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가장 오래된 사진관, 한일사진관의 조복현 이순애씨를 만나다
일흔 넘은 나이에도 365일 새벽 4시에 문을 여는 사진관

 북적거리는 오일장 한 가운데, 왁자지껄 한 장터 소음 속에 시간이 멈춘 듯한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공간이 고즈넉하게 존재한다. 

 마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군산 사진관 세트를 옮겨놓은 것 같다. 

 오후 2시쯤 오래간만에 만지작거린 니콘-FM2 필름카메라의 필름을 빼고 현상을 맡기러 갔을 때 늙은 사진사는 긴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서면서 종이 딸랑거리자 실눈을 살짝 떴지만, ‘다시 오겠다’는 손님의 말에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점심 먹고 오후의 반짝이는 늦잠 시간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 마냥 꿀잠이 든 것 같았다. 옥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관, 유일하게 필름 카메라의 필름을 받아 현상해주는 곳. 40년 된 간판을 고스란히 고수하는 곳,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오래된 사진관을 지키는 조복현(70)씨는 옥천읍내 상가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디지컬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일상이 됐고 필름카메라가 독특한 ‘덕후’들의 취미로 변화되었을 때 많은 사진관들이 필름 사진 인화 현상을 멈췄다. 찬란했던 사진관의 시대들이 저물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관들은 발빠르게 변화했다. 스마트폰 즉석 사진 인화 등으로 종목을 바꾸었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졸업앨범 시장을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아니면 문을 닫고 업종 변경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가의 기계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여권, 증명사진도 무인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에 사진관은 이미 사양 산업에 들어선 지 오래였다. 

 이미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났고 일주일에 이삼일, 하루에 많아봐야 서너번 찾는 사진관을 고집할 이유는 딱히 없어보였다. 더구나 그는 이미 98년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과 빚을 얻어 사진관 건물을 매입했다. 시내 한 복판 목 좋은 곳, 임대라도 놓을라치면 사실 본인이 버는 몫보다 임대수익이 더 많을 성 싶었다. 

 요즘 세태라면 이미 깔금하게 리모델링하여 삐까번쩍한 상가로 수십번이고 바뀌어졌을 그 곳이 시공간이 멈춰버린, 그래서 옥천읍내 상가의 ‘숨표’같은 곳이 됐다. 

 눈만 뜨면 개폐업이 일상화되면서 익숙하게 눈 둘 곳이 마땅 찮았는데 옥천읍에 도착했다는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한일 사진관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이다. 반백년을 지켜내며 여전히 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78년에 문을 열었다. 옥천읍 교동리에서 자란 조복현씨는 원래 오대리가 고향이다. 죽향초와 옥천중, 옥천실고를 나왔다. 실고 재학 중에 작은 아버지가 금강당 옆에서 한 제일사진관에 보조로 일을 돕곤 했다. 그 때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학교 졸업하고 다른 일을 시작했지만, 배운 기술이 기술인 지라 결국 사진관으로 다시 정착했다. 옥천읍 장야리에서 태어나 삼양초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옥천여중을 다니다 중퇴한 이순애씨를 반려자로 만난 것도 사실 사진 덕분이었다. 조복현씨는 작은아버지 심부름으로 옥천읍 장야리의 아가씨들 단체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이순애씨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함께 하고 싶어 몇번 이야기를 걸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평생 같이 살게 된 것. 사실 결혼을 일찌감치 하고 동두천에서 골재상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옥천의 사진관으로 다시 왔다. 언제까지 작은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독립했다. 이름은 한일사진관이었다. 현재 한일 사진관 옆 정육점 자리에서 시작했다가 바로 지금의 자리로 전세 300만원을 주고 옮겼다. 지금 자리에서 거의 40여 년을 지내 온 것이다. 

 아내에게 사진 기술을 가르쳤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두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진관을 지키면서 오는 사람을 받아야 했고 한명은 출장 사진을 찍으러 다녀야 했다. 아내 이순애씨는 감각적으로 습득 기술이 빨랐다. 출장 사진을 찍으려면 이동 수단도 있어야 했는데 오토바이도 하나 사서 타는 것을 배웠다. 오토바이 면허증을 따고 출장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그는 그렇게 옥천 최초의 여류 사진사가 되었다. 카메라 하나 들쳐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긴 머리 휘날리며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여류 사진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과거 이순애씨가 그러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 소풍, 마을 단위 여행, 학예회, 운동회, 피아노 연주회, 유치원 졸업식, 국제상사, PP산업 등 기업의 단체 사진 등 옥천 구석구석 안 다녀 본 곳이 없었다. 그의 셔터 누르는 손에 옥천이 한장씩 한장씩 기록됐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순애씨가 조복현씨보다 사진을 잘 찍는 걸로 알기도 했다. 카메라를 들고 옥천을 누비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때는 일하는 재미도 돈버는 재미도 있었다. 전신전화국에 한달에 한번 가서 하룻밤을 꼬박 새면서 전화요금을 쓴 것을 카메라로 찍어서 요금 산정하는 일도 했다. 지금은 기계로 다 바뀌었지만, 그 때만해도 사진으로 찍어 증빙 자료를 첨부해 요금을 매겼다. 

 조복현씨는 나고 자란 교동리 어르신들 사진을 다 찍기도 했고 그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사진 찍어준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아이를 데리고 가족 사진을 다시 찍으러 왔다. 한일 사진관은 옥천 사람들의 역사였고 생애였다. 백일 사진, 돌 사진,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졸업 사진, 가족 사진, 그리고 영정 사진까지 개개인의 생애사를 조용하게 기록했다. 

365일 문열고 새벽 4시에 문 여는 사진관

 98년 6월 20년 동안 세들어 사던 건물을 매입했을 떄 뭉클하고 기뻤다. 평생 하고 싶었다 그에게 물었다. 은퇴할 시점에도 계속 사진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또 임대수익이 더 나을 텐데 사진관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임대를 주면 수익은 나지. 그런데 그럼 나는 갈 때가 어딨어. 내가 주인이면서 쫓겨나는 거잖아요. 나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지금이야 정말 공치는 날도 있고 가뭄에 콩나듯 사람이 오지만, 괜찮아. 돈 악착같이 벌려고 하는 게 아니고 아직까지 일을 하는게 재미나고  내가 나이 들었지만, 일은 아직 할만 하거든”

 2008년 아내는 함께 하던 사진관을 그만두고 잔치방을 차렸다. 사진관 2층에 하던 것을 지금은 별도로 독립해 나가 하고 있다. 이순애 회장은 사진으로 옥천을 누비고 다녔던 것처럼 현재는 옥천읍 새마을부녀회 회장으로 각종 봉사 현장에 빠지지 않고 다닌다. 새마을 부녀회장 경력만, 죽향리 3년, 문정 3리 3년 등 6년이 넘는다. 

 아내 이순애(68)씨가 여전히 왕성한 지역 사회 활동을 하는 사이 그는 오롯이 사진관의 홀로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쉬는 날이 없다. 365일 문을 열어 놓는다. 새벽 4시면 문을 연다. 아침은 6시30분에 먹고 점심은 11시에 먹는다. 그리고 오후 4시에 저녁 식사 겸 친구들과 반주를 한다. 저녁 6시면 잠자리에 든다. 특이한 생활 패턴이지만, 그는 이 패턴이 벌써 몸에 베어 익숙하다. 시계추처럼 반복한다.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사진관 문을 쉬는 날 없이 또 새벽같이 열고 하는 일은 얼마나 숭고한가. 물론 나가는 세 없이 생활할 비용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일을 하는 노년이다. 필름 카메라는 일찌감치 처분해 없지만, 캐논 350D를 설치하고 컬러 잉크젯 프린터로 인화를 해준다. 필름 사진 인화 현상은 대전의 업체가 이틀에 한번 꼴로 와서 가져가서 맡긴다. 다소 오래 걸리긴 하지만, 옥천에 유일하게 필름 사진을 맡길 수 있는 곳이다. 

 한일사진관은 부부의 추억이 참 많은 곳이다. 부부동반으로 친구들이 많이 놀러와 며칠밤을 자고 가기도 했고 친구들이 심심하면 놀러오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한번은 여덟부부가 놀러와서 좁은 방에 쪽잠을 잘 정도로 추억이 많은 공간이다. 그래서 쉽사리 내놓을 수 없다. 오래된 추억과 그리고 살아있는 일상을 먹고 생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낡은 책상위에 놓여있는 증명사진들 역시 다 옥천 사람들 사진이다. 지금은 한일사진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와서 주로 사진을 찍는다. 할아버지가 손주 손을 잡고 와서 증명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옥천의 명물, 옥천읍내 터줏대감 한일 사진관은 박제된 박물관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삶의 현장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공간이 닫힌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365일 문을 열고 새벽 4시에 문을 연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굳이 군산까지 가서 8월의 크리스마스 사진관 세트를 볼 필요가 없다. 옥천 바로 이 곳에 기념비같은 사진관이 있다. 한번 쯤 들러서 증명사진을 찍는 것도, 조복현씨와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그 오래된 간판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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