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힘/정애옥

사진을 정리한다. 그동안 버려뒀던 것을 더 미룰 수 없다. 흩어진 사진들을 모으니 지난날들이 햇살처럼 번져온다.

봄날, 교정의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만들고 운동장 모래밭에서 두꺼비집을 짓고 사슴벌레를 찾는 사진이 보인다. 한여름에 물총 놀이로 흠뻑 젖어 활짝 웃는, 노란 은행잎에 물든 꽃 같은 아이들 얼굴이 보인다. 오븐에 쿠키를 굽고 겨울날 연날리기와 눈사람, 손 만두를 만들었지···. 아이들은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듯이 조부모와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의 사랑 표현 방법은 매우 서툴렀다. 즐거운 일이 있었고 투덜거리며 힘든 시간이 있었다. 나는 신을 대신해서 부모를 주었듯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하기에 이곳에 있다며 괜스레 사명감을 느꼈다. 부모의 상처 속에 아파하는 아이를 볼 때 부모가 되려면 최소한 자격시험을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 또한 자격 미달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어우렁더우렁 지내온 시간이 14년이 되어간다.

나는 늦게 배운 공부가 직업이 되어 감사했다. 교육학 이론과 현실은 달라 미흡함을 메우려고 연이어 배워야 했다. 그러던 중 직업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추억으로 여기니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해마다 계약서를 다시 썼지만, 무기 계약이 되어 퇴직까지 갈 줄 알았는데 직장에서 소속을 변경하겠다 한다. 우리 일을 두 기관에서 서로 가져가라고 갈등을 겪는다. 1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법제화가 되지 않아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가족’이라 해놓고······.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은 것 같다.

맡은 일은 평소에 오전에 업무 한 후, 아이들을 오후에 맡아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보는 일이다. 특히, 방학이나 오전부터 8시간을 아이들과 지내야 하기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겹다. 그래서 방학이 끝나면 대부분 몸살을 앓거나 대상포진 등에 걸린다.

전염병인 코로나로 인하여 ‘긴급돌봄’으로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아이들을 돌봤다. 방학에 이어 지친 몸을 견디다 못해 큰 학교 선생님은 건의와 항변으로 보조교사를 두었다. 물론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격려는 커녕 고용불안이 온 것이다. 더 많은 업무를 맡아서 할 터이니 제발 기존 소속으로 해달라고 애원했다. 소속 변경은 아이들 안전과 돌봄의 질적 문제, 우리들의 고용 문제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학교에 한 명밖에 없어 힘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단합하여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집회를 연다. 최후는 하늘에 맡기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 결의를 한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들이 행복하듯 선생이 평안해야 학생이 평안하다. 무대 위에 배우가 서기까지 스텝들의 손길이 있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조력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착잡한 심정으로 묵은 숙제를 하듯 앨범을 정리하며 그래도 아이들과 지내온 추억이 있으니 다행이라 여긴다. ‘얘들아, 샘의 칠순엔 꼭 와라. 맛난 것 많이 해놓을 테니까···.’

평소 입버릇처럼 했지만, 이 말을 기억할 녀석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디에서든 자기 몫을 다 하면 됐지... 이런 것도 나의 욕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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