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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미] 소리 없이 농악대의 발이 되어 준 김종정 씨, 고맙습니다
[고사미] 소리 없이 농악대의 발이 되어 준 김종정 씨, 고맙습니다
  • 조서연
  • 승인 2019.07.02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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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택시와 농사를 병행하는 곽춘상 씨
평생 고향을 나가본 적 없는 군서 토박이

 

 

군서면 하동리 옥녀봉. 이제 15가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이곳에 59년 평생을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이 있다. 흑미 900평, 산딸기 600평, 도합 1천500평 농사를 짓는 군서 토박이 농사꾼 곽춘상(59,군서면 하동리) 씨다.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바빠서 농사를 못 짓고, 농사를 방치하니 어머니가 밭이 온통 풀밭이라며 걱정하시고. 농사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택시였다.

당시만 해도 택시는 하루건너 하루만 일했다고. “농사랑 같이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에요. 인제 쉬는 날은 없고, 농사짓다 짬짬이 나가지. 그렁게 돈벌이는 안돼요.” 그렇게 90년부터 29년째 택시 운전과 농사를 병행하고 있다.

가만 보면 사람이 참 꾸준하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 이제는 동창이 하나도 남지 않아 외로운 곳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가고, 젊을 때 시작한 택시, 농사일을 여직 하고 있다.

그런 그를 알아서인지, 13년 전쯤 주민자치위원회가 결성될 때에도 이웃들이 먼저 말을 꺼내왔다. 그렇게 군서농악대와도 인연을 맺었다. 곽춘상 씨에게 고사미 바통을 넘겨준 하옥수 씨는 이미 상쇠를 맡고 있더란다. 그때부터 10년이 넘도록 꾸준하게 북과 징을 치고 있다. "북과 징이 그나마 제일 치기 쉽거든요. 그래서 계속 고집하고 있어요. 하하하"

하옥수 씨가 회장을 맡으면서 받은 사무국장직도 벌써 6년째다.

농악대의 대원들은 한창때 33명까지 늘었다가 현재는 23명이다. “노인네들이고 하니 힘들어서 못한다며 나가고……. 그래도 하옥수 회장이 많이 키웠죠”

그러고도 곽춘상 씨는 하옥수 씨 이야기를 한참 했다. 죽이 척척 잘 맞는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이런 코너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래서 혹시 나한테 오면 하옥수한테 줘야지, 했더니 어째 거꾸로 하옥수가 나를 했어” 그런 말을 하며 곽춘상 씨는 껄껄 웃는다.

아울러 군서농악대에는, 소리 없이 봉사하는 숨은 회원이 있다고 소개했다. 주민자치위원장, 이장협의회장 등을 맡아 주민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했지만, 농악을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선 사람이라고 한다. 포도농사를 짓는 김종정(66, 군서면 금천리) 씨다. 

“봉고차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공연을 할 때마다 악기를 실어주고 올려주고 내려주고……. 하도 고마워서 우리가 매니저라고 했어요. 우리 회원도 아니고 사실상 그냥 봉사로 해준 건데, 농악에는 발이 되어 준 거지. 봉사정신이 투철하죠. 정말 농악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에요.” 김종정 씨의 부인인 최상림 씨가 농악회원이긴 하지만, 지금은 몸이 아파서 함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정 씨는 10년이 넘도록 농악대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군서초(52회), 옥천중(27회)를 졸업하고 그 뒤로도 쭉 고향에서 지내온 곽춘상 씨. 멋쩍게 웃으며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그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고향’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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