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여론광장에 ‘새벽 제설’로 칭찬받은 대천1리 최갑석 이장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고향에서 주민들 위해 불철주야 봉사 중

코로나19로 우울증도 인다는 코로나블루의 시대입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삶도 팍팍해지고 오락가락하는 한파 때문에 한층 움추려드는 시절입니다. 그럼에도 바닥에서 변방에서 온기는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 고마움은 느끼는 사람 모두가 소중합니다. 이번 주에는 새벽 일찍 마을 눈을 싸그리 치운 옥천읍 대천리 최갑석 이장의 선한 미담 소식을 전합니다.  아울러 안남면 종미리 전병례씨 역시 마을에 쌓인 눈을 깨끗이 치웠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아름답게 전한 윤정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입춘을 앞두고 마음에 봄을 들이게 합니다

새벽부터 마을 주민들을 위해 제설 작업을 한 최갑석 대천1리 이장 / 사진 출처 : 윤지영 인턴기자
최갑석 대천1리 이장 / 사진 윤지영 인턴기자

지난달 18일 새벽 옥천 곳곳에 많은 눈이 내렸다. 옥천읍 대천1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7~8cm 가량의 눈이 쌓이고 있었다. 게다가 아침 예상기온은 영하 8도였을 만큼 추위도 매서웠다. 새벽에 내린 눈이 오전에 얼어버리면 마을 주민들이 통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했다. 다리 관절이 좋지 않은 어르신에게 빙판길은 특히나 위험하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이 잠들었을 새벽 2시, 대천1리 최갑석(48) 이장이 눈을 쓸기 위해 홀로 나섰다. 트랙터에 제설기를 설치하고 옆 동네 삼청리까지 눈을 쓸었다. 그는 “다른 마을 이장들도 하는 일”이라며 손사래 쳤지만, 주민들은 최 이장의 헌신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18일 저녁 시간에 ‘우리 이장님^^*’이라는 제목으로 최 이장의 새벽 제설 작업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달 27일 대천1리 경로당에서 최갑석 이장을 만나 농촌마을 6년차 이장으로서의 책임과 소회를 들어봤다.

최갑석 이장은 대천1리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삼양초-옥천중-옥천고를 졸업한 옥천 토박이다. 대전보건대학교 의무행정정보학과를졸업한 직후에는 영동병원 의무과에서 행정직원으로 일했다. 이후 2년 정도 프리랜서로 의료보험청구 업무를 하던 그는 병원의료 쪽 일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병원 일보다는 무언가 큰일을 도모해보고 싶었다. 그때 옷 가게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최 이장은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던 작은 형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 제작된 빈티지 의류를 들여올 수 있었다. 곧장 대전에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빈티지 스타일은 유행이 지나버린 뒤였다. 한 달 만에 장사를 접을지 고민하던 그는 구제 청바지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때가 잘 맞았는지 청바지 사업은 대박을 쳤다. 그는 대전 둔산동과 청주 두 곳 매장에 21명의 직원을 둔 사장이 됐다. 당시 한 달 매출이 2~3천만 원에 이를 만큼 큰돈을 벌었다. 그때 최 이장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이어졌다.

“갑자기 어머니가 편찮아지셨어요. 원래 좀 더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되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그 때문에 더 빨리 돌아오기로 했죠. 근데 고향 집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얼마 안 가서 아버지까지 여의게 됐어요. 이후에 고향 집을 수리해서 6개월 정도 지내다가 할머니까지 보내드렸죠.”

어른들을 모두 보내고 난 뒤 고향을 떠날 법도 했지만, 최 이장은 끝내 고향을 등지지 않았다. 20대 어린 나이에 악착같이 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물질적인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대전 사람인 배우자와 함께 대천1리에 터를 잡았다. 2녀1남 자식들도 모두 이곳에서 낳고 길렀다. 아버지가 기르던 소 80여 마리를 물려받아 축산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10년 정도 농촌 생활에 적응한 뒤 지난 2016년 이장으로 취임했다. 또래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봐오던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했다.

안에서 지내보니 농촌 생활이 생각 이상으로 녹록치 않았다. 최 이장은 “농업에 종사하기 위한 투자비용은 계속 증가하는데, 쌀값은 우리 아버지가 농사짓던 시절하고 별반 다르지가 않아서 수입을 내기가 힘들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농촌 문제는 국가적 지원 없이 해결하기 어렵다. 평범한 이장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최 이장은 작게나마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 줄 방법을 고민해왔다. 이번에 칭찬받은 제설 작업도 이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일이었다. 혼자 한 일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옥천읍 공무원들과 협력해왔다. 기존에 마을에 있던 제설장비가 노후하여 읍에 최신 제설장비를 지원받았고, 재작년에는 제설 작업 이후 트랙터 기름 값도 환급받았다. 그는 다른 곳도 다 똑같이 하는 일이라고 칭찬에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마을 한 곳에 조성되어 있는 페츄니아 꽃길도 주민들을 위해 최 이장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최 이장은 “경남 진주에 놀러갔다가 다리에 꽃이 예쁘게 펴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 동네에도 조성해두면 어르신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후 농업기술센터에 자문을 구한 뒤 센터에서 진행하는 ‘농촌노인 사회적응력 강화 프로그램 시범사업’을 통해 지원받아 꽃길을 조성했다. 코로나 때문에 경로당에 모이기 힘든 동네 어르신들이 작년 한 해 동안 꽃길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현재 대천1리에는 128가구, 4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최 이장은 젊은 인구가 줄어드는 점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갈수록 청소년 및 청년은 줄어들고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하고 있다. 그나마 젊은 일꾼인 최 이장이 주민들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도 젊은 사람이 있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연세 있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다른 이장들에 비해 나이가 적은 편이지만 힘든 점이 많죠. 그래도 동네 주민들하고 어르신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처음보다는 많이 할 만 해요. 동네를 위해 봉사할 게 없나 고민하면서 지내야죠. 코로나 끝나면 어르신들하고 또 봄나들이라도 가야 하는데, 언제 코로나가 끝날지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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