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한남대 교수, 옥천군 거주)

하이델베르크 성
하이델베르크 성

필자는 30대 초반부터 6년 동안 캐나다에서 살았다. 그 후 미국에서 2년, 일본에서 1년 동안 살아 본 경험도 있다. 그 외 여러 나라에 대해서도 1, 2 주일씩 방문해서 조사하고 연구했다. 그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독일이다. 우리나라도 급속한 경제성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달성하여 이제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그러나 무언가 선진국답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실질적인 선진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독일은 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았다.

필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독일에 대해 연구해 왔다. 독일이라기 보다는 독일의 한 지역에 관해서였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유럽 굴지의 탄광지역이나 제철공업지역이었던 루르지역이다. 특별히 필자의 연구분야인 경제구조 전환, 도시재생에 대하여 연구한 것이다. 그런데 연구를 하면 할수록 독일은 재미있는 나라, 혹은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작심을 하고 독일에서 살면서 연구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2019년 2월부터는 아예 현지에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독일이 필자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은 그 나라가 유럽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1980년대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선진 공업국의 대부분이 산업사회 이후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러나 독일만은 그렇지 않다. 

2차 세계 대전 중 히틀러가 저지른 죄악이 있지만, 그래서 이웃 나라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독일은 또한 도덕적으로도 선도국가라고 생각된다. 독일은 일찍부터 베토벤, 브람스, 괴테 등과 같은 걸출한 음악가, 문학자를 배출한 나라이다. 그리고 지구환경이나 인간존중 등에 대한 철학과 의식, 정책도 발달하였다. EU 내에서의 활동이나 아프리카 난민에 대한 대응 등에서 보여 주듯이, 독일은 국제사회에서도 책임 있는 국가로 활약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이루어진 잘못을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경험이 없는 국가에서는 독일을 그럴듯한 나라, 품위가 있는 나라로 생각한다. 

유럽 여러 나라 중 독일이 최근 유독 부각되는 것은 경제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선진 공업국과 달리 독일은 어떻게 해서 강력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을까? 어떻게 해서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까? 특히 반(半)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사실 독일은 사회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이 태어나서 자라고 활동한 나라가 아닌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만큼 경제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세금도 많고 규제도 심하다. 그런데도 독일이 건전한 경제구조, 강한 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기초가 확실하고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규제가 심해서 기업활동이 어렵다고 하지만 독일은 우리보다 더 심한 규제를 갖고 있다. 

독일은 일찍부터 철학, 음악 등 인문학이 발달하였지만 18세기, 19세기를 거치면서 과학기술도 크게 발전하였다.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나라이다. 수학, 물리, 화학 등과 같은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기계공학, 제약산업 등에 있어서도 막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한 독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필자는 2019년 2월부터 6개월간 독일에 거주하면서 여러 가지 조사, 연구를 실시하였다.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농촌 중심도시로 인구 약 13만 정도를 가진 하이델베르크에 살면서 여러 지역과 기관을 방문하였다. 또 여러 사람을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는 하이델베르크시가 과학과 인문학에 기초한 경제,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골고루 발전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 그런 하이델베르크를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쉽게 떠오르는 단어들이 대학도시, 역사도시, 관광도시, 종교도시, 과학도시, 군사도시 등이었다. 하이델베르크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는지 반문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하이델베르트 성령교회

그렇다!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다양한 특징을 가진 도시였다. 그 도시는 대학도시가 맞다. 독일 최초의 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이 도시에 있다. 약 600여 년 전(1386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철학부, 의학부, 법학부, 신학부 등 4개 학부로 시작하였다. 지금은 12개의 단과대학에 총 2만8천600명의 학생을 가진 대학으로 성장하였다. 노벨 수상자를 29명이나 배출한 독일 최고의 대학, 세계 굴지의 대학이 되었다. 

하이델베르크시는 또한 역사도시이다. 역사가 있는 대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과 유물이 많다.

그중 하나가 하이델베르크성이다. 이 성은 13세기에 처음으로 조성되어 프랑스와의 전쟁(1620년)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파손되기도 하였다. 그 일부는 보수되었지만 아직도 보수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 성은 규모가 웅장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180톤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목조 와인 저장고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이델베르크는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13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었고,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고, 역사가 있는 대학이 있다. 시내에는 네카어강이 관통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18세기 말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구성된 시가지가 있다. 강과 주변의 고색창연한 건물들, 그리고 주변의 언덕 등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칸트,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과 같은 철학자와 괴테와 같은 대문호가 여가 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즐겼던 길, 즉, “철학자의 길” 같은 명소가 있다. 

이러한 명소는 도심을 관통하는 네카어강과 바로 그 강의 양 옆에 늘어선 환상적인 언덕, 하이리겐산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방문자들에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 주변 도시에는 온천도 있고 포도원도 많다. 독일의 대표적 와인 산지, 팔츠에는 와인을 주제로 한 관광도 활발하다. 하이델베르크는 가까운 곳에 프랑크푸르트, 만하임, 슈투트가르트 등과 같은 중, 대도시가 있어서 방문하기에도 편리하다. 그래서 유럽 및 아시아 그리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관광지이다. 

하이델베르크는 또 종교도시라 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 도시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활동의 중심지였던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는 1400년대에 처음 지어졌고, 1600년대에 새로 건축된 석조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1500년대 중반에 약 50년 동안 칼빈파 신자들이 이 교회에서 토론을 통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들기도 했던 곳이다. 교회건물은 현재까지 건재하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도시는 또한 과학도시이다. 630년의 역사를 가진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설립 초기부터 의학부가 운영되어왔다. 또 노벨 수상자를 두 명, 세 명씩 배출하는 학과들이 있다 보니 이 도시에서 관련 분야의 연구와 실험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 캠퍼스 내 국립 암센터가 있고, 캠퍼스 인근에 소규모이지만 연구단지도 있다. 대학과 국립 암센터의 연구역량을 기반으로 신규기업이 창업되어 연구단지를 채우기도 한다. 

네카어강과 그 주변의 하이델베르크 시가지

하이델베르크는 군사도시이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군 부대가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때, 하이델베르크는 미 공군의 공격 대상지가 되기도 하였지만, 수백 년 역사를 가진 하이델베르크성이 있어서 공격 목표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 후 하이델베르크에는 두 세 군데 미군 부대가 생겨 수천 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 되었다. 독일이 통일된 후, 최근에는 미군이 철수하는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하이델베르크는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하는 바, 군사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하이델베르크 도심에서 약 20km 떨어진 곳, 마우어(Mauer)라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여기에서는 50만 년 내지 1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 하이델베르크인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재미있는 도시이다. 필자는 그 도시에서 살면서 많은 연구도 하였지만, 정말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주변의 다양한 농촌과 와인농장, 문화 유적지 등을 탐방하면서 우리가 배울 것이 없나 탐색도 해 보았다. 특히 옥천과 관련해서 연결시킬 만한 것이 없는지도 생각해 본 것이다. 

옥천도 참 재미있는 곳이다. 옥천도 역사도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1400여 년 전 삼국시대 말기에 신라와 백제가 서로 경쟁하던 곳으로 관련된 유적이 있다. 성왕의 역사가 있는 월전리, 환산전투와 말무덤, 관산성과 같은 것이다. 옥천에는 또한 용암사와 같은 신라시대의 유적이 있고, 조선시대에 중봉 조헌, 송시열과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옥천에는 그러한 향토사에 대한 애착을 갖고 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하며 보존하는 인사들이 있다. 향토사연구회, 옥천 향교를 지키는 향교회원들이 그들이다. 

옥천은 또한 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향교와 서당이 있다. 또 옥천은 정지용 시인을 배출했다. 여기저기 그의 문학 속에 나오는 곳들이 흩어져 있다. 지금 그 후예들이 축제 등으로 그 유산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옥천문화원, 옥천 향토사연구회, 옥천신문 등과 같은 기관, 또는 단체가 그러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어느 지역 못지않게 그 활동이 활발한 바, 미래가 기대된다. 옥천신문은 기초지자체 단위의 지역신문 중 어느 신문 보다도 알찬 내용, 바른 집필방향으로 지역여론을 선도하고 있다. 

옥천은 또한 경제도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옥천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옥천은 묘목과 포도,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묘목은 전국 유통량의 약 60%를 감당한다고 한다. 또 국제기계란 전국 규모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또 여기저기에 산업단지가 있어서 중소기업의 활동도 활발하다. 

옥천은 또한 산수가 좋다. 대청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옥천’이라는 지명이 말해 주듯이 그 호수는 부드러운(沃) 계곡과 하천(川)으로 둘러 쌓여 있다. 군 면적 전체의 80% 가량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옥천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친환경도시라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옥천의 사람이다. 옥천군민들은 진보와 보수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심이 좋아서 쉽게 베풀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옥천 사람들은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는 않다. 최소한 필자에게 비친 것은 그렇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면에서 옥천 사람들은 품위가 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귀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까? 

필자는 옥천이 하이델베르크와 같이 다양한 특색을 가진 곳, 독일과 같이 품위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아무도 꿈을 꾸지 않으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지금 누군가 앞장서서 만들어 나간다면 후일 우리의 자손들에게는 그것이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다. 그 ‘누구’가 바로 오늘의 ‘우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철학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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