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토박이 청년 전윤, 올댓뮤직으로 청년문화예술 부흥을 알리다
40-50명의 프로와 아마추어가 혼재된 크루, 제천의 문화지형을 바꾸다
지난해 말 결성, 전윤음악학원 원장 전윤씨가 대표로 이끌어

청년들이 농촌에 살기는 쉽지 않다. 가업을 잇거나 취업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실 도시로 내몰린다.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대학을 도시로 가다보면 다시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도시는 화려하고 찬란하기 때문이다. 볼 것도, 먹을 것도, 놀 거리도 훨씬 풍성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다는 걸 기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마음을 일찌감치 접어둔다. 돌아오는 게 특이한 것이고 남아있는게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문화 예술하는 친구들은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고 조금 더 실력있는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자양분을 얻기 때문에 문화예술분야의 볼모지라 할 수 있는 시골 농촌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가 붙었지만, 인구 13만의 조그만 소도시 제천은 전윤씨에게 여전히 시골이었다. 시골이었지만, 유년기 시절을 관통한 추억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고향이기도 했다. 애틋함과 정겨움, 그리고 정체됨과 발전가능성에서 수차례 저울질을 했을 것이다. 도시는 경쟁이 너무 심했고, 시골 농촌은 비빌 언덕 자체가 꺼져 있었다.

■ 음악적 재능을 품고 고향에 돌아오다

그렇게 제천에 왔다. 의림초, 의림여중, 세명고까지 제천 토박이였던 그가 서울 추계예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이후 졸업하고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동네에서 작은 피아노학원을 열면서 늙어가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오니 제천의 열악한 문화지형이 현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바꾸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는 열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일단 만나야 했다. 제천의 숨은 고수들을, 감춰줘 있는 청춘들을 뜨겁게 만나야 했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같이 연주하고 노래했다. 없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막에 우물을 파니 서서히 목을 축이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댓뮤직은 그렇게 결성됐다. 올댓뮤직의 대표이자, 전윤음악학원 원장인 전윤씨의 제천에 ‘문화예술로 정착하기’는 진행형이었다. ‘올댓 뮤직’은 뜻 그대로 ‘모여서 다같이 음악하자’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24살 쯤 내려왔죠. 제천에 부모님도 계시고 서울은 너무 치열해서 먹고 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뭐할까 하다가 그냥 내려왔어요. 내려와서 계속 공연 다니고 친구들하고 밴드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개인레슨도 해주고 그러면서 자유롭게 놀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민하게 됐죠. 제천에도 청년 문화예술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 그리고 지속가능하려면 벌이도 있어야 하는데 무얼 하면 좋을까 생각하게 됐죠.”

올해 초 그는 고민의 결과물들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천 전윤음악학원에 가면 다양한 악기를 배울 수 있다.
전윤음악학원 내부 전경.
전윤음악학원 안에 학생들이 전해준 감사 편지가 붙여져 있다.

■ 음악학원을 개원하며 두마리 토끼 잡기를 시도하다

“음악학원을 개원했어요. 개인레슨으로만은 한계가 분명했어요. 독립생활자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자구책으로 마련한 건데 반드시 그것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여러 시너지 효과를 노렸지요. 공연을 준비하거나 밴드를 할 연습실도 필요했구요. 또한 같이 밴드하고 공연했던 친구들 중에 프로에 버금가는 분들은 강사로 모셔서 더 풍성하게 음악학원 강사진을 꾸릴 수 있었지요. 요즘엔 피아노 하나만 배우지 않거든요. 보컬과 기타, 드럼, 건반 등 당장 밴드를 꾸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으로 가르치려 하고 있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연습실로도 활용하고 음악하던 친구들을 강사로 쓰면서 벌이도 어느정도 충족시켜주고 같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우물을 팠다. 제천 올댓뮤직은 참여하는 청년들이 40~50명 정도 되는데 다양하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혼재되어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보컬분과와 랩분과, 댄스분과와 악기 분과 등 다양한 분야가 있어 이들이 다 모여 공연하면 두 시간 동안 알차게 프로그램을 꾸밀 수 있다.

“노래만 하거나, 춤만 추거나 악기만 연주하면 재미가 덜 하잖아요. 다 섞어서 하면 정말 다채롭거든요. 우리 멤버 중에 국악하는 친구도 있어요. 국악까지 어우러지면 정말 다채롭게 느껴지죠.”

내려 온지 3년 만에 그리고 지난해 겨울 올댓뮤직을 공식단체로 등록하며 출범시키고, 올해 초 전윤음악학원을 개원하면서 그의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우물은 팠지만, 아직 목마르다.

■ 제천의 열악한 인프라, 많이 바뀌었으면

제천의 열악한 문화인프라는 여전히 눈에 밟힌다.

“상설 공연할 수 있는 무대나 소공연장이 거의 없어요. 우리가 한번 공연하려면 음향이니 조명이니 전부 준비해 가야 하거든요. 일이 배가 되는 거죠. 곳곳에 상설 공연을 하고 연습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악기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대신 시설만이라도 잘 갖춰져 있으면 몸과 악기만 가져가면 공연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천에 다양하고 작은 공연장이 군데군데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년 문화예술인 단체를 새로운 틀로 만들어보고 싶어했다.

“제천에도 기존의 문화예술단체인 예총과 민예총 등이 있는데 그 틀에 끼이기 보다 새로운 틀로 단체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해왔던 선배들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흐름과 결대로 문화를 새롭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닥에서부터 여러 무대를 전전했지요. 청전야외공연장에서도 하고, 의림지에서도 하고,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고정 관객층도 생기고 같이 밴드하고 싶은 친구들도 모였던 것 같아요. 출연료를 받지 않고 봉사도 많이 했어요. 요양원 같은데 가서 어르신들 위한 공연도 했지요.”

충북문화재단에서 500여 만원 청년예술단체 지원을 받고 9월이나 10월 중에 조그만 공연을 계획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멋진 공연 하나를 준비 중이에요. 저희가 모두 9팀인데, 한 팀당 두 곡씩 하면 벌써 18곡인데 두시간은 훌쩍 가죠. 프로그램 구성을 다양하게 해서 지루하지 않을 거에요. 국악, 재즈, 밴드, 보컬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될 거라 믿어요.”

■ 제천에 클럽 문화 만들고 싶은 꿈도

제천 문화예술 고리의 설계는 나름 하나씩 맞춰가고 있었다. 전윤음악학원을 통해서 청소년들의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예서 실력을 키운 뒤 강사인 청년들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공연을 경험한다는 것은 제천 지역 문화판의 커다란 자산이 될 거란 예감이 불현듯 들었다.

전윤씨 자신도 색소폰을 하는 남동생과 또 다른 지인과 함께 ‘코드네임’이란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제천에 하루 빨리 복합문화시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원주랑 비교해도 문화격차가 너무 나거든요. 소프트웨어는 올댓뮤직에서 한껏 고민하고 있으니 맘껏 이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구축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바람이죠. 그리고 제가 돈을 조금 더 번다면 친구들과 문화예술공연을 할 수 있는 클럽을 만들고 싶어요. 의림지 인근에 클럽을 만들어 맥주도 마시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단단한 바위도 작은 균열로 쩍 하고 갈라질 수 있다. 마른 사막도 촉촉한 물줄기가 지나가면 옥토로 변할 수 있는 법이다. 27살 청년 전윤씨가 ‘올댓뮤직’으로 제천 지역 문화에 즐거운 균열을 내고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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