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용 (안남 화인산림욕장 대표)

필자는 2010년 11월 23릴 후쿠오카현(福岡県) 오오카와(大川) 가구단지에 있는 마루센공업(丸仙工業) 다나카(田中) 회장과 문짝용 알미늄 손잡이와 M.D.F. UV 판넬 수출상담을 성사 시켰다.  

상담후 후쿠오카 공항발 18시10분 아시아나항공 OZ-133편을 탑승하기 위해 다나카 회장차로 시간에 맞추어 오후 4시경에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국제공항들은 인천공항 처럼 시간에 구애됨 없이 항시 탑승수속(Any time boarding check in)을 하지 않으며, 싱가포르나 다른 나라 국제공항 처럼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하여 많은 짐을 갖고 무료(無聊)하게 시간을 보내는 승객 편의를 위해 특별히 한쪽 구석에 마련해 둔 사전탑승수속대(Early bird boarding check in counter)가 없다.

세계 모든 국제공항은 출발 2시간전에 탑승수속이 관례 이므로 필자 역시 항시 2시간 전에 도착 하도록 한다.

해외출장이 잦은 필자는 세계 어느나라 공항, 어느 항공사를 이용하든 각 항공사간 코드세어(Code Share=항공사간 편명, 좌석제휴) 관계로 항시 VIP 카운터에서 탑승 수속을 받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잡지와 신문을 산 후 5시경에 무심코 VIP 카운터에 갔더니 웬일인지 아무도 없고, 일반석(Economy) 카운터 역시 텅비어 있어 깜짝 놀랐다.

짐을 올려놓자 일본인 직원은 “손님! 정말로 한국에 들어 가시겠습니까?”

필자가 뚱단지 같은 이 말이 무슨 얘기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자 “손님! 이 화면을 보십시요. 지금 한국은 전쟁상태로 돌입해 있는 것 같습니다...그래도 가시겠습니까?”

그가 보여주는 커다란 모니터에는 연평도가 불덩이에 휩싸인채 검붉은 포연으로 화면 가득히 뒤덮여 있었고, NHK등 언론매체가 긴급으로 벌집을 쑤신듯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짐을 내리면서 일반석은 물론 단체 학생들도 모두 짐을 회수하여 탑승을 단념 했다고 알려주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처하니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되어 버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 보았더니 전쟁이 났다고 한국인들은 우왕좌왕하며 패닉(panic=공황)상태로 어쩔줄 몰라했고, 여학생들은 울고불고 야단들 이었다. 

전쟁중인 한국에는 갈 수 없어 호텔에 당분간 머물테니 그리로 송금을 해달라는 둥 가족들과 통화 내용이 모두가 흥분상태여서 커다랗게 들려 왔다.

필자가 다시 카운터에 짐을 맡기며 “133편은 정시에 뜹니까?”라고 물으니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시 보다 다소 늦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 비행 스케줄 관계로 빈 비행기로라도 출발 합니다.” “그럼, 잘 됐습니다. 제가 차터(charter=전세)하겠습니다. 짐을 실어 주십시요.”

수속을 마친후 울고불고 야단범석인 학생들에게로 갔다.

수도권에 있는 K대학으로 남녀학생 28명에 교수 3명으로 수학여행을 왔는지 연수를 왔는지 경황중에 물어 볼 수 없었지만 정말 가관이었다.

필자가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나라가 백척간두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확실한 상황을 몰라 여러분들을 사지로 가자고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라가 없으면 모든 것이 허사이니 이런 위기는 피끓는 청년들인 학생들의 책무이자 조국에 대한 예의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전세기를 마련해 두었으니 같이 가실 분들은 선택은 자유이니 자유롭게 탑승 하십시요.”

원래 눌변가인 필자가 간단명료하면서도 톤(tone=어조)을 높여 말한 것이 주효 했는지 학생들은 하나둘 주섬주섬 짐을 들어 탑승카운터에 가서 묵묵히  탑승수속을 했다.

담당직원은 물론 지사장까지 나와 탑승구에서 필자에게 W&B(Weight balance=항공기 수평을 잡기 위한 무게배분)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갔다.

탑승해 보니 필자와 학생들 일행과 극히 일부의 일반 승객들만이 쥐죽은 듯이 앉아 있어 마치 전장(戰場)으로 떠나는 전투병을 태운 수송기 안처럼 기내는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적막감이 돌고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다음날 언론 매체에 의하면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평화로운 연평도에 느닷없이 무차별 포격을 가해 왔다고 했다.

용감한 우리 해병대원이 K-9 자주포로 분전(奮戰)하다가 2명이 아깝게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당했으며, 애꿎은 민간인도 2명 사망에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연평포격 사건에서 가장 돋보이고 두각을 나타낸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K-9 순수 국산 자주포 였다.

1997년 처음 생산하여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결과 그 성능이 동급의 세계 최고라는 평을 받아 2001년 터키가 한꺼번에 10억불의 대박을 터트렸다. 연평 대응포격으로 실전에서 그 위력이 입증되자 2014년 12월 부터 오는 2022년까지 폴란드와 3억 1천만 달러, 2017년 3월에는 핀란드와 1억 4천500만 유로(약 1천900억원), 당년 4월에도 인도에 K-9 자주포 100문을 수출하는 효자 상품으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스페인과 호주에도 대규모 K-9 자주포 수출상담이 진행중이라고 하니 유비무환이 최고의 안보임을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