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얘기엔 엔딩 따윈 없어/배지선

지난 3년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그 좋은 추억을 둔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원래 나는 이 책에 소설만 실을 예정이었지만 책 마지막의 에필로그를 쓰며 생각이 달라졌다. 정작 나는 나 자신을 솔직히 드러낸 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졸업하기 전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 감정 쓰레기들을 이곳에 모두 버리고 가려고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우리 반 친구들이 있다면 부디 내가 하는 이야기의 대상이 누구인지 추측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냥 담담히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항상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여기서 친구들에게 정말 솔직히 털어놓으려고 한다.

1. 동물의 왕국

나는 한 반에 5명, 전교생이 30명도 안 되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왔다. 그곳에 무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다 같이 다니고 다 같이 어울렸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꼭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처음 만난 친구들은 서로를 탐색하고 곧 자기들끼리의 무리를 형성하기 바빴다. 다른 무리와의 관계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무리에서 더러 떨어져 나가는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3학년. 이제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생각한 무리는 놀랍게도 아직 변하는 중이다. 나도 그중 하나에 속했다. 처음 무리는 나와는 너무 다른 성격의 친구들에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다음 무리는 몇 명의 친구들이 영입되었다가 다시 나가길 반복했다.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30명이 모두 같이 다니긴 어렵고 또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성향의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친구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홀로 배회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분명 말로 풀 수 있는 문제일 텐데. 제대로 대화해 보지 않고 외면하는 행동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을 우리 무리로 영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오해가 풀리자 그들은 모두 원래 자신이 있던 무리로 돌아갔다. 처음 그 친구들이 다시 돌아갔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번 버림받았고, 그렇게 크게 아파했으면서 또다시 그곳에 돌아간 친구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된 지금, 그곳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놓아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 계속 있었다면 이만큼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2. 눈덩이

오해 또는 소문은 사람을 하나 거쳐 갈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혹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 나쁜 X가 되어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무섭다. 또 어디선가 내가 내뱉은 티끌 같은 눈 한 자락이 거대한 눈덩이로 변해 나를 쓸어버리길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더욱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선 내 감정, 생각을 마음껏 표출해도 아무도 몰랐다. 꼭 나만의 아지트 같다.

3. 지킬 앤 하이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항상 얼굴과 마음이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나와 함께 다니는 친구에 대해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를 A라고 지칭하겠다. 내가 아는 A는 누구보다 밝고 따뜻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을 챙겼고, 배려할 줄 아는 친구였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말하는 A는 누가 들어도 나쁜 아이였다. 나만 빼고 모두가 그 아이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

그땐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이중인격을 가진 친구와 다니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했다. 1학년 때 내 기숙사 방은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한 번은 그곳에 많은 친구가 모여 A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 가끔 옆에 있던 내 눈치를 보곤 말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속으로는 이게 무슨 예의인가 싶었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괜찮다고 말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말부터 A와 같이 다니지 말라는 말까지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뒤였다. 그리고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방을 나와버렸다. 그 후부터 나는 내가 보는 A와 그들이 말하는 A에 대해 끊임없이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친언니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언니는 내 말을 듣곤 딱 한마디를 했다.

“네 친구잖아. 네가 제일 잘 알겠지. 그런 애인지 아닌지.”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 친구고,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했으면서 의심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후로 나는 친구든, 누구에 관한 이야기든 내가 보고 들은 것만을 믿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소문으로 접했던 소식이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소문 같은 것은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이 글은 오로지 내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썼다. 졸업하기 전에 이 감정을 다 털어놓지 않으면 내 고등학교 생활이 좋은 추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쓰레기통에 내 감정을 모두 쏟아 내고 나니 남들에게 공개하기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로 인해 누군가가 또다시 상처를 받지 않을까, 또 다른 불화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물론 내가 받은 상처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내가 누구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 지도 모르지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또 이 글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도 사과한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또 이 글을 쓰며 남은 감정을 처분하면서 든 한 가지 생각은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불과 1년, 한 달 전 일도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이 선택지를 골랐다면 지금보단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 나를 찔러오던 감정을 모두 이곳에 두고 간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나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감정 쓰레기가 마음 한구석에 남아 괴롭힌다면 숨기지 말고 꼭 버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말이든 글이든 3년 묵은 쓰레기들을 함께 떠나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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