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호수길과 주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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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천닷컴
  • 승인 2021.04.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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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형
옥천읍 교동리

▶ 장계리

장사리와 욱계를 합쳐서‘장계리’라 함. 장사리는 진모래를 한자화 한 것임. 진은 긴 것이 되고, 길게 모래 백사장이 펼쳐 있어서‘진모래’가 된 것 같다.

욱계는 마을 가운데 작은 하천이 있으나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고 그 외에는 물이 흐르지 않아 바닥이 마른 내(川)였기 때문에 햇빛이 들면 빛이 난다하여 ‘욱계’라 이름 하였다. 욱계는(旭: 아침해 욱, 溪: 시내계), 옥천말로 위쪽에 있다고 하여‘우깨’로도 발음한다.

◯ 주막말

장계리 남서쪽 강 마을로 욱계와 오대리 보내를 건너던 보내나루와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주막말 인근에는 화인원이 있었는데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원(院)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차차 그 기능이 상실되어 주막 또는 주점으로 바뀌었다.

◯ 개경주

마을 앞에는 금강이 흘러 안내면과 군북면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라‘가경주’라 했다가‘개경주’로 음운변화 했다. 

조선시대 보은, 청주, 상주 방면에서 안내면을 거쳐 동북대로를 거쳐 옥천읍내로 가려면 이곳 인포리와 장계리 개경주 마을을 잇던 군사가 지키던 화인진나루를 거쳐야 하는 중요한 교통로 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잠수교를 놓아 차량이 오가다가 1980년 대청호가 건설되며 이곳에서 약200m를 가했습니다. 하류에 장계대교를 놓았다. 1960년대에 마을 앞 금강백사장에 장계수영장을 개장하여 속리산 길목에 있어 많은 피서객들이 찾던 명소였으며 그린여관이라는 여관까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잠수교인 장계교는 화인교라고도 불렀으며 폭파 되지 않아 지금도 교각 등이 대청호 속에 있다고 한다. 경국대전에는 개경주 이 일대에 화인원과 화인역이 있었는데 역리 61인, 산간계곡이라 짐을 싣는 말인 복마 9필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며 종9품인 역승이 관리하였다고 한다.

▶ 석탄리

석탄리는 큰돌문화(거석문화)선돌과 고인돌이 많은 지석리와 여울이 있는 직탄리의 뒷 글자를 따서 석탄리가 된 것 같으며, 수몰 전에는 94호가 살았으며 동이면에서 가장 큰 마을 이었다고 한다. 안터(安攄)마을은‘편안한 곳’이라는 뜻(安편안할안, 攄펼터)

※ 정지용시인의 시 향수의 배경이 된 곳이 이곳이 아닌가 싶다. 강물이 흐르고 오대리 앞에 넓은 모래성이 있었으며, 정지용선생 아버지의 고향이며 친척들이 수북리(꾀꼬리)에 많이 살았고 구읍에서 작은 언덕을 넘으면 바로 이기 때문에 어릴 적에 이곳에서 많이 놀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말 무덤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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