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옥천군수어통역센터 새로 온 박미혜 수어통역사
조부모·부모님 모두 청각장애인 … 8남매 중 장녀
비장애인이지만 ‘농문화’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
공공행사 수어통역사 의무 배치 안 해 … 청각장애인 ‘알 권리’ 보장해야

손짓으로 옹알이를 했다. 들리지 않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첫째 딸은 가족과 세상을 잇는 ‘다리’였다. 작년 7월 옥천군 수어통역센터(센터장 유병석)에 새로 온 박미혜(26) 수어통역사의 이야기다. 청각 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를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라고 한다. 싫든 좋든, 박 씨는 어린 시절부터 수어로 청각장애인 부모와 비장애인 사이에서 통역해야만 했다. 밑으로 동생 7명. 박 씨는 집안의 첫째 딸이자, 동생들에게는 부모와 다름없었다. 고교 졸업 후 오로지 가족을 위해 했던 수어통역을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업으로 삼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 경계에서의 26년. 굴곡지고 삭힐 게 많았던, 굳은살 박힌 그의 삶을 지난 1월11일 수어통역센터에서 들어봤다.

■ 청각장애 부모와 동생 7명 뒷바라지 해온 집안의 ‘기둥’

어린이집에서 처음 말을 배웠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었던 박 씨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말을 동생들에게 썼다. 집안 대소사를 처리하는 것 모두 박 씨 몫이었다. 어렸을 적 용접 일을 했던 아버지가 ‘쉬겠다’고 회사에 연락할 때도 어린 박 씨가 대신 전했다. 수화기 너머로 욕이 들려왔지만, 차마 아버지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세상을 수어로 연결하며 박 씨는 또래보다 먼저 ‘어른’이 됐다.

“학교 다닐 때 전화로 ‘부모님 바꿔라’는 말을 들으면 난감했어요. 학교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의 딸’을 바라보는 편견이 있었어요. 학부모회나 각종 설명회 같은 곳도 제 부모님은 못 오셨어요. 학창시절 많이 힘들었죠.”

7명의 동생에게도 박 씨는 누나 혹은 언니 그 이상이다. 아직 학생인 동생들의 학부모 연락처에는 부모님 대신 박 씨의 연락처가 등록돼 있다. 막내는 11살로 청각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보청기에 의존해 듣고 말할 수 있지만, 듣는 게 힘들다 보니 언어 습득이 더디다. 언어치료와 인지능력 교육 등 각종 교육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 씨는 “동생들 모두 수어를 할 줄 알지만, 남동생들보단 여동생들이 수어를 잘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밖에 할 수 없겠구나” 고교 졸업 후 수어통역사 길 걸어

박 씨가 처음부터 수어통역사를 꿈꾼 것은 아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수화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지치고 힘들어서다. 하지만 생각이 바뀐 것도 결국 부모님 때문이었다. 박 씨는 “어차피 장녀인데, 평생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때 받아들이게 됐다. 나 말고는 수어로 부모님과 세상을 잇는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주 사용하는 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수어통역의 길을 걷게 됐다”라고 말했다.

부모님의 첫 반응은 “괜찮겠냐”였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지인들 또한 “왜 이 험난한 길을 가려 하냐”고 말렸다. 수어통역사가 된 후 박 씨는 같은 일을 하는 아버지와 대화를 전보다 더 많이 하게 됐다. 그는 “아버지가 충남 보령시 수어통역센터장을 맡고 계시는데 오늘만 해도 3~4번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했다. 집안일 뿐만 아니라 수어통역이나 센터 관련한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집에 가면 2-3시간은 쉬지 않고 대화한다”라고 말했다. 박 씨가 정식 수어통역사가 된 후 아버지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박 씨처럼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들을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라고 부른다. 이들은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문화 모두 익숙해 둘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박 씨는 “코다 자녀들이 수어통역의 길을 많이 걸으면 좋겠지만 자라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나 참아왔던 감정들이 쌓여 이쪽으로 많이 오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수어통역사를 택하지 않아도 코다 자녀들은 세상과 집안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아산·홍성·천안 ‘수화언어 활성화지원’ 조례 시행… 옥천군은 아직도 없어

옥천에 사는 청각장애인은 500여 명. 이중 군 수어통역센터에 정회원으로 등록한 청각장애인은 43명 정도라고 한다. 1년에 2만 원 회비를 내면 표준 수어도 배우고 통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센터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옥천에 오기 전 박 씨는 충남 홍성군 수어통역센터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수어통역 관련 조례가 옥천에 없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후 각 지자체에서는 ‘수화언어 활성화 지원 조례’와 ‘수화언어통역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인근 충남 아산·홍성·천안에는 이미 관련 조례가 제정된 상태다. 옥천에는 수화언어 관련 두 개의 조례가 모두 없다. 조례가 없으니 의회나 공적인 자리에 수어통역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지 않아도 된다. 수어통역센터도 상급 기관의 편의에 따라 사라질 수 있다. 박 씨는 “옥천에서도 ‘수화언어 활성화 지원 조례’와 ‘수어통역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빨리 제정됐으면 좋겠다”며 “센터 운영 측면에서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의회나 공적인 자리에 무조건 수어통역사를 배치해 청각장애인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 2언어로 ‘수어’ 배웠으면”

박 씨는 쉬는 날이면 수어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 서울에 간다. 지방에서는 수어 관련 공연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수어’가 뉴스 화면 속 조그만 원 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박 씨. 학생들이 일본어나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것처럼 수어 또한 하나의 대중 언어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수어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 같다. 수어로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나 매일 질병관리청 정례브리핑에 등장하는 수어통역사를 보고 비장애인들이 ‘저게 수어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많은 비장애인들이 수어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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