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생분해 종이멀칭지를 연구·개발한 최현황 대표
폐비닐 수거로 인한 농촌경제 손실 막고자 ‘에이스멀치’ 설립
녹조 현상, 토양 오염 예방…건강한 농산물 재배 기대

우리나라에 매년 방치되는 영농 폐비닐만 약 32만톤(t). 지자체가 농협, 농업인단체 등을 통해 집중 수거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의 폐비닐은 방치되거나 불법 소각되는 실정이다. 수거도 잘 안 되고, 걷어가는 입장에서도 돈이 안 되니 악순환의 연속이다. 어느 지역이든 농촌 폐비닐로 인한 환경오염은 잠재된 시한폭탄처럼 다가온다. 더군다나 중국에서도 폐비닐 수입을 막아놓은 상황이니 재활용할 곳도 마땅치 않다. 화학물질로 만들어 부식기간만 최소 50년이 걸린다는 비닐멀칭, 이대로 놔둬도 정말 괜찮을까?

불과 40년 전에도 폐비닐을 논바닥에 태운 게 일상적인 농촌 풍경이다. 어렸을 때 소각하는 광경을 지켜본 에이스멀치 최현황(67) 대표는 훗날 폐비닐 처리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거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연구를 해보자’는 생각까진 닿지 못 한 채 마음 한편에 체증으로 남아있었다. 30년 넘게 고등학교 체육 교사를 하다 2013년에 그만둔 최 대표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비닐멀칭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종이멀칭’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주 전공도 아니지만 ‘죽기 전에 발자국이라도 남기고 가자’는 마음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전문가들을 만나며 자문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종이멀칭기를 시장에 내보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최 대표를 지난 1일 옥천에 있는 에이스멀치 사무실 안에서 만났다.

이에스멀치는 이전한 행복광고기획 2층에 둥지를 틀었다.

■ 천연 미네랄 생분해 기능성 멀칭

“비닐멀칭하는 기계로 종이멀칭도 똑같이 하는 거예요. 종이멀칭은 작물에 영양도 공급하고, 토양을 살리는 효과가 있어요.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보온 역할을 해주죠. 비닐멀칭은 작물을 다 수확하고 걷으면 땅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거든요. 습도 조절이 안 돼서 곰팡이균, 선충이 생긴 거죠. 그런데 종이멀칭을 한 땅을 파보면 지렁이가 나와요. 바깥 공기와 안의 공기가 순환됐다는 증거죠. 저희 멀칭기는 한쪽 면에 까맣게 배면코팅을 했는데 거기에 기본적으로 견운모, 숯, 전분 등 8가지 광물질을 첨가했어요. 토양을 정화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화학물질 안 쓰고 다 천연물질이에요.”

최 대표가 운영하는 에이스멀치는 올해 초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에서 생분해 시험성적서를 받아냈다. 종이멀칭기가 생분해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화학반응이나 제2의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인증을 받은 것이다. 또한 잡초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어 본래 멀칭의 목적 또한 달성했다. 비닐멀칭의 경우 자외선이 땅속으로 침투해 씨가 발아하지만, 에이스멀치에서 제작한 종이멀칭은 참숯과 견운모를 넣어 자외선을 차단한다. 견운모는 피부에 바르는 선크림의 원료로도 쓰인다. 각종 천연원료의 기능성을 종합해 작물 뿌리도 튼튼하게 자라서 수확한 작물의 맛도 달라진다고 한다. 그가 멀칭 사업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서 공부하는 딸과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한 달에 100만원을 벌면 70만원은 먹거리로 나간다는 거예요. 농사지을 땅은 부족하고 환경오염은 계속되니까 미국은 이런 걸 대비해서 작물을 심어서 쌀이나 과일, 야채를 수출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땅덩어리도 좁고 농촌에 고령인구는 계속 늘어나니까 먹거리 가지고 전쟁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앞으로는 농업이 사업성도 좋을뿐더러 국가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은 농업밖에 없다는 거예요. 저는 농업을 해본 적은 없으니까 작물은 심을 수 없지만, 환경 분야에서 이 멀칭사업에 뛰어들 만하겠다 싶어서 선택한 거죠.”

에이스멀치는 지난해부터 국내의 농장에서 종이멀칭 시범포를 운영해 자연분해되는 전 과정을 확인하고, 작물의 성장속도나 수확량, 토양상태를 분석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에이스멀치는 지난해부터 국내의 농장에서 종이멀칭 시범포를 운영해 자연분해되는 전 과정을 확인하고, 작물의 성장속도나 수확량, 토양상태를 분석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에이스멀치는 지난해부터 국내의 농장에서 종이멀칭 시범포를 운영해 자연분해되는 전 과정을 확인하고, 작물의 성장속도나 수확량, 토양상태를 분석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폐비닐, 종이멀칭으로 바꿔야

최 대표는 우리나라에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 양이 공식 집계인 약 32만톤을 훨씬 뛰어넘을 거라고 내다봤다. 비닐멀칭이 토양을 오염하는 과정은 이렇다. 비닐 양쪽을 흙으로 덮어놓은 상태에서 물이나 거름, 제초제를 뿌리면 시간이 지나 돌처럼 딱딱해져 비닐과 흙이 달라붙는다. 그것을 곡괭이로 일일이 전부 캐내야 하지만 농가는 넓고 인력은 부족하다. 게다가 비용 절감을 위해 얇은 비닐을 쓰면 시간이 지나 삭게 되는데 걷어내는 과정에서 찢어지니 제대로 수거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수십 년간 토양에 남은 폐비닐은 개울로 흘러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물속에 가라앉아 남조류가 생기면 기온이 오를 때 수면 위로 녹조가 나타난다. 최 대표는 폐비닐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으려면 정부나 환경부에서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 환경을 지키자’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를 실천하려면 종이멀칭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태어나 자양초, 계룡중, 대전상고를 나온 최 대표는 용인대학교에서 유도를 전공했다. 잠깐 유도선수를 하다 대성고등학교에서 30년간 체육 교사로 재직했다. 올해로 27년째 기러기 아빠인 그는 미국에서 한의원을 하는 첫째 딸, 미국 UC샌디에이고에서 화학과를 나온 둘째 딸, UCLA 우주항공엔지니어과를 전공한 막내아들이 있다. 둘째 딸은 특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최 대표가 하는 종이멀칭 사업과 관련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전공이 아니다 보니 처음엔 그냥 시작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10년 동안 미치면 할 수 있어요. 설 미치면 못 봐요. 학교 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죠. 기존 종이멀칭 특허 낸 사람들의 자료를 다 봤어요. 3년 정도 이론 공부를 했고요. 대학교 찾아가서 물어보고, 농촌을 한 7년 정도 다니면서 농민들 얘기도 듣고 우리 나름대로 실험하고 별짓 다 해봤어요.”

대구, 포천, 청양 등지에서도 종이멀칭 시범포 사업으로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대구, 포천, 청양 등지에서도 종이멀칭 시범포 사업으로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대구, 포천, 청양 등지에서도 종이멀칭 시범포 사업으로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br>
대구, 포천, 청양 등지에서도 종이멀칭 시범포 사업으로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 종이 무게도 줄이고, 자연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제품

기존 종이멀칭지는 기술력 부족으로 비를 맞으면 종이가 찢어지는 단점이 있다. 비가 안 오더라도 젖어있는 상태에서 햇빛을 받으면 건조되는 과정에서 종이가 좌우로 팽창해 찢어지곤 했다. 자구책으로 종이 그램(g) 수를 늘려 두껍게 만들기도 했지만 농가 현장에서 사용하긴 불편했다. 에이스멀치는 종이 무게도 줄이고, 비를 맞았을 때 찢어지지 않으면서 100% 자연 분해가 되는 종이멀칭을 개발했다. 에이스멀치는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2018년 ‘파피루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는 옥천에 있는 공장과 연구전담개발부서를 포함해 직원이 총 10명 있다.

“분해된다는 거랑 썩는 건 개념이 달라요. 썩는 건 시간이 지나면 썩는 거고요. 분해가 되려면 멀칭기가 가진 성분과 함께 반드시 물 습기와 땅이 만나야 해요. 이 세 가지가 만났을 때 분해가 시작되는 거죠.”

비닐멀칭에서 종이멀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장 가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최 대표에 따르면 종이멀칭은 친환경 제품으로 취급돼 우리나라에서 50% 보조금을 받는다. 농민들이 종이멀칭을 100개 사면 100개 값을 농민들이 자부담하고, 나중에 기관으로부터 환급받는 방식이다. 최 대표는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제조업자에게 50% 보조해주면 50% 낮춘 가격으로 판매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농민들의 부담을 덜 수 있지만 농민들은 당장 비용이 높으니 자연스레 비닐멀칭에 눈을 돌린다. 그는 비닐멀칭을 걷어내는 데 쓰이는 인건비나 토양 오염에 따른 환경 비용을 따져보면 종이멀칭이 남는 장사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이 나이에 돈 욕심을 내면 얼마나 내겠어요. 종이멀칭 사업은 지금 당장은 판매가 주가 되면 안 되고요. 가치 중심으로 해서 농업 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의식 변화도 같이 끌고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멀칭사업은 성공하기 힘들어요. 그동안 잘못 전달돼서 피해를 본 사람도 많고 불신의 골이 깊거든요. 이번에 제품이 나오면 옥천에서 먼저 써보시면서 ‘옛날 거랑 다르네’라고 체감하시면 사업 탄력을 받겠죠. 가격대는 대량 생산만 되면 맞출 수 있어요. 종이멀칭은 미국도 없고, 중국은 8년 동안 종이멀칭 연구개발하다 실패했어요. 제가 중국에 가서 시범포를 운영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왔거든요. 아직은 국내가 자리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시기상조고요. 우리나라에서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주도 애월읍 고성리농장에서 종이멀칭 시범사업을 했다.(사진제공: 에이스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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