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내 ‘청소년동반자’로 활동 중인 황예순 씨
위기 청소년에게 ‘정서적 지지’, 학습·진로 상담 제공
학교 교육 닿지 못한 ‘현장’, 청소년동반자는 직접 찾아
전문 상담사·취약계층 청소년 위한 ‘마을허브’ 절실

지난해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속 ‘청소년동반자’로 활동하는 황예순씨.

대물림되는 건 가난뿐만이 아니다. ‘정서’도 대물림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으로 집안 살림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부모가 겪는 우울감은 같이 사는 아이에게 자연스레 전염된다. 부모의 우울감이 짙어질수록, 한창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의 허기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경제적 결핍보다 아이 삶 전체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서적 결핍. 위기 청소년이 놓여 있는 삶의 현장을 직접 찾고, 동반자로서 손을 내미는 이들이 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속 ‘청소년동반자’로 활동하고 있는 황예순(54) 씨를 지난 1월14일 만났다.

■ 학교가 닿지 못한 삶의 현장 찾는 ‘청소년동반자’

청소년동반자는 각 지자체 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찾아가는 전문가 상담’ 프로그램이다. 학교나 가정 등 위기 청소년이 속한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 심리적·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재 옥천군에는 2명의 청소년동반자가 있다. 그중 한 명이 황예순(54)씨다. 안내면에서 도자기·칠보 체험 공방 ‘천년비색’을 운영하는 황 씨는 지난해 1월부터 청소년동반자로 활동하고 있다. 평생교육을 전공하고 30대 초반에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담 전문가’다. 하루 4시간씩 주 3회. 일주일에 12시간을 청소년동반자로 활동한다. 그는 “행정적으로 시간을 나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유동적으로 시간을 조절한다”며 “아이와 부모 시간에 맞춰서 집에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근처 배바우작은도서관이나 학교에 가서 상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동반자는 1년에 24명의 청소년을 상담한다. 주로 청소년 1명당 6~10회 정도 상담이 이뤄진다. 학교 선생님이나 빈곤가정 아동을 지원하는 ‘드림스타트’의 의뢰로 상담 대상을 선정하기도 한다.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은 만 9세~24세로 규정돼 있다. 드림스타트는 주로 만 10세 이하의 취약 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지원한다고. 청소년동반자는 10세 이후의 위기 청소년들을 주 상담 대상으로 정한다. 그는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은 직접 가서 만난다는 점”이라며 “이미 심리적·경제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한 부모와 아이는 상담받으러 갈 여력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클래스’ 같은 학교 내 상담프로그램도 있고, 상담선생님도 계시지만, 가정 방문을 통해 직접 위기 청소년들을 지속해서 찾아가는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은 취약계층 청소년을 지원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 30년 지났어도... 위기 상황 방치된 청소년들 여전히 많아

황 씨는 안내중학교를 졸업했다. 대전에서 평생교육을 전공한 그는 성인이 된 후 옥천에 다시 돌아오면서 “평생학습원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옥천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다고. 바로 취약계층 청소년들의 ‘정서적 결핍’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옥천에 다양한 마을 프로그램도 생겼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위기 가정 속에서 정서적으로 결핍을 느끼고 부모 애정을 항상 갈구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창 사랑과 지지를 갈구할 나이에 부모의 우울감이나 무관심에 노출된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을 확률이 높고, 이는 지속해서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동반자’의 역할은 정서적 지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습과 진로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연계해 지원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취약 계층 가정에 작지만 하나씩 희망을 심어주는 게 청소년동반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황 씨는 “지역 단체들과 협력해 집수리도 지원한 적이 있었고, 세탁기 같은 물품도 지역 사회를 통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상담 후 밝아진 아이의 표정을 보면 뿌듯하다는 황 씨.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을 보면 상담이 끝나고 나서도 “책 보러 공방에 놀러 와라”고 말을 붙인다.

■ 청소년 위한 전문상담사·마을허브 절실

청소년 전문 상담사를 확충하고 ‘마을허브’ 같은 면 단위의 공동체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는 황 씨. 그는 “현재 옥천 전체를 두 지역으로 나눠 각각 한 명씩 상담을 맡고 있다”며 “시간제 상담사뿐만 아니라 정규직으로 청소년 전문 상담사가 현장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처럼 위기 청소년들을 돌볼 수 있는 마을 허브가 면 단위로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게 정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을 위해 지역의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황 씨는 “앞으로 우리 지역에 동반자들이 많이 확보돼서 자라는 청소년들과 깊게 대화 나누고 싶다”며 “청소년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이런 관계들이 ‘지역 안전망’처럼 돼서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밝게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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