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명인 허형만의 제자 주대봉 대표
직접 협약해 로스팅한 고급원두로 만드는 핸드드립 한 잔

지금은 흔한 믹스커피 한 봉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카페라는 개념조차 정립되기 이전인 82년,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가루 커피가 종로와 명동 인근 다방을 책임졌다. 고혹한 향이 모두의 코끝을 간지럽히며 유혹했지만. 아무 맛도 없이 쓰기만 했던 커피는 참 낯선 맛이었다. 때문에 이 무렵 다방에선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설탕과 프림을 어떻게 넣을 것인지 물어보는 게 당연시됐다.

바야흐로 커피 문화의 태동기. 인사동 민정당사 맞은편에 있어 이름도 민정다방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커피가 뿜어내는 향에 매료되던 이가 있다. 뜨거운 물의 김이 커피의 매혹적인 향과 더불어 피어오를 때마다 자신만의 커피 전문점이란 꿈은 진해졌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올해 3월에야 그 바람을 옥천에서 이뤘다. 커피와 함께 귀촌한 커피봉 주대봉(59) 대표의 이야기이다.

커피봉의 주대봉 대표

■ 이탈리아에서 만난 사약  

나만의 커피 전문점이란 꿈을 잠시 미루었던 20대. ㈜영풍에 입사하여 젊은 날을 치열하게 보냈다. 특수펌프 영업을 했는데, 국내 200대 기업 중 자신의 제품이 안 들어간 곳이 없다고. 이후 92년, 회사 선배가 차린 회사의 창업 멤버로 발탁돼 오퍼상의 업무를 도맡았다. 직무의 특성상 잦은 출장이 커피에 대한 계몽에 도움이 됐다. 마침 주거래처가 최초의 카페가 태어난 이탈리아였고 그곳에서 진짜 커피를 만나게 된 것.

주대봉 대표가 아무리 커피에 관심이 많았다 한들, 커피 문화가 발전하기 이전 한국의 테두리 안. “밥 먹고 나서 후식으로 나오는데 이만한 잔에 새까만 게 나오는 거예요. 사약인가 했죠” 이탈리아에서 처음 접해본 에스프레소는 두려운 존재였다.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터키의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상황. 잔에 입을 겨우 댔지만, 에스프레소를 삼키는 데 실패했다. 평소 커피를 사랑했던 주대봉 씨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을 터. 진짜 커피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만남부터였다. 여느 날처럼 잔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거래처 직원이 놀리는 게 얄미워서 억지로 삼킨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너무 쓰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소한 그 단맛, 땅콩 맛, 초콜릿 맛까지 입에 확 퍼지는 거예요. 무슨 이런 음료가 있나 싶었죠” 

강렬했던 그 기억을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카페 문화가 없을 때고 당연히 에스프레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시내 호텔에 가면 외국인들을 위해 준비된 에스프레소가 있었지만, 어설프게 흉내를 낸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잦은 출장에 의존하여 커피를 즐기던 이 시기. 주대봉 대표의 맛있는 커피에 대한 갈증은 제대로 된 커피를 스스로 배워야겠다는 열정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핸드립 직전에 원두를 갈아 향의 손실을 최소화 한다.
정성스럽게 추출하는 과정을 보는 맛이 있다.

■ 커피 문화의 성장만큼 질적인 측면도 따라와야

한 번 빠지면 끝까지 하고 최고가 되어야 성이 풀린다. ㈜영풍에서도 신인왕을 타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커피에 빠졌으니, 최고가 되고 싶었다. 내로라하는 바리스타들을 다 만나러 다니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카페면 들어가서 커피 맛을 봤다. 오죽하면 위가 아플 정도로 커피를 마시며 공부에 몰두했으니 그 진심이 가늠된다. 그러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바리스타에게 커피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배움을 받았다. 그가 바로 국내 커피 명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허형만 바리스타이다. ‘마시고 난 뒤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 커피. 마실 때 목 넘김이 편하고 차갑게 식어도 맛이 좋은 커피. 그것이 바로 맛있는 커피’라는 주대봉 대표의 철학은 오랜 기간의 배움과 좋은 스승의 영향으로 정립됐다.

주대봉 대표는 한국의 카페 문화가 급격하게 발달하여 어디서든 커피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는 만족했으나, 질적인 부분까진 따라오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대봉 대표는 “유럽의 바리스타는 바 안에 있어서 바리스타예요. 이 친구들은 만능입니다. 커피와 맥주, 와인, 간단한 브런치까지 바 안에서 다 합니다”라며 “대신 바리스타는 절대 로스팅을 하진 않습니다. 반대로 로스팅 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추출해서 팔지도 않죠”라 말했다.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손님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급 원두와 제대로 된 로스팅, 추출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를 위해 로스팅과 추출의 확실한 분업화가 필요하다고. 

주 대표 본인도 로스팅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추출을 공부한 만큼 로스팅도 열심히 공부해왔다. 어느 날 본인이 로스팅 해온 원두를 자신의 작품이라 밝히지 않고 친구들에게 대접한 적이 있다. 당연히 최고라는 소리를 듣겠거니 했지만, 들려오는 말은 “괜찮네” 혹은 “맛있네” 정도에 머물렀다. 노력이 결실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분함도 잠시, 로스팅과 추출에 다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는 추출에 심혈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 맛있는 커피?

손님에게 맛있는 커피를 내어드리기 이전, 왜 커피 맛이 나빠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추출 실력을 가진 바리스타라도 좋은 원두가 없으면 맛있는 커피를 대접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로스팅 된 원두를 사용하는 것. 주대봉 대표는 자신과 협약된 곳에서 원두를 로스팅 해 사용하고 있다. 주대봉 대표는 “어떤 맛을 살리고, 어떤 맛을 조금 누를까. 이걸 조율해서 일괄적으로 로스팅 하는 거죠”라 말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로스팅을 시도할 때마다 컨디션을 기재해놓고, 기준에 적합한 로스팅이 완성되면 해당 컨디션으로 일괄적으로 로스팅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먹어보고 기준에 적합한 것을 손님에게 권해야지, 그냥 좋다는 원두를 받아서 쓰는 것은 절대 성에 차지 않는다고. 이렇게 주대봉 씨의 철저한 기준 아래 8가지가 블렌딩되어 만들어진 커피가 ‘봉드립’이다.

커피 원두의 보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커피 원두는 굉장히 많은 유분기를 포함하고 있다. 아라비카의 경우 16 ~ 18%, 우리가 흔히 먹는 맥심도 9 ~ 12%가 유분이라고. 이런 원두를 상온에서 보관하면 산패되고 만다. 주대봉 대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냉장보관이 필요하다 설명했다.

“커피 이전에 물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커피도 물로 만들어진 음료이기에 물이 중요한 게 당연한 일. 주대봉 대표는 커피는 물맛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대봉 대표는 “온천 같은 곳 주위에 왜 커피 전문점이 없는지 아세요?”라며 “커피랑 온천수가 안 맞아요. 미네랄이 많은 물은 커피와 안 맞습니다”라 말했다. 물에 포함된 칼슘과 마그네슘의 함량 합쳐서 10 근저리에 머물러야 커피와 잘 맞는 물이고, 이를 넘어가면 커피와는 안 맞는 물이라는 것. 커피와 연관된 어느 요소 하나 가벼이 여기지 않는 학구열을 보며, 주 대표의 커피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 마셔보니 이렇더라

“오셨으니 한 잔 드셔보셔야지”라는 말과 함께 주대봉 대표는 바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쥔 원두는 예가체프. 에티오피아 남부 고급 커피 생산지인 예가체프에서 생산되는 커피로서 가장 세련된 맛을 지녔다 해 ‘커피의 귀부인’이라 불린다.

핸드드립 이전, 가장 먼저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간다. 미리 갈아두지 않는 이유는 향이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커피가 잔에 담긴 것도 아닌데, 갈면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에 먼저 압도된다. 커피를 잘 알진 못하지만, 이때 콧속으로 침투하는 원두의 향기는 괜스레 커피를 기대하게 만든다.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장착시킨 뒤, 분쇄된 원두를 담으면 본격적으로 핸드드립이 시작된다. 온도계로 적절한 물 온도가 확인되면, 드립포트를 들고 원두에 물을 살짝 부어 ‘불리기’라 부르는 과정을 시작한다. 주대봉 대표는 “밥을 다 한 뒤에 뜸 들인다고 하지, 하기 전에 뜸 들인다고 안 하잖아요?”라며 흔히들 ‘뜸 들이기’라고 말하지만 ‘불리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이때 신선한 원두라면 원두가 머핀처럼 부풀어 오르며 가스를 배출하는데 이것을 ‘커피 빵’이라 부른다. 원두 가운데에서부터 물줄기를 최대한 얇게 조절하며 나선형으로 돌려 부어 나간다.

원두가 적절히 불었으면 추출을 시작한다. 이는 이전 과정에서 물 붓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심스레, 물줄기가 종이필터에 닿아 맹물이 흘러가는 일이 없도록 집중하여 추출한다. 이후 추출된 커피에 온수를 부어 농도를 맞추어 주대봉 대표의 핸드드립 커피는 완성됐다.

예가체프는 온도가 너무 뜨겁지 않아 마시기 딱 좋게 나왔다. 생각했던 커피와 다르게 거북한 쓴맛이 전혀 없다. 목 넘김이 좋아 홀짝 넘기다 보면, 금방 잔이 바닥을 비우고 만다. 미식가가 아니라 꽃향기와 달콤한 신맛이 퍼지는 것까진 느끼지 못했으나, 음료를 넘기고 난 뒤에 입에 남는 잔향이 좋다. 단맛이 입에 돌아 기분을 좋게 했다.

주대봉 대표는 “주변에 좋은 카페들이 많이 생겨, 이 근처가 카페거리처럼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페가 생겨 발생할 경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나 외부에서 찾아올 명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것.

경쟁을 걱정하는 닫힌 마음이 아니라, 같은 상권의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가 되어 발전을 도모하길 바란다고. 가게 하나가 아닌, 거리가 유명해져야 대전, 청주 같은 외지에서 손님이 찾아오고 돈이 유입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오랜 시간 커피를 갈고닦은 주대봉 대표는 구읍에 커피봉으로 자리했다. 한 잔에 담긴 커피는 그 길었던 노력을 방증하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우선시한다면, 주 대표의 진실 된 핸드드립을 경험해보는 것이 어떨까?


옥천읍 향수길 77
☎ 043)731-7656 / 010-6223-7656

저작권자 © 옥천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