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양수리/시네마큐레이터) piung8@hanmail.net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아이들이 포로들처럼 끌려 나왔다. 허겁지겁 생활용품을 채워 넣은 하얀 봉다리를 들고 또 다른 수용시설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근처 대전 IM 선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참을성이 자산이었던 10대 시절을 버틴 결과물은 한국 교육에 대한 참담함이었다. 고 2 겨울 방학 때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나를 흔들었다. 참을성 있게 학교를 다녔던 나는 오로지 책만 읽고 싶어 1년간 휴학을 하고 싶었다. 선생님과 편지와 면담으로 실랑이를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교육 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30대가 되면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물 한방울의 믿음으로 분노보다는 구체적인 교육운동을 실천하고 싶었다.  

인도영화 당갈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다. 차별이 심한 인도사회에서 젠더의 경계를 넘은 성공담을 담은 영화지만 뒷맛이 찝찝하다. 금메달을 못 따서 아쉬웠던 싱포캇은 아들을 낳고 싶어했으나 딸만 넷을 낳는다. 결국 재능이 보이는 첫째와 둘째 딸을 레슬러로 만들어 금메달까지 따는 과정을 감동으로 포장한 영화다. 새벽마다 훈련하는 게 힘들어 게으름을 피우는 두 딸을 아버지는 삭발까지 한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성공에 찬사를 보냈던 게 우리 사회의 태도였다. 그래서 가끔씩 '아침마당' 에 출연해서 부모의 가혹한 요구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때는 어리석었다는 반성문을 적으면서 ‘어른말 들으면 손해보는 일 없다’라고 훈훈하게 마무리 하면서 끝낸다.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미래의 선택은 부모가 아니라 당사자다. 

진보교육감의 등장과 혁신학교 및 다양한 공립형 대안학교의 등장으로 뭔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IM 선교회 뉴스를 보면서 간만에 화가 치밀었다. 미국 유학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하는지 유학이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학교의 성격과 상관없이 미어 터진다. 어느 유명한 팟 캐스트에 나왔던 리포터는 광주에 있는 외국인 학교 출신이란다. 신기하게도 외국인 학교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다. 2년 전 만났던 대전 둔산의 고 3 친구도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필리핀에 4년 정도 있으면 국내 국제학교에 입학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부모의 강박에 못 이겨 억지로 다녔던 학교를 잠시 멈추고 싶었지만 끝내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성공과 경쟁의 식민지에서 각자가 좇아가는 욕망의 방식에 대해 댓글을 달고 싶지 않다. ‘인생은 공수레 공수거'를 들이댄들, 법정의 '무소유'를 건네준들, 불안과 공포의 역사를 버티면서 살다 보니 태풍의 안전지대를 찾는 게 지상과제가 된, 욕망의 풍경을 부정할 수가 없다. 아파트와 토지가 욕망의 꼭지점이 되어버린, 졸부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가 없다. 다만 자녀들에게 불안을 대물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M 선교회 선교사 (2019년) "저희 IM 선교회가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지 않아요. 오랜 기간 잡아놔요. 두 번째, 세뇌 시킵니다.... (그래서) 저희가 패러다임을 바꿔서 교회가 학교를 하자.”  
-MBC 뉴스 인용-

기독교형 대안학교들이 많다. 그중 괜찮은 학교들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 유학과 명문대가 꼭지점인 엘리트형 학교들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부모들의 마리오네트가 된 채 청소년들은 처마에 걸린 배추 시레기처럼 말라가고 있다. 2019년 대전 과학고 생명존중 강의를 마치고 나와 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애들이 활기가 없어요’ 이미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꿈이 정해진 친구들이다.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혹은 유학으로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별들이다.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 

배우 김윤석이 처음으로 만든 영화 <미성년>의 주리는 어머니의 스케줄에 맞춰 명문대학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친구는 대학 가서 사귀겠다고 당차게 선언한 친구다. 하지만 친구 윤아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륜은 주리의 프레임을 바꿔놨다. 기말고사 당일 주리는 윤아와 드잡이질을 하고 난 후 교실을 박차고 나오다가 담임 김희원을 만난다.
담임 김희원이 따라오면서 얘기한다. 

“야! 이러면 진짜 나중에 큰일 나! ”
골수 모범생 전교 1등 주리가 대답한다.
“거짓말‘

그래
이제 그만 거짓말하자.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