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청년, 건강 문제로 일 못하고 차비 없어 파출소에 도움 청해
하루 벌이 위해 택배 일하는 청년, 하루에만 천 명 가까이
갈 곳 없어 신고하는 청년, 모든 신고 건수 중 70%

왼쪽부터 이원파출소 태봉무 소장, 김인석 경사, 신은안 경위
왼쪽부터 이원파출소 태봉무 소장, 김인석 경사, 신은안 경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한 청년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이원파출소 사연이 훈훈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루 벌이를 위해 충청남도의 천안에서 옥천까지 새벽 일하러 왔다가 뜻밖의 건강 이상 판정을 받은 20대 청년, 혼자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교통 편도 마땅치 않았고 주머니 사정도 어려웠다. 그때 그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건 늦은 밤 유일하게 불빛을 반짝이던 이원파출소 김인석 경사와 신은안 경위였다.

하루 일당을 벌러 택배 일하러 왔다가 건강 문제로 일 못하고 차비 없어 이원파출소에 찾아온 청년에게 흔쾌히 자신의 사비로 도움을 준 김인석 경사
하루 일당을 벌러 택배 일하러 왔다가 건강 문제로 일 못하고 차비 없어 이원파출소에 찾아온 청년에게 흔쾌히 자신의 사비로 도움을 준 김인석 경사

■ 하루 벌이 위해 옥천까지 왔다가 돌아가게 된 20대 청년

지난달 17일 오후 8시20분쯤 한 청년이 이원파출소를 찾았다. 주황색 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온 청년은 한눈에 봐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20대 후반의 모습이었다. 야간 근무를 하던 김인석(50) 경사가 어쩐 일이냐고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택배의 성지’라 불리는 옥천에 하루 벌이를 위해 택배 일하러 왔다가 혈압이 높아 일을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28살 청년이었다. 천안의 한 인력센터를 통해 45인승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걸려 오게 된 청년은 앞이 막막해졌다. 이원역에서 천안으로 돌아가는 상행선 열차는 없었고 주머니에는 교통비가 넉넉지 않았다. 물류센터에서 제공하는 휴게실에서 기다리다가 다음날 오전에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것도 가능했지만 일이 없어진 가운데 휴게실에서 계속 있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청년은 “17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며 “혼자 생활 중이다”고 말했다. 김인석 경사는 청년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나이대가 비슷한 자신의 조카가 생각났다. 그는 함께 근무하던 신은안 경위와 함께 청년을 옥천역까지 데려다줬다. 사비로 40분 뒤에 출발하는 5천600원 열차표까지 끊어줬다. 표를 받은 청년은 돌아가는 김 경사와 신 경위에게 몇 번이고 고개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돌아가서 돈을 다시 보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이 전하는 감사 인사에 김 경사는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요, 뭘. 잘 돌아가요.”

하루 일당을 벌러 택배 일하러 왔다가 건강 문제로 일 못하고 차비 없어 이원파출소에 찾아온 청년에게 흔쾌히 자신의 사비로 도움을 준 김인석 경사
하루 일당을 벌러 택배 일하러 왔다가 건강 문제로 일 못하고 차비 없어 이원파출소에 찾아온 청년에게 흔쾌히 자신의 사비로 도움을 준 김인석 경사

■ 야간 택배 일 못하고 나와 파출소 찾는 경우만 일주일에 2~3건

이원파출소 태봉무 파출소장은 청년이 야간에 옥천으로 하루 일당을 벌러 왔다가 도중에 나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파출소를 찾는 경우가 일주일에 2~3건은 된다고 했다. 전체 신고 중 70% 정도가 관련 사례다. 이번 사건 역시 수많은 신고 중 하나로 끝날 수 있었지만, 경찰서 홍보 담당자가 친절봉사 사례로 지방청에 올려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번 일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서 그렇지,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유. 뭐 어쩌겠어유. 택배회사 차원에서 해결해달라고 몇 번 요청했는데 바뀌는 게 없더라고요.”

택배 일은 보통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일용직 노동자가 건강검진과 안전교육을 받은 뒤 오후 9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2시간 단위로 10분가량 휴식 시간이 보장된다.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일하면 11만 원가량의 일당을 받는다. 한 시간씩 연장할수록 2만 원 조금 안 되는 임금이 추가된다. 오전 9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지친 몸을 싣는다.

노동자 중 대부분은 일용직 청년 노동자다. 태 소장은 택배 일하다가 도중에 나와 신고가 접수된 사례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는 혈압이 높거나 체온에 이상이 있어 일을 못한다는 판정을 받아 나오게 되는 경우다.

택배 회사까지 오는 버스 탑승 전에 검사를 하거나 도착한 뒤 건강 이상 징후가 있는 이들만 따로 돌아가는 교통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지만 택배회사 측은 현재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만 방편을 마련한 상태다. 나머지 두 가지는 일하는 도중 다른 노동자와 갈등이 생겨 뛰쳐나오는 경우와 노동 강도를 버티지 못해 나오게 되는 경우다.

태 소장은 “택배회사가 제공하는 휴게실도 휴식공간이라기보다 보안실에 가까워 청년들이 도중에 일을 포기하는 경우에도 거기 머물지 않고 뛰쳐나오는 것 같다”며 “회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몇 번 건의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출소가 지역마다 한 곳씩 있어야 하는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렇게 나온 청년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파출소까지 없으면 방법이 없잖아요.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공적인 일을 담당하는 파출소가 한 곳씩은 있어야 뭐라도 도움을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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