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희 회장에 이어 조숙제 신임회장 임기 시작
[그늘의 힘]을 포함한 총 63편의 작품이 수록
“회원 확보하고, 합평하여 서로 실력 발전 도모”

24년 동안 매년 문학동인지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향이라 일컬어지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 옥천에서 내는 문학동인지는 지용의 맥과 혈을 잇는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옥천 문인협회에도 있다가 작가회의로 넘어와서 3년차 되던 해에 신임 회장을 맡은 조숙제 작가는 옥천 문단을 포함해 교육계에서도 산전수전 다 겪어낸 문인이다. 그가 첫 회장이 되고 그의 작품인 ‘그늘의 힘’이 표지제작이 되었다는 것은 남다르다. 그늘을 부정하지 않고 살아갈 힘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은 어두웠던 과거와 화해하고 자신의 현재를 긍정하며 미래의 길을 열어나가겠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가 새 작가회의 수장으로 옥천 문단을 새롭게 일신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24번째 동인지를 들고 왔다. 포부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옥천작가회의 신임회장 조숙제 작가

■ ‘옥천작가회의’ 앞으로 이렇게 되었으면 

‘옥천작가회의’(회장 조숙제)에서 문학동인지 제24집을 발간했다. 

이번 문학동인지에 참여한 작가는 김명회, 김성규, 김성장, 박근석, 박기영, 박성례, 박소연, 유병록, 유성회, 정애옥, 조만희, 조숙제, 홍성규, 황예순 총 14명이다.

이번 제24집 문학동인지의 표제작에는 조숙제 작가의 시 <그늘의 힘>이 선정되었다. 충북문화재단 300만원의 지원을 받아 펴낸 제24집 동인지에는 <그늘의 힘>을 포함한 총 63편 작품이 수록됐다.

조숙제 회장은 “앞으로 ‘옥천작가회의’를 친목모임이 아닌 서로가 글을 쓸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을 비판함으로써 상부상조하는 쪽으로 이끌어 가고 싶다”며 “작품을 통해 만나서 서로를 조응하는 관계로 나아가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옥천작가회의 회장이 된 이상 글을 좋아하는 숨은 보석 같은 분들을 수용해 ‘옥천작가회의’ 회원 수를 확충하는 것이 첫 과제라고 말했다. “송진권 선생님 같은 분만 오면 천군만마같은 응원군이 되겠는데 바쁘셔서 특강 형식으로라도 초대를 한 번 하고 싶어요.”  

송진권 시인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 출신으로 고향에 남아 현직 역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시인이다. 그는 ‘2019 천상병 시 문학상 선정’, ‘제7회 고양행주문학상 선정(2018)’, ‘대산문화재단 올해의 창작기금 시부문 수혜자(2009)’, ‘제4회 창비시인시인상(2004)’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옥천작가회의 조숙제 회장의 바람도 들을 수 있었다. “송건호기념사업회와 보조를 맞춰 언론문화제를 할 때 청소년 논술쓰기 대회 같은 문학행사 개최와 시상식을 같이 하고 싶어요. 작가회의 동인들이 일 벌이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지만, 제가 회장이 된 이상 정지용 선생님과 함께 송건호 선생님을 부각시키고 싶어요. 정지용 선생님에 관한 연구는 이미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송건호 선생님을 더 알리고 싶은 거죠. 정지용 선생님과 송건호 선생님의 업적을 통해 순수문학과 실천문학이 함께 날개를 펼치고, 옥천이 문학의 성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서 문학에 관한 관심을 이끄는 것 또한 작가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옥천이 외가인 윤중호 시인의 시도 같이 돌아보며 옥천 출신 새로운 시인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학동인지 제 24집 「그늘의 힘」

■ “그늘도 생의 양분이 되죠.” <그늘의 힘> 조숙제 작가

24집 동인지 표제작 그늘의 힘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그늘의 힘>은 팔자 타령이죠. 그늘은 음지를 뜻하는데, 힘들었던 것이 저의 일상이었지만 뒤를 돌아보니 그게 생의 양분이었다는 의미에요.”

조숙제 작가는 안내중학교 졸업 후 대전고등학교에 응시했지만, 떨어졌다. 그는 “그때 선생님께서 철도고등학교나 특수고등학교를 소개해줬다면 거기에 갈 것을..”하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하지 못하고 검정고시까지 응시했지만 그마저 합격하지 못했다. 수학 때문이었다. 힘들었던 학창시절과 고됐던 노동자의 삶, 결국 조숙제 작가는 18살에 불교계로 귀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집안이 어려웠고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많았던 그는 예산 수덕사에 행자로 입산을 했고, 출가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위암말기 소식이 그를 절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집에 돌아온 이상 다시 절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숙제 작가는 부처님을 절에 모시지 않아도 부모를 잘 모시고, 자식은 자식의 길을 잘 가는 것이 법전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절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후에 그는 아무도 응시하지 않던 안내중학교 소사(기능직)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공부도 잘했으면서 학교 소사로 들어간다고 하는 조숙제 작가를 비웃었다. 당시 소사 일은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일이었지만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일이 좋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안내중학교에 소사로 들어가게 됐다. 당시 교장은 그가 쉬는 꼴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쉬는 날이 없었고 잡일, 힘든 일도 다 그에게 시켰다. 그때 허리를 심하게 다쳐 의사가 놀랄 정도였다. 그 결과 공상, 상이 6급 2항의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 국가유공자가 됐다.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는 계속 글을 썼다. 어디 내색도 못하고 털어놓지도 못한 넋두리들을 글로 풀어냈다. 그때 왜 교사들의 노동조합이 필요한 지 몸으로 깨달았다. 그는 당시 자신을 위로해줬던 좋으신 교사들 덕분에 13년간의 노동이 하루 같았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가 싫었지만 가정을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34년을 근무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 몸으로 일하며 먹고 산 것이 본인의 자산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일을 하면서 있었던 힘든 것들을 일기로 쓰기 시작했고, 넋두리 일기를 쓰다보면 속이 후련해졌다. 안내중학교에서 소사로 숙직 일을 할 때 여유 시간을 활용해 불교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으니 지식이 머리에 쏙쏙 빨려 들어왔다. 여러 책을 읽다보니 그는 ‘출세보다는 이 길을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방도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옥천도서관에서 근무를 할 때에도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도서관에는 보석 같은 책이 많아 여러 책을 읽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오랜 기간 문인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다가 3년 전 옥천작가회의에 들어갔다. 문인협회에서 옥천작가회의로 소속을 변경한 사람은 조숙제 작가 뿐이다.

‘살면서 어이 상처 없는 삶이 있으랴 / 어제는 종일 풀리지 않는 매듭에 남을 원망도 자책도 해 보았지만 밀어낼수록 자욱한 안개 속이다 / 산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는데 하지만, 꽃길만 걷는 이 있던가. 돌덩이에 채여도 길은 넓듯 가다 보면 먹구름 속에서도 푸르른 날 있듯 나 또한 너를 믿으며 오늘이라는 얼굴에 힘껏 분을 바른다. / 부드러운 곡선보다 구절양장, 굽이굽이 되새김질 하는 맛도 그늘에서 숨죽이며 애간장 녹이던 열기도 지울 수 없는 초라한 이력이기에 너를 믿으며’

(조숙제 작가-그늘의 힘 전문)

<그늘의 힘> 팔자타령이다. 그늘은 음지를 의미한다. ‘나 또한 너를 믿으며’ 라는 구절에서 ‘너’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조숙제 작가의 과거 힘들었던 일상이다. 그는 이를 참고 견디니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수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부드러운 곡선보다 구절양장과 같은, 평탄하기보단 굴곡진 삶이 그에게는 나중에 되돌아보니 큰 자산이 되었다는 말이다. “만물 중 나에게 위대한 스승이 아닐 게 하나도 없어요. 이것들을 도반으로 생각할 때 시야가 넓어지고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시각이 돌아오고, 글 쓰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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