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 시공에서 시작하여 주경야독으로 ‘보일러기능사’까지 취득
주변 도움 없이 홀로 유튜브 보며 다양한 설비 작업 공부
“부인과 2남2녀 자식들 보면 힘든 것도 느끼지 못해”
내 돈 몇 푼보다 다른 사람 안전 중시하며 일할 것

양력 1월 5일 소한(小寒), 1년 중 대한(大寒) 다음으로 기온이 낮은 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한을 가장 춥다고 느낀다. 소한 때는 기온이 급격하게 낮아지지만, 대한 때는 소한의 추위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올해 1월 5일은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까지 겹쳐져 유난히 추웠다.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느 때보다 나만의 따스한 공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보일러 없이 긴 겨울을 보낸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4일 소한의 문턱에서, 20년째 옥천의 보일러를 책임지고 있는 ‘동서종합설비’ 전원상(58) 대표를 만났다.

■ “돌팔이” 설움 이겨내려고 도전한 보일러기사 자격증

전원상 대표는 현재는 보일러 전문가지만 타일 시공으로 설비 업계에 발을 들였다. 6남매 중 차남이었던 전 대표는 좋지 않았던 가정 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전의 유명한 타일 가게 주인과 연줄이 닿아 어린 나이에 타일 시공을 배우게 됐다. 현 동서종합설비의 전신인 ‘동서타일’을 역전에 차리고 본격적으로 타일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사업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공사가 끝나는 와중인데도 업자들이 돈을 안 줘요. 다 선후배 사이인데도 그랬어요. ‘대출받아서 준다.’ ‘다음에 공사하면 주겠다.’ 그런 식으로 돈을 많이 떼먹혔어요. 지역사회에 이런 말하기 좀 뭐한데, 예전에는 없는 사람 헐뜯고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았어요. 타일 일을 계속 해봤자 못 받는 돈만 늘어났죠.”

그때부터 전 대표는 다른 설비 작업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결혼도 했기에 어떻게든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하수구 뚫기, 누수 탐지, 변기 교체 등 돈이 되는 설비 일은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종업계 선배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전 대표를 응원하기는커녕 헐뜯기 바빴다. 그는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차량에 스피커도 달고 열심히 홍보했는데, 선배들은 전 대표를 ‘무자격증’ ‘무점포’라며 조롱했다. 심할 때는 ‘돌팔이가 뭘 해 먹겠냐’라는 험담까지 들어야 했다.

전 대표는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에 굴하지 않았다. 설비 작업으로 평생 먹고살기로 작정한 그는 뒤에서 숨어서 할 게 아니라 자격증도 따고 상호도 내서 정석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주경야독으로 대전역에 있는 ‘한국열관리냉동기술학원’에 다니며 ‘보일러기능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그러나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책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왔어요. 어느 날 학원장이 그러더라고요. 이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대학 나온 거 다 필요 없고, 당신이 이 일에 얼마나 애착을 갖느냐에 따라 따고 못 따는 거지 남 얘기는 듣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포기하지 않다 보니까 어느 날부터 조금씩 나아졌어요. 한 문제를 맞힐 때마다 점수가 2점씩 플러스 되는 게 보였어요. 6개월 만에 보일러기능사 1급 자격증을 땄어요.”

사람들은 전 대표가 보일러기능사 1급을 땄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놈이 무슨 1급이냐’는 인신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점차 주변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전 대표가 국가에서 준 수첩을 들고 다니니 주변 선후배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모욕을 주거나 덤비지 않았다.

전용 약품으로 막힌 변기를 뚫는 모습
바닥에 보일러 배관을 설치하는 모습

■ “최고는 아니지만 늘 최선을 다하여”

전원상 대표 한 명이 자격증을 따고 성실히 일한다고 지역 설비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았다. 후배들이 와서 모르는 걸 물어봐도 선배들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도 모르냐고 지적하기에 바빴다. 전 대표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끼리 서로 밀고 끌어주지 못하는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전 대표 스스로 살아남을 길을 연구해야 했다. 타일 장사로 시작해 보일러전문가가 됐지만, 전 대표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유튜브에 보일러 시공 및 하수구 뚫기 등 다양한 기술 설비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

“같은 하수구를 뚫어도 올리는 사람마다 다 방법이 달라요. 그럼 참고하려고 많이 보죠. 기계는 뭐를 쓰고 기술은 어떻게 하고 이런 것들을 배우려고요. 내가 미흡한 점들이 분명 있어요. 그런 영상을 보면, 나도 저런 기계를 구입해서 소비자들한테 더 인정받고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당장 최고는 아니지만 늘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겁니다.”

■ 가족만 생각하며 버틴 27년 세월

전원상 대표가 온갖 멸시를 견디고 이겨낸 원동력은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가족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는 어떤 순간보다 그의 눈빛은 반짝였다. 그는 옥천에서 태어나 옥천에서 부인을 만났고, 옥천에서 2남2녀 자식들을 길러냈다.

1995년 잠시 대전에서 살던 전 대표는 옥천에서 타일 하는 친구를 도왔다. 마침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해서 그가 외로움을 느끼던 찰나, 친구가 다니던 타일 회사의 한 경리 직원을 마주치게 된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그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운명은 우연을 가장한 채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녀는 퇴근 이후 대전에 있는 주산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그는 저녁마다 그녀를 주산학원에 데려다주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때 당시 타일 단가가 꽤 높아서 돈벌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꾸준히 벌었죠. 다른 사람들은 전세 사는데 난 집도 있었고요. 차도 승용차 끌고 다니고, 무전기만 한 전화기도 가지고 다녔어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27년째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바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며 삶의 재미를 느끼는 모습은, 같은 나이대의 여느 부모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나름의 확고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자식들에게 늘 스스로 깨우쳐서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찍 학업을 접었지만, 남들의 말에 개의치 않고 기술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전 대표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적성에 맞는 길로 가라고 말한다.

동서종합설비 홈페이지의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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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종합설비는 다양한 설비 업무를 처리한다.

■ 내 ‘돈’보다 중요한 다른 사람의 ‘안전’

전 대표의 꿈은 자신과 가족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저녁 8시까지 일하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젠 5시 이후까지 일하기는 쉽지 않다. 쉬는 날도 따로 없다. 일없는 날이 쉬는 날이다. 예전에는 교차로에 구인 광고를 내면 2~3명 정도 일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지만, 지금은 아예 맥이 끊어져 조수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전 대표는 몸 관리를 잘해서 소비자가 부르는 마지막 날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욱 인상적인 건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 안전까지 걱정하는 그의 사업 철학이다. 얼마 전 옥천 소재의 한 음식점에서 수도가 얼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가 현장에 가보니 화재 위험이 높은 열선이 중복되어 감겨 있었다. 합선이라도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전 대표는 곧장 음식점 직원에게 화재의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는 잘 썼어도 그건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몇 십 년 전엔 저도 아무것도 모르고 열선을 깔아줬죠. 그런데 안전교육을 철저히 받다 보니까 이젠 돈을 얼마를 줘도 위험한 작업은 안 해요. 당장 돈 몇 만원에서 몇 십만 원 더 벌자고 소비자를 위험하게 만들 순 없죠. 아무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지만,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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