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이엉엮기 한창
안남어머니학교 어르신들이 직접 팥죽 끓여 온기 나눠
매년 추수하고 남은 볏짚으로 새 지붕 만들어 전통 이어가

가을이 점점 무르익고 겨울채비가 한창인 11월,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결에 누렇게 익은 벼가 흔들거리며 춤을 춘다. 논밭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스락하는 소리와 지푸라기 향내가 조화를 이루며 편안한 기운을 전한다. 12일 오전 안남 배바우작은도서관 옆 정자에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도서관 옆 초가지붕 정자의 낡은 이엉을 걷어내고 새로 얹을 이엉엮기가 한창이다.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 배바우도서관은 이맘때가 되면 1년 된 초가지붕을 내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그래야 겨울에 보온도 되고 비도 안 새면서 정자를 아늑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내리쬐는 햇빛을 가려주며 마실공간 역할을 한 옛 지붕은 겨울이 다가오면서 회색빛으로 바랬다. 묵은 볏짚을 싹 걷어내면 지붕 안에 살림을 차린 굼벵이들이 튀어나온다. 짚이나 식물 뿌리를 먹고 자라는 굼벵이는 술에 담가 먹거나 기름에 튀겨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농촌에 초가집이 많았던 시절 마을 사람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손으로 이엉을 엮어줬다. 옛 이야기처럼 들리는 초가지붕 만드는 풍습은 기계가 대신해주면서 오늘날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이엉엮기를 기억하는 안남 어르신들이 우리 고유의 전통을 되살리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배바우도서관에서 여는 하나의 마을 잔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오래간만이지 뭘.”

마을 어르신 조정승(83, 안남면 도농리), 유동한(83, 안남면 도농리), 김수길(80, 안남면 도농리)씨가 볏짚을 나눠 엮으며 흥을 내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안남면 연주리 팀이 했지만 올해는 도농리 어르신들이 이른 아침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보기에는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고. 어르신들은 마지막으로 이엉엮기를 한 게 30년도 넘었다고 하지만, 어렸을 때 어른들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던 걸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하는 유일한 초가지붕 이엉엮기 행사잖아요. 사람 손으로 하는 거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에요. 계속 전수해주면서 마을 주민들이 배워나갔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30일 배바우도서관은 안남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손 모내기해서 키운 벼를 수확하기도 했다. 이엉엮기 활동을 위해 12일 주민들을 불러온 김대영(55, 안남면 연주리) 관장은 추수하고 남은 볏짚으로 정자 지붕을 교체한다고 말했다. 농촌의 젊은 사람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안남의 특별한 행사로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도서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유주봉(83), 이근생(58)씨 또한 이날 이엉엮기와 지붕 위에 올라가는 용마름엮기를 하며 기술을 전수했다. 

■ “팥죽 다 끓여 놨어. 어여 먹어. 맛있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듯 배가 든든해야 일이 더 즐거운 법이다. 도서관 소파에 앉아 이웃들과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펴고 있던 강금례(86, 안남면 지수리), 오정순(87, 안남면 지수리) 어르신이 팥죽 한 그릇 먹고 가라며 넉넉한 인심을 보여준다. 안남어머니학교 어르신들이 주축으로 팥죽을 직접 쒔다.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1년에 두세 번 마을큰잔치 때나 쓰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였다. 양이 푸짐한 게 옆 동네도 나눠줄 만큼 풍족하다.

직접 으깬 팥을 팔팔 끓이니 고소한 냄새가 도서관 안을 휘감는다. 큼직한 국그릇에 팥죽이 가득 메워지는 모습을 보니 먹기도 전에 배부르다. 옆 동네에도 나눠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대접하며 마을 사람들의 정은 한없이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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