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생애사 연대기] 흙냄새 폴폴나는 고향의 동무
[어르신 생애사 연대기] 흙냄새 폴폴나는 고향의 동무
  • 추억의 뜰 남외경 시민기자
  • 승인 2021.02.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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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도 백운리

남향으로 앉은 작은 농막에는 온종일 해가 머물러 준다. 일출부터 일몰의 시간까지 지칠 줄도 게으름 부릴 줄도 모른다. 내 하루는 해와 함께 시작한다. 해가 찾아오는 시간이면 일어나 뒷산에 오르고, 해가 지는 시간이면 소박한 저녁을 차린다. 

집 뒤 산기슭에 사는 진돌이와 다올이 부부가 새끼 4마리를 낳았고, 주인한테 버림받은 방울이와 시츄 두 마리도 함께 지낸지 제법 되었으니 이 녀석들 여덟에게도 밥을 줘야 한다. 짐승들은 사람보다 생리적 욕구에 더 충실하다. 평소에도 사람을 반기고 꼬리치지만 배고플 때, 뭔가 색다른 걸 먹고 싶을 때, 생리적 문제가 있을 때 더욱 사람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곤 한다. 

해를 가장 반기는 것은 나무들일지도 모른다. 특별한 음지 식물이 아니라면 식물들은 해를 보고 산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온 몸을 맡기고 뿌리에서 길어 올린 물과 혼합하여 영양소를 만든다. 빈 가지로 긴 겨울을 나면서도 햇살 옷을 입으니 견디기에 한결 수월한 법이다. 이제 슬슬 가지치기를 시작해야할까 보다. 무리하지 말고 하루에 다섯 그루 정도만 하면 어떨까, 하고 계획을 잡는 중이다.

전망이 좋아서, 지대가 알맞게 높고 면소재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땅을 산지 8년이 되었다. 뭐든지 심고 키우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서 1,600평이 넓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농사라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며 실실 웃는다. 나 혼자 취미삼아 즐기고 지내려면 200평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지 않았을까? 넓은 평수라 나무들에게 일일이 손길과 정성을 쏟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할 때가 있다.

나는 천안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하고 3사관학교 15기, 보병 주특기로 소위로 임관했다. 중위 때 특전사에 차출되어 훈련을 받던 중 헬기 사고를 당했고 대위로 제대했다.

인생은 청춘의 나에게 느닷없는 변수를 제공했고 잠시 갈 길을 몰라 갈등했지만 이내 자리를 찾아왔다. 

재수하여 단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찾아 건설회사에 취직하였다. 누구나 겪던 IMF 때의 어려움, 건설현장의 갖가지 난관을 지나 감리를 끝으로 현장 업무를 접었다. 세상은 녹록치 않았고 나는 순간순간 결단을 하면서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어릴 때의 향수가 묻었던 안태 고향이 천안IC에 편입되었다. 톨게이트를 만든 한 가운데 어디쯤이 내 어린 날의 집터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그리움이 사무쳤다. 그래서 고향의 지형과 비슷한 지역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로 낙점된 것이다. 

아내는 산본 신도시에서 직장에 나가고 있다. 남매를 낳아 길렀는데 둘 다 그 곳에 살고 있으니 자식들 곁에서 살고 싶은 모양이다. 처음엔 주말에 자주 내려오더니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는 중이다. 시골살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생필품이 필요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식재료도 자연 속에서 찾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TV 말고는 문화를 향유할 수도 없고 이웃에 소통이 자유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아내가 내려오는 횟수보다 내가 도시 집으로 다니러 갈 기회가 더 많다고나 할까, 그런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개 8마리가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료를 넉넉하게 주고 가도 짐승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다. 

땅을 산 뒤, 첫 4~5년은 직장 다니며 왔다 갔다 했다. 돌을 고르고 풀을 깎고 잡목을 잘라내는 작업을, 천천히 땅을 굳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고 유쾌했다. 주말에는 텐트를 치고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우(流星雨)에 마음을 빼앗겼고 비가 오면 흠뻑 젖으면서도 텐트 지붕에 닿는 빗소리의 낭만과 서정에 빠져 행복했다.

3년 전에 직장을 접고 본격적인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그동안 눈여겨뒀던 상식을 총동원하여 식재를 시작했다. 꽃을 볼 수 있는 매화, 복사, 살구, 자두, 앵두를 심고 과실을 딸 수 있는 사과, 배, 감, 포도, 호두, 대추나무를 심었다. 블루베리와 무화과와 체리까지 마음에 두었고, 봄나물로 먹을 수 있는 가죽, 두릅, 오가피, 간에 좋은 헛개, 노각, 벌나무까지 욕심을 부렸다. 약초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더니 세상의 모든 식물들이 저마다의 성분으로 사람에게 좋은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심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다. 정성껏 심고 가꾼 애착 때문에 쉬이 베어내지도 옮기지도 못한다. 이제 작은 묘목을 벗어나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나무들이 이삼십년 뒤에는 수십 미터의 청년 나무로 자랄 것이다. 그 나무 아래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 지겠지. 봄의 정원에 은방울꽃이 춘정을 피우고 붓꽃이 낱낱의 사연을 기록하는 동안, 여름이 당도하면 원추리와 까치수염이, 뒤이어 수국과 산비장이 산길을 밝히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언제 완성될지 모르지만 큰 기대와 꿈을 꾸지 않고 지금 이대로 좋으리.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새 생명을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식물과 동물은 다른 관점에서 길러야 하는 것이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연못을 파고 가금류(家禽類)를 길렀다. 오리와 닭과 거위까지 여러 마리를 키웠다. 오리는 5~6개월 키우면 알을 낳았고 거위는 알을 낳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는데 두 종류 모두 알이 퍽퍽한 편이다. 맛으로 따지면 달걀이 최고다. 잘 자라고 키우는 특별함은 거위인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죄다 먹어치우는 대식가다. 거위는 풀어놓으면 밭에 작물이 남아나질 않는다. 빨간 똥을 눠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막 익어가는 붉은 고추를 따 먹은 결과였다. 내가 눈 맞추며 키운 가금류들을 잡아먹을 수 없어 이웃에 죄다 나눠주었다. 

생명에 대한 책무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배운 기회였다. 어떠한 생물이든 끝까지 돌봐주거나 주검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인연 맺지 않으려고 독하게 마음먹었지만, 버려진 강아지 방울이와 시츄를 선뜻 데려온 것 또한 내 욕심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귀촌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시골살이가 녹록하지도 않다. 부부가 합의하여 시골살이에 대한 마음이 같은 방향일 때, 단조롭고 쓸쓸하지만 농번기가 되면 바쁘게 일해야 하는 것까지 모두 알고 함께 움직여줄 확신이 섰을 때 결정해야 할 터이다. 

그렇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도회에 살든 시골에 살든 나는 나이를 먹고 늙어갈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취미생활을 즐기게 될 것이니까. 내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거름을 뿌리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며 기쁨에 겨울 것이다. 열매가 맺히고 과육에 단맛이 스며들고 오랜 친구들이 막걸리를 들고 찾아오면 행복할 것이다. 

“종도 네가 여기 살고 있으니 고향집 찾아오듯 올 수 있어 참 좋구나. 고마우이 내 친구!”

이렇게 다정히 웃음 건네줄 도회의 친구들에게 나는 이 시대의 로맨티스트이자 낭만가객, 땅을 사랑하는 얼치기 농부, 찾고 싶은 고향의 흙냄새 폴폴대는 동무로 남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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