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언론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는 황규정씨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중, ‘언론의 고장 옥천, 자랑스러워'

 당차고 막힘이 없었다. 

 다소 굵은 허스키 한 목소리로 요목 조목 물어보는 내용도 짜임새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언론인의 꿈을 가졌던 그 친구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궁금한 게 있다’며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삼양초 재학시절에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옥천여중, 옥천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1년 늦었지만, 충남대 언론정보학과에 진학 했고, 지금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익광고에 매료되어 광고인이 되고 싶기도 하다. 말과 글, 그리고 광고로 꿈을 수시로 변했지만, 언론을 매개로 한 사회의 변혁, 부조리와 부패, 불의에 대한 분노는 늘 가슴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황규정(22, 옥천읍 삼양리)씨, 그는 어릴 때부터 기질이 보였다. 그의 이름을 옥천신문에 검색하면 그의 행보가 보인다. 지역 아이들과 같이 성장해 오며 기록한 30년 옥천신문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선이 굵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어릴 적 웅변을 통해 단련된 것이다. 삼양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웅변대회에서 상을 연거푸 받았고 과학탐구대회, 지용 백일장에도 상을 받으며 재능을 보였다. 삼양초 잴학시절에는 어린이 회장을 맡아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성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으며, 경로당을 찾아 작은 음악회를 열어 주민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재능 뽐내

 어렸을 떄 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실천하려는 태도, 더불어 함께 하려는 리더쉽 등이 자연스레 체화됐다. 이 외에도 충북 외국어 스피치 대회에서도, 역사-통일퀴즈 대회에서도, 옥천 도전 골든벨에서도 수상을 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재학시절, 규정씨의 모습을 보여주는 두 개의 기사가 맨 상단위에 링크되어 있다. 

 하나는 ‘동아리탐방’으로 ‘옥천고등학교 학생기자단’을 취재한 내용인데, 규정씨는 기사의 맨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학생 기자단이 발간한 신문이라면 당연히 학생을 대변해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위 권력에게서 학생을 지켜내고 대변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봐요. 창간호는 2년 만에 열린 마성제를 다루느라 다양한 이야기를 못 실었는데 앞으로는 날카로운 기사도 늘리고 시사와 오락 등도 다룰 생각이에요. 그리고 방송부와 협력해서 뉴스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랬다. 그 떄는 정말 의기충천한 열정적인 언론인이 되고 싶었다. 

 마성제 축제 참가 오디션때 당시 음악선생님이 혼자 심사를 보면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참가한 팀들을 떨어트리고 붙이는 것들이 학생들한테 불합리한다는 제보를 받았다. 본인이 취재를 했을 떄 이상했고 결국 신문에 글로 녹여냈다. 선생님이 화를 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사로 인해 학생회 회의가 촉발됐고, 결국에는 선생님 의견 50%, 학생 의견 50%로 심사를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기사의 힘이었다. 

옥천고 학생기자단 동아리 취재 당시 찍은 사진.
옥천고 학생기자단 동아리 취재 당시 찍은 사진.

 정의로운 까칠함 바탕엔 따스한 마음도

 이렇게 내재된 '정의로운 까칠함'은 대학교 가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학과 학생회가 엠티를 갔을 때 준비한 음식을 미처 챙기지 못하면서 학생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결국 낭비한 사실에 대해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제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됐고 학생회 총회가 열리는 날 공개 질의를 해서 선배들한테 미움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것을 보고 대나무숲에 올려 공론화를 했어요. 그것 떄문에 또 질타를 받고 욕을 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잘못한 거는 바로 잡아야 하잖아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의 기사는 ‘옥천고 베리타스 교육봉사단의 재능기부’ 기사로 영실애육원 후배들에게 1년간 매주 ‘가르치는’ 봉사를 한 것이 2016년 신문에 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교육봉사단의 기장이었던 황규정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어려운 친구를 돕자는 목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잘 할 수 있는 걸로 재능기부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우린 학생이니까 학교에서 배운 걸 나누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날카로운 비판의 기저에는 이렇게 따스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그가 16일 저녁에 옥천신문사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서 배운 건강한 지역 언론에 대해 요목조목 묻고 싶었던 모양이다. 옥천신문이 지역 주민들에게서 사랑받게 된 이유에 대해 깊이 있게 물어보는 게 벌써 예비 언론인이다. 

영실애육원 봉사 당시 베리타스 교육봉사동아리 단체사진.
영실애육원 봉사 당시 베리타스 교육봉사동아리 단체사진.

 언론의 고장이라 불리는 옥천, 자랑스러워

 “학교에서 교수님들이 옥천신문에 대해 풀뿌리 언론의 모범사례라고 이야기를 참 많이 하세요. 제가 옥천 출신이라고 하니까 더 이야기 하시는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우리 학과만 해도 군 단위 출신이 저 포함해서 두 명 밖에 되지 않아요. 은근히 군단위에서 왔다면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옥천은 교수님들이 지역언론의 모범사례, 언론의 메카라고 자주 이야기를 하시니 그런 이야기는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해요.”

 “옥천에서 지냈던 것이 자랑스러워요. 저는 옥천에서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도시에 나가도 전혀 꿀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도시로 나가고 싶은 청소년들의 로망을 어떻게 지역 안으로 끌어들이냐가 중요한 과제 같아요."

 옛날 한양세차장, 황정하카오토클리닉, 옥천군 테니스연합회장을 역임한 황정하씨와 글마루독서실을 운영하는 김명자씨의 딸이기도 한 황규정씨는 좋은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사회문제를 정말 짧고 간결한 카피와 사진, 그리고 디자인으로 잘 만든 공익 광고 하나가 많은 사회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어 공익광고에 푹 빠져 있어요. 2학기에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공익광고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청암 송건호 선생의 고향 옥천, 주민들이 만든 옥천신문이 있는 옥천에서 그 기운을 이어받아 황규정씨가 좋은 언론인이 될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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