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②] 향수호수길과 주변이야기
[연재기고②] 향수호수길과 주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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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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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형 (옥천읍 교동리)

■ 수북리

수북리라 부르게 된 것은 금강 갯가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수북리”라 하였고, 동이면 남곡리는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남곡리(수남리)”라 부르고 있다.
1949년 8월 13일 옥천면이 옥천읍으로 승격되면서 동이면 수북리를 옥천읍에 이관시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 화계리

화계(花溪)는 마을 위에 복숭아나무가 많아 봄이면 복숭아꽃이 떨어져 하천 가득히 떠내려간다 하여 “꽃내”라 하다가 “화계”라 부르게 되었다. 꾀꼬리는 음운변화에 따라 계꽃리→ 꾀꼬리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화계리 진산인 노성산은 “메나리봉(산유화, 山有花)”이라고도 하며, “마성산”으로도 불린다.

■ 남편대신 옥살이를 하면서 진범을 잡은 밀양박씨

옥천군 수북리 화계마을 앞에 있는 절부문은 밀양박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지자 1723년 경종임금께서 많은 상을 내리고 정려하여 1평 정도의 정려문을 세웠다. 그 후 이 정려문이 화계(꾀꼬리) 마을 앞에서 1996년 현 위치로 연일정씨 문중에서 이전 하였고, 비석과 정려문을 보수 단청한 후 안내판까지 세웠다.

절부 또는 열부 박씨 부인은 영동에서 생장 하였다. 자라서 연일정씨 정윤세과 혼인하였다. 정윤세 부부는 동이면 지양리 현동 마을에서 살면서 부모님에게 극진히 효도하면서 한 집안에 모시고 살았다. 박씨 부인은 시집온 이래 시부모님 잘 모시기로 소문난 효부이었다. 

그렇게 살고 있던 어느 날 남편 정윤세가 영동에 있는 처가에 다녀오다가 난데없이 사람을 죽인 살인 누명을 쓰고 관가에 잡혀갔다. 이때 박씨 부인은 남장을 하고 남자 행세를 하면서 관가에 들어가서 그때 그 살인자는 자기이며, 살인 가해자라고 자청하여 감옥살이를 하고, 그 대신 남편 정윤세는 무죄로 방면되었다. 그 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살인을 한 진범이 잡혀서 남편도 누명을 벗고, 자신도 방면되어 살게 되었다.

비록 집안 경제사정이 넉넉지 못했으나 부지런히 일하고, 시부모를 지성으로 모시었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이렇게 며느리와 아내로서 또, 여자의 도리를 다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나갔다.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던 중 나이 20세에 갑자기 남편이 병을 얻어 세상을 뜨자 남편을 따라 죽기로 결심을 하였으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다. 즉 늙으신 시부모 봉양에 있어 죽은 남편 몫까지 하고자 결심한 것이다.

박씨 부인은 어려운 집안 살림과 젊은 청상의 몸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집안을 훌륭히 이끌어 갔다. 또한 시부모 모심에 있어 그 효행이 어찌나 지성껏 하는지 근동 사람들은 물론이고, 옥천고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마침내 이러한 효열행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되니 그 편액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전한다.

“절부 학생 정윤세 처 밀양박씨 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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