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래 (금산 간디학교 교사)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 반비

책 제목 ‘나는 가해자의 어머니입니다’는 내용에 비해 턱없이 부드럽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어머니인가 싶었다.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참사(1999)는 미국 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준 쇼킹한 사건이었다. 13명이 죽고 23명이 크게 다쳤다. 이 일을 일으킨 두 명은 중산층 백인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흔한 면피 요소인 유색인종, 경제적인 결핍, 정신병 같은 책임 회피 이유가 별로 없었다. 대학 입학까지 받아둔 고3 아이들 두 명이 대낮에 다니던 학교에 와서 무차별 학살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그 두 명 중 한 명의 어머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 사건을 <볼링 포 컬럼바인>이라는 다큐 영화로 만들어 미국 사회의 총기 문제를 부각했다. 이 아이들은 아침에 볼링을 치고 학교로 돌아와서 일을 벌였다. 이 영화를 본 나도 미국은 총기가 문제라고 혀를 찼다. 그러나 이 책을 보니, 더 심각한 문제가 보였다. 총기 문제에 가려진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 청소년들의 교육 환경과 정신 건강이라는.

학살자의 어머니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아니, 무슨 낯으로 책까지 쓴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이 사람의 비참함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자기 아이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왜 그런 잔혹한 일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을 사랑했고 그것을 매일 표현한다고 했으나 아들의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들은 별로 문제아도 아니었다. 사건 이후 분노와 슬픔으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했다. 자신의 운명이 이렇듯 갑자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줄 어찌 알았겠는가?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몰입도가 강했다.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사건 이후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우울증을 앓다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씩 힘을 차린다. 그러다가 자기 아들이 학살자이기도 하지만, 자살자라는 것을 인식한다. 책의 중반 이후는 자살을 얘기한다. 이 사건을 단순 학살이 아닌, ‘자살-학살’로 이해하고서야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다. 아들이 우울증을 앓았고 이로 인해 균형을 잃고 자포자기했음을 알게 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삶에 대한 애정을 잃고 내재한 분노를 끌어올렸음을 알게 된다. 

피해자들에게는 안타깝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한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임을 부각한다.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분석과 대책을 내놓는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향후 덜 생기려면, 자신과 같은 비극적 운명을 맞는 부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음이 이해된다. 

“십 대 여덟 명 중 한 명이 자살을 생각했고 스물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 사람은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젊은이가 자살을 기도한다. 대략 3분에 한 번씩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떤 사전 경고도 없이 일을 저지른다.” P256

아이를 잘 살펴야 한다. 아이들은 웬만하면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아이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착각일 때가 많다. 아이들은 쉽게 영향받고 쉽게 변한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건의 논리적 개연성이 크지 않다. 특히 뇌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시기여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녀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돌볼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전반적인 학교 문화와 사회 문화에 귀책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컬럼바인 참사는 단순히 미국의 총기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처럼 총기가 관리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총기는 문제의 근원이 아니다. 그녀는 학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학부모로서 아쉬운 점을 조금 내비쳤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부분이 중요해 보였다. 선생들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컬럼바인 고등학교는 2,000명이 넘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였다. 이것 자체가 문제다. 이런 규모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면밀히 살필 수 있겠는가? 가해자 가정환경 문제로 보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빈한한 구조의 핵가족 구조의 돌봄에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보다 이들과 영향을 주고받기 쉽다.  

우리는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생활상은 큰 차이가 없다. 거의 같은 문화와 가치를 향유하고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지금 청소년층은 윗세대보다 더 싱크로율이 높다. 청소년의 우울 문제와 정신 건강 문제는 우리 사회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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