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탐방] 길거리 포장마차 생활 청산하고 ‘꿈나무 분식’을 개업하다
[상가탐방] 길거리 포장마차 생활 청산하고 ‘꿈나무 분식’을 개업하다
  • 황민호 기자
  • 승인 2021.01.20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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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윤덕자씨의 25년차 노점 고군분투기, 꿈나무를 심다
삼양유치원 앞 꿈나무 분식, 5월18일 개업 ‘맛깔난 분식 먹으러 오세요’
8살 손주 광준이가 이름 지어줘, 잘 키운 네 자매 모두 옥천 사는 딸부잣집

가게마다 사연이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업을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의상디자인을 하며 의상실을 운영했던 디자이너가 세탁소를 거쳐 노점 포장마차를 거쳐 분식집을 차리기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지지 않는 연결지점마다 굵직한 삶의 변곡점이 턱턱 걸려 있었던 것이다. 부여에서 보은, 그리고 다시 생면부지의 옥천까지 삶의 여정은 녹록치 않았다. 생의 밑바닥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 날 것 그대로 맞부딪치는 노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낸 역전의 용사들이 드디어 분식집을 차렸다.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 왜 서러움이 없었겠는가. 길바닥에서 눈물 콧물 다흘리며 울기도 많이 울었고 내쫓김도 많이 당했다. 관공서 공무원들의 노점 단속 때문에 속이 상했고 장날마다 치열한 자리 다툼하느라 억세게 싸우기도 했다. 상처와 회한이 줄줄이 나이테처럼 새겨졌고 그것도 어느새 소중한 삶이 되었다. 접을까 말까 왜 망설임이 없었겠는가. 수십번 때려치고 그만하겠다는 마음도 한켠에 있었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또 다시 생계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눈 앞에 현현하게 나타났다. 

■ 길거리 포장마차는 힘들었지만 삶이었다

처음 길거리에 나섰을 때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왜 없었겠는가. 버티었다. 살아내려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수십번 되뇌이면서 거리의 찬바람을 견뎌냈다. 거리의 포장마차로 옥천에서 오롯이 네자매를 키워냈고 네 자매 모두 옥천에서 정착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삶 역시 높고 낮음이 없는 법이다. 거친 풍파를 겪어내며 살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작은 점포를 얻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앞에 작은 점포가 몇 달째 안 나가고 있어 눈여겨 보다가 바로 찜했던 것이다. 다행히 월세도 비싼 것이 아니었다. 서둘러 황급히 계약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분식집을 얻었다고 하니 8살짜리 손주가 이름을 지어주더라. ‘옥천꿈나무분식’이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지어진 가게 이름이 마음에 쏘옥 들어왔다. 가게를 열기 전에 온 가족이 다함께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적어도 10년 넘게 아니 그 이상 가게를 운영하기로 다짐했다. 아직 어린 또 다른 손주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운영하기 위해서다. 가게를 얻은 것은 그 이유가 더 컸다. 먹고 살기 바빠서 자식들도 저마다 맞벌이를 하는데 어느새 의무처럼 다가와 버린 손주 보육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점포가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점포 내 작은 방이 무려 두개씩이나 있었다. 네자매 손주들 우르르 몰려오면 한칸 한칸씩 배당하면 될 방이 두개씩이나 더 행복했다. 손주들 바로 코앞 학교에서 아장아장 분식집 걸어오면 할머니표, 할아버지표 맛깔나는 분식으로 끼니 해결하고 일도 할 수 있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했고, 자다가도 웃음이 나왔다. 어딘가로 출근할 일터가 있다는 행복감도 누렸다. 새벽부터 거리에서 투닥거리며 자리싸움하는 일을 벌이지 않아도 좋았다. 공무원 눈치 살피지 않아 좋았다. 꿈에도 그리던 꿈나무 분식이 드디어 개업을 한 것이다.

■ 합천 고향인 김종갑씨, 보은 고향인 윤덕자씨 옥천에서 뿌리 내리다

옥천읍 장야리 사는 김종갑(68), 윤덕자(63)씨 이야기다. 김종갑씨는 고향이 경상남도 합천이다. 그는 합천에서 나고 자라 부여 엘리제의상실에서 디자인을 맡아 옷 디자인을 하는 재주꾼이었다. 윤덕자씨는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가 고향이다. 부여에 있던 언니 소개로 김종갑씨와 맞선을 보고 결혼했다. 당시만 해도 너도 나도 귀한 날에 옷을 맞춰 입었지만, 점점 사양산업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윤덕자씨의 친정 보은에서 다시 엘리제 의상실을 열었지만, 세월이 갈 수록 신통치 않았다. 실력은 탁월했지만 시대 분위기가 그렇지 못했다. 83년 옥천에 있던 봉제기업 선무역에서 스카웃되어 일을 한 게 옥천에 살게 된 계기였다. 그 때 당시 옥천군 재무과장인 강호연씨와 옥천경찰서 수사과장인 김명항씨가 아르바이트를 해 기억에 남는다. 둘 다 열심히 일을 해 성공할 줄 알았다고. 6년 이상 선무역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다가 국제종합기계에서 기계부품 조립라인에서 3년 동안 일을 했다. 92년에는 마암현대아파트 앞에 세탁소도 운영해봤다. 세탁소도 시원찮았다. 당시 세탁소가 붐이라 마암현대아파트 사는 세탁소 주인이 무려 7명이나 되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빠듯했다. 그 당시부터 윤덕자씨는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정말 처음 거리로 나서는 게 두렵고 힘들었고 서글펐다고 했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하다보니 인이 베겼고 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체득했다. 같이 하겠다는 남편은 큰 힘이 되었다. 윤덕자씨한테 김종갑씨도 분식을 배웠다. 일취월장으로 튀김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 맨처음부터 분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묵 도매상으로 옥천/보은/영동/금산/무주/상주 등의 오일장을 돌면서 어묵을 도소매로 팔았다. 그러다 오일장보다 학교 앞, 주요 시내 길목 앞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 때부터 분식을 취급한 것이다. 텃새도 심했고 자리잡기가 어려웠다. 둘다 고향이 옥천이 아닌지라 지연혈연학연을 갖다댈 것도 만만찮았다. 

■ 앞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잔칫국수 봉사하는게 꿈

그는 2018년 8월 옥천신문에 기고를 한다. ‘무더위를 보내며’란 제목의 글에는 ‘저는 제이마트 사거리에서 옥수수 장사를 하는 장사꾼입니다. 그런데 장사꾼 이전에 옥천군민이기도 하지요. 지역의 농산물을 직접 파는 저는 농민과 군민사이의 연결체라고 생각하고 장사를 해왔습니다. 계속되는 신고로 제이마트 사거리에서 하던 장사는 못하게 되고, 멀리 꼬마궁전이 보이는 큰 사거리에서 이 무더위를 이기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득만 취하려고 하는 장사가 아닌데 군민들이 저의 이 마음을 몰라주는 거 같아 이렇게 무더위를 견디며 장사를 하면서 저의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모두가 이 무더위가 힘든 시간이 아닌 시원한 가을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라고 썼다. 그는 노점을 하면서 네 딸을 대학을 다 보내며 힘들게 살아온 여정으로 2003년에 ‘딸부잣집, 이 부부가 사는 법’이란 제목으로 옥천신문에 한번 기사로 난 적도 있다. 행간에서 그간의 어려움과 자부심이 읽힌다.  “벌써 분식만 25년 차에요. 이 쯤되면 베테랑이죠. 다 직접 만듭니다. 우리집 김말이가 제법 인기가 있는데 완성된 것을 사오는 게 아니라 당면 넣고, 양파, 당근, 그리고 깻잎까지 넣어서 감칠맛 나는 김말이가 일품이에요. 꼬마김밥, 떡볶이, 핫도그, 어묵도 끝내주고요. 겨울엔 호떡은 씨앗을 넣어 정말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아이들 입맛에 따라가려고 미니 돈까스와 감자튀김도 한번 해보려구요.”
이제 새벽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7시면 파한다. 일 8시간 근무는 훌쩍 넘지만,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면 이 마저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코로나19때문에 제대로 된 개업식도 못했다. 조촐하게 가족들 모여 가족 사진 찍은게 전부다. 노점 포장마차 생활을 청산하고 5월18일 삼양유치원 앞 옥천꿈나무 분식이 문을 열었다. 옛날 장애인 야학 ‘해뜨는 학교’ 자리인데, 정말 그들 인생에 해가 뜨고 있었다. 조금 여유가 되면 어려운 사람들 모셔놓고 잔치국수 한번 거나하게 대접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김용갑-윤덕자씨 부부. 그들의 꿈나무에는 꿈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위치 : 옥천읍 성암1길 2 
문의 : 043-733-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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