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토박이의 옥천 체험기] 생밤에서 잘 구운밤이 되기까지
[서울 토박이의 옥천 체험기] 생밤에서 잘 구운밤이 되기까지
  • 이미소 인턴기자
  • 승인 2020.12.31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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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 기자체험 및 2주살이
인생은 맛있는 군밤을 구워가는 과정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 ‘옥천’은 처음 들어보는 낯선 곳이었다. 우연히 네이버에서 별의별 이주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고 타지에 2주간 살아보고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시 청년허브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타 지역은 마감됐고 옥천 이주기자 체험은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타지살이에 대한 동경과 이직 준비 그리고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에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연고 없는 옥천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이틀 후 연락이 왔고 양손 가득 짐을 든 채 기차를 타고 옥천에 발을 내딛었다.

■ 옥천 2주살이 시작

그렇게 옥천 2주살이가 시작 됐고 평일에는 취재도 가고 기사도 써보며 지역 신문 기자 체험을 했다. 옥천을 더 알아보고자 주말 여가시간에 갈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디로 가보는 게 좋을지 몰라 인스타그램에 옥천 가볼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천 시민 중 한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고, 알려주신 곳 중 호수 위의 병풍바위라 불리는 ‘부소담악’ 에 가보기로 했다.

■ 부소담악과 분홍색 트럭카페 cafe449

부소담악에 도착해 입구의 종합안내도를 보는데 장승이 안내 표지판과 함께 서있었다. 마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듯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Cafe449’라고 쓰여있는 분홍색 트럭과 넓은 부지가 눈에 띄었다. 분홍색 트럭 옆을 둘러보니 굉장히 큰 모닥불이 있었고, 카페에서는 모닥불에 구워먹을 수 있는 쫀드기, 가래떡, 밤, 고구마를 판매하고 있었다. 얼마 전 MBC 예능 나혼자산다에서 배우들이 불멍(불 보며 멍 때리기) 하는 것을 보고 해보고 싶었던 터라보자마자 매우 설랬다. 점심을 먹고 온 후라 카페는 부소담악을 구경하고 다시 오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처음 마주한 곳은 대청호였다. 한 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큰 대청호를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탁 트였다. 대청호를 왼쪽에 끼고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니 장승공원이 나왔다. 입구에서 봤던 장승과 비슷한 장승이었지만 마을을 지키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등 무섭고 큰 장승들이 서있었다. 무서운 느낌이 들어 장승공원을 후다닥 빠져나와 나무계단을 올랐고 장승 2개가 서있는 추소정이 나왔다. 부소담악 곳곳을 장승들이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추소정에 올라가니 큰 대청호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조각이 있었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형상처럼 보여 신기했다. 대청호의 장관을 남기고 싶었지만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쉬웠다.

추소정에서 내려와 병풍바위로 향했다. 영하의 날씨였는데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바람이 불어 더 춥게 느껴졌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좁고 험한 길을 걸어 병풍바위에 도착했다. 병풍바위에 올라가니 호수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병풍바위를 둘러싼 대청호는 정말 절경이었다. 오래 감상하고 싶었지만 매서운 바람에 떠밀려 금방 내려왔고 부소담악 입구에 있는 Cafe449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밤과 가래떡을 구매해 모닥불 앞에 앉았다. 얼어있던 몸이 녹았고 금세 익은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해 치즈처럼 늘어났고 허기진 배를 달랬다. 가래떡을 먹고 나서 밤을 채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센 불에 하면 타고 익지 않으니 약한 불에서 계속 흔들어야 한다며 큰 참나무를 한쪽으로 치워주셨다. 또한 밤에 칼집이 나있으니 익으면서 벌어지면 먹으라고 하셨다. 약한 불에 밤이 들어있는 채를 올려놓고 계속 흔들다보니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모닥불 연기까지 바람과 함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듯 했고, 눈이 매워 여러 번 눈물이 났다. 밤은 내 생각처럼 쉽게 익지 않았고 군밤이 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칼집 낸 곳이 벌어지며 노랗게 잘 익은 속을 드러냈다. 잘 익은 밤 하나를 먹자마자 고생했던 기억이 눈 녹듯 사라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하며 촉촉하진 않았지만 결코 퍽퍽하지 않았다. 길에서 군밤을 사먹을 땐 군밤이 이렇게 맛있다고 생각 못했는데, 마치 처음 먹어보는 맛 같았다.

 

■ 인생은 맛있는 군밤을 구워가는 과정

군밤을 먹으며 인생도 맛있는 군 밤을 구워가는 과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센 불에 밤을 빨리 구우려고 하면 겉은 타버리고 속은 익지 않는 것처럼 급하게 결정해서 후회했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힘들지만 차근차근 했을 때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와 놀랐던 경험이 있다. 딱딱한 생밤을 부드럽고 달콤한 군밤으로 만들려면 약한 불에 천천히 구워야 하고, 팔이 아플 때까지 채도 흔들어야한다. 모닥불 연기에 눈이 매워도 참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때론 아프고 눈물이 나더라도 참고 버티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 어느 새 맛있게 구워진 군밤처럼 목적지에 도달해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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