨는 지난해까지 한국여성농업인연합회 옥천지부(이하 한여농) 회장으로 4년간 활동했다. 현재는 한여농 충북지부 정책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곳에 농민이 있고, 농민들이 소중한 땅을 일궈가고 있음을 목소리 내어 알려야 행정도 움직여요. 지금도 직책을 맡고 있어 부담이 크지만, 농민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야죠”

이재숙씨가 재배하는 포도. (사진제공: 이재숙)
이재숙씨가 재배하는 포도. (사진제공: 이재숙)
한여농 이재숙 전 회장이 포도가지를 손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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