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 천자문의 품격, 심향회전에서 한번 볼까
일필휘지 천자문의 품격, 심향회전에서 한번 볼까
  • 윤지영, 황민호 기자
  • 승인 2020.12.3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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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대표 서예동인, 심향회 23번째 전시회
코로나19에 포기할까 고민하다 29일까지 전시회 전격 개최해
19명 작가, 한 달 바짝 공들인 작품 전시
28일 옥천 전통문화 체험관에서 열린 제 23회 삼양회전 이세희(68)작가의 금문 천자문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사자성어도 아니고 명심보감 글귀도 아닌 천자문을 어떻게 일정한 간격에 맞춰 예술적인 서체로 써내려 갈 수 있을까? 2미터가 넘는 화선지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써 내려간 천자문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 감탄이 나왔다. 물어보니 장장 8시간이 걸린단다. 이미 점을 찍은 글씨는 멈출 수도 없거니와 한 글자라도 틀리면 다 버려야 하기에 모든 잡념을 버리고 집중하고 또 집중, 몰입하고 또 몰입해야 했다. 붓글씨는 그림과 달리 덧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장의 천자문을 완성하기까지 10번 넘게 고쳐 써야 했단다. 온전한 하루의 중노동이다. 

군북면 막지리가 고향인 권종현 작가는 대구에서 오랜 사업을 하다가 청성면 무회리로 귀촌한 뒤 이같은 예서 천자문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이 작품만으로도 놀라운데 진짜 백미는 열걸음 더 걸어간 다음 작품에 있었다. 권작가의 작품이 반듯한 예서체로 쓴 것이라면 심향회의 회장 이세희 작가의 작품은 쓰는 게 아니라 그려낸다는 표현이 더 적확한 ‘금문 천자문’으로 상형문자인 천자문을 쓴 작품이었다. 상형문자라 한번에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꿈틀거리는 획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확 다가온다. 

대구가 고향인 이세희 작가는 여성회관 김선기 선생의 서예교실 회원들의 모임인 심향회에 가입한 지 벌써 22년째다. 거의 창립멤버나 다름없는 이세희 작가는 서예는 세월에 따라 실력이 늘수록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취미라고 예찬 했다. 

이 귀한 작품을 보려면 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 관성관에 왔어야 한다. 29일자로 소리소문없이 아쉽게 전시가 마무리됐지만, 이 전시가 준비되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단 코로나19로 올해 강좌가 10월 전까지 다 취소 되었다. 마땅히 올해 전시도 취소하겠거니 했지만, 마지막 반짝 열린 10월 강좌가 꺼진 불씨를 되살렸다. 

한 달 동안 짧은 강습은 무려 9개월 동안 잠자던 서예 감성과 실력을 맘껏 끄집어냈다. 전시회를 하려면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어내야 했다. 10여 명의 심향회 작가 동인들은 외려 짧은 시간이 몰입감을 자아냈다고 말 한다. 한 달 동안 작품을 출품하고 표구하고 전시하기까지 쏜살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군 예산 도록 제작비 150만원을 지원받아서 어렵게 회원들의 정성으로 만든 전시회, 물론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많은 전시 관객들이 다녀가진 못했다. 하지만, 전시를 한해 띄우지 않고 열었다는 것 만으로도 회원들에게는 큰 자부심이다. 심향회 23년의 역사를 23회의 전시로 치러냈기 때문이다. 

전시장 깊숙한 한 벽면에는 스승인 김선기 서예가의 작품이 고즈넉하게 걸려있다. 여러 작품들이 품격을 달리한다. 서예는 확연히 눈에 보이는 구상임에도 김선기 서예가의 작품은 그것을 훌쩍 뛰어넘어 글씨에 담긴 의미를 담아 비구상의 세계로 뛰어들게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은 눈요기를 넘어 마음을 들여다 보기에 충분하다.  

군북면 환평리 의성농원의 손영환 작가는 ‘인의예지’가 담긴 커다란 병풍을 완성했고, 이미 경찰 재직 시절부터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린 안치성 작가는 서예 입문 6년 만에 서예 작가 반열에도 올랐다. 동적인 취미인 사진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정적인 취미인 서예를 일각서실을 다니면서 배웠다는 안치성 작가는 정-동의 조화로운 서체를 고스란히 작품에 담았다.  

최연소 작가인 정은화(45)씨는 일 때문에 자주 강습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어렵게 작품을 냈다. 입문한지 5년. 행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서예는 하면 할수록 재미와 의미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서예 입문 1년 째 처음 전시회에 참가한 박기정씨도 작품을 냈다.

달샘 이순자 작가는 서민들의 민체로 정지용 시인의 작품 ‘향수’와 함께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글귀 ‘소경’을 써 마음을 정화한다. ‘뵈오려 안 뵈는 님/눈감으니 보이시네/감아야 보이신다면/소경이 되어야지이이다’ 글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서체들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심향회 이세희 회장은 “서예는 실내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훌륭한 취미이다”며 “취미를 넘어 돌아온 삶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정표를 제시하는 수업으로 코로나19시대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 여성회관의 수업은 23년째 계속됐다. 이 날 만큼은 심향회의 시간이다. 서예 수업은 수강 완료가 없다. 하면 할수록 늘고 배우면 배울수록 배울 게 늘어난다고 한다. 끝이 없는 수양과 정진. 그러기에 마음의 향이 더 깊어지는 지 모른다. 코로나19에서 심향회의 전시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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